전시소개
- 전시기간 : 2019.10.5.(토) ~ 10.18.(금) (*오픈행사 10.8.(화) 13:00)
- 전시장소 : 민주인권기념관 본관 1층, 3층, 4층
<기획자의 글 - 임민욱>
예술은 치유하는 대신 또다시 도래하는 폭력을 예견할 뿐입니다.
<끝없는 여지(Endless Void)> 전에 참여한 13명의 청년작가들은 옛 남영동 대공분실이 민주인권기념관으로 재탄생하기 이전, 그 사이의 공간과 시간대로 걸어 들어가 기억의 (불)가능성을 확인했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벌어진 일들에 대해 과거의 것, 타인의 고통, 당사자들만의 문제라며 근엄하게 선을 긋는 이들을 향해, 그것은 상상할 수 있는 일, 사람이 저지른 일, 당사자가 아니라 타인이 기억해줘야 할 일이라고 말합니다.
이 곳에 자리한 작품들은 장르를 혼합한 퍼포먼스와 영상, 설치 작품 등입니다. 작가들은 전체주의를 경계합니다. 이 작품들이 똑같이 그리지도, 똑바로 답하는 태도도 거부하는 이유입니다. '똑같이' 하라는 요구는 그 때의 대공수사관들을 떠올리게 합니다. 남영동 대공분실이 감추려 했던 것에서 멀어지지 않기. 쉽게 결론 내지 않기. 이 끝없는 가장자리 속에서 이미지를 구하려고 합니다. 그것이 이 장소가 던지는 엄중한 요청일 것입니다.
폭력은 불멸하고 민주와 인권은 기념할 수도, 개념화할 수도 없습니다. 내일의 민주인권기념관이 다시 태어나서 해야 할 일은 역사적 비극의 장소로서 눈물에 호소하는 일이 아니라, 근대가 실패하는 일이 기억의 박제화라는 것을 보여줘야 합니다. 예술로 비관주의를 조직하며 더 살아내서 더 오래 울고 더 오래 상처 입는 불멸의 민주주의로 지키려는 청년 작가들의 실험과 고민들을 함께 읽어주시기 바랍니다.
<작품소개> (사진 배한솔)
강라겸 Ragyeom Kang
유한한 재료로서의 피부, 폭력의 역사를 기록하는 가이드
2019, 관객과의 일대일 퍼포먼스
사람의 피부에 잉크를 주입해 기록하는 문신은 주체성에 대한 두 가지 극단적인 역사를 가지고 있다. 스스로의 정체성을 이해하고 자신의 역사를 기록하기 위한 수단이기도 했고, 폭력에 의한 낙인이기도 했다. 폭력의 역사가 있는 공간에서, 역사의 흔적을 물리적인 상흔으로 피부에 기록하여 이전의 몸으로는 되돌아갈 수 없음을 인지한 신체는 행위 이후로 무엇을 남기는가? 전 남영동 대공분실, 현 민주인권기념관
의 공간을 피부에 기록하고자 주체적으로 선택한 사람은 작가의 일대일 관객이자 동시에 퍼포머이며, 작품의 모델이 된다.
강은교 Eunkyo Kang
Clear Resolution
2019, 멀티미디어 설치, 수조박스(각 640X840X290mm), 사진(각 45X65mm), 매트지, 우퍼, 스피커, 가변
얕은 수조에 담긴 물은 투명한 레이어로 기능하고 그 너머에 어떤 내용이 보인다. 투명한 레이어는 내용을 보호하면서도 관찰자와 내용 사 이에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최소한의 개입으로 둘의 관계를 유지한다. 그러나 레이어의 투명한 본질은 불가피한 외부 자극을 만나 흔들린 다. 흔들리는 투명함은 왜곡과 은폐의 수단으로 변해버린다.
김예슬 Yesul Kim
분실
2019, 5층 분실 수도에 호스 연결
5층에 위치한 각각의 분실에 수도 호스를 연결하고 좁다란 창 너머로 물이 뿜어져 나오도록 한다.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권리인 상수도 보 급은 1960년대 급속한 산업화, 도시화와 함께 이루어졌다. 대공분실의 수도 이용요금기록은 2008년부터 조회가 가능했다. 우리는 수도사 용 내용을 고문 생존자의 증언으로부터, 발견했으며 이 작업 또한 그저 기록으로만 남겨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업은 현 재까지도 작동하고 있는 상수도 시설의 물을 건물의 외부로 드러냄으로써 이곳 이면에 존재하는 서사와 역사적 사실을 사유로써 ? 기억해 보는 것을 시도한다.
배선영 Sunyoung Bae
가령
2019, 믹스미디어 가변 설치
근무복, 유니폼이라는 것은 집단 내에서 입을 땐 소속감과 의무감을 주지만 그만큼 벗기만 한다면 누군가의 눈에서 쉽게 벗어날 수 있는 아 주 용이한 역할을 합니다. 그런 근무복을 만드는 사람의 손을 쫓았습니다. 근무복을 만드는 손과 교차되는 흙을 만지는 손은 우리의 과거를 조금 더 가까이 가까이, 들여다보고자 함입니다. 흔히들 역사를 바라보는 우리의 시각은 몇 년도에 그래서, 그랬다-라고 끝나고마는 거시적 기록의 덩어리입니다. 그러나 더욱더 미시적으 로 파고들어가 시작과 끝이 모호한 이 기억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지, 과거에 흙을 다져 집을 쌓고 무언가 만들어내던 일들을 어떻게 알게 되 었는지, 지금 어떤 식으로 의미 짓고 있는지 그 기억의 형상을 묻고 싶었습니다. 흙더미 속에서 파헤쳐낸 파편들은 근무복을 입은 이미 끝난 누군가의 과거 기억의 모습이 아닌, 만들어내고 있는 지금과 이 기억을 어떻게 마주할 것인지에 대한 이 시간 이후의 우리의 모습을 나타내고자 했습니다.
배한솔 Hansol Bae
보이는 것보다 가까이
2019, 싱글채널 비디오, 컬러 및 사운드, 4K, 11분
1976년 대공분실이 건축되어 숱한 고문이 행해지고 오늘날 민주인권기념관이 되기까지 남영역은 그 옆자리를 지켜왔다. 이제 대공분실에 서 더는 고문이 행해지지 않지만 여전히 그 시절을 미화하거나 동경하는 이들은 있고, 그들 중 일부는 매일 지하철을 타고 이곳을 지나치고 있을 것이다. 본 영상은 지하철에서 땅굴을 찾으려는, 자신들이 간첩을 잡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들의 목소리를 담으며, 그들의 믿음이 어 디에서 오는지 질문한다.
엄지은 Jieun Uhm
① 비와 빛
2019, 싱글채널비디오, 컬러, 사운드, 4K, 16분
<비와 빛>은 10년 10개월동안 도피를 해왔던 이근안이라는 고문 기술자가 복역 후 목사안수를 받게 되고, 그 과정에서 사울(바울)이라는 인물로 비유된 사건에서 시작한다. 한국에서는 바울신학에서 율법보다 믿음을 강조하고 믿음으로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쉽게 독해한다. 이 러한 보편주의에 대한 획일적 이해는 죄지은 자들이 쉬이 종교의 그늘에 들어갈 수 있는 장치가 된다. <비와 빛>은 비오는 날, 카메라는 대 공분실 주변을 배회하고 위와 같은 이야기들을 따라간다. 도망가는 사람과 그 뒤를 밟는 사람의 구조, 그리고 무언가를 수색하는 카메라의 움직임은 명확하게 잡힐 듯 하지만 금방 흩어지고 마는 과거의 감각을, 현재의 기념관 주변에서 찾는다
② 빈 부피만큼의 믿음
2019, 우산살, 벨로아, 레이스, 건물 곳곳 설치
이유지아 Yujia Lee
말랑말랑한 모듈러
2019, 2채널 비디오(HD) 설치, 도면 드로잉, 가변크기
<말랑말랑한 모듈러#1>
고 김근태 의장은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물고문을 받던 당시 사용한 수건에서 <다이알>비누냄새를 잊지 못했고, 평생 <다이알>비누를 쓰지 않았다고 증언했다.
우리에게 일상적인 비누냄새는 고 김근태 의장에게는 비일상적인 것으로, 폭력의 공포를 환기시키는 대상이다. 이 냄새를 남영동 대공분실에 소환하고, 당시 범죄를 재구성하여, 그 자체로 폭력적인 이데올로기를 드러내고자 한다.
<말랑말랑한 모듈러#2>
두 개의 모니터가 서로 마주 보고 서 있다.
각각의 모니터는 대공/반공의 시대를 거쳐 지금도 유령처럼 남아 떠도는 이데올로기와, 1976년(반공/대공 시대) 휴먼 스케일을 기반으로 건축된 남영동 대공분실의 건축에 관한 영상으로, 그 사이에 관객을 불러 세운다. 모듈러는 근대 사회의 건축이 수행해야 하는 보편적으로 적용 가능한 치수시스템이다. 그러나 변할 수 있거나, 변 해야 하는 측정체계(당시 ‘참다운 민주주의 실현’이라는 미명) 안에서 발생한 폭력과 그 폭력의 정당화는 어긋나며 오류를 발생한다.
이 증거들 사이에서 낀, 그래서 무엇을 봐야 할지 두리번거리는 신체처럼...
이이난 Yinan Yi
① 기념비
2019, 오브제 설치, 행운목, 실, 나뭇가지, 가변크기
기념비는 종결된 사건을 의미하며, 명명된 사건에 대한 기억의 증거로써 세워진다. 그러나 남영동 대공분실의 지난 시간에는 아직 밝혀지지 못한 수많은 의문이 있고 그러므로 어떠한 방법으로도 사건을 기념하고 명명할 수 없으며 기억의 증거로써 무엇을 남기는 것 조차 불가능하 다. 작업은 이로부터 시작된다. 기념하려는 대상을 언급하지 않은채 ‘기념비’라고 둔탁하게 명명된 살아있는 오브제는, 정확한 규명없이 진 실에 이름붙이지 않음으로써 망각과 기록으로 종결되는 시간에 저항함과 동시에 ‘민주주의’나 ‘인권’과 같은 거대한 가치와 이념에도 완결 된 의의를 부여하지 않는다.
② 나란히 서는 시간
2019, 사운드 오브제 설치, 마이크스탠드, 실, 가변크기
지나간 시간을 기억하는 유일한 방법은 종결화로 마무리 되는 사건의 기록도, 기념도 아닌 누군가의 머리속에서 일어나는 사유일 것이다. 작업은 고문생존자이자 옛 남영동대공분실, 민주인권기념관 예정지의 상설직원 겸 해설사인 유해우의 시간 앞에 관객을 나란히 세우고 사 유로서 기억되는 또 다른 시간을 만들어낸다. 또한 작업은 세개의 마이크 스탠드 앞에 관객을 옆으로 나란히 세우는데 이것은 타인의 시간 앞에서 그저 바깥에 서 있을수 밖에 없는 오롯한 타자임을 확인함과 동시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타인의 시간 앞에 나란히 서는 행위를 통해 그 시간의 ‘밖'와 ‘안'의 폭을 옆으로 늘여보려는 시도이다.
•유해우 (필명 유동우) 1949.1.19 -
1967-1970 천일섬유, 유림통상, 태성산업 등에서 편직공 생활. 폐병을 앓음.
1937 부평공단 삼원섬유에서 다시 편직공 생활, 전국 섬유노동조합 경기지부 조직부장
1974 노조해산 강압으로 조합원 제명, 해고, 구속
1979 안양근로자회관 노동상담, 교육활동
1981 치안본부 남영동 대공분실 연행, ‘학림사건'고문 조작피해
현재 민주인권기념관 건립 예정지 보안관리소장
정명우 Myungwoo Jung
벽치기
2019, 싱글 채널 비디오, 15분
벽치기는 테니스에서 상대를 찾지 못한 사람이 벽을 치면서 몸을 워밍업하는 일종의 훈련이다. 홀로 최대한 오래 동안 벽에 공을 치면서 자 세를 교정하거나 여러 상황에 대처하는 폼을 익힌다. 정명우는 남영동 대공분실 테니스장에서 그 훈련을 진행하였다. 작업 벽치기는 대공분 실에 있는 테니스장의 의미를 되새기며 역사를 다루는 예술의 의미를 점검한다.
정민지 Minji Jeong
① 클라우드
2019, 레진·꽃, 가변설치
기억과 기록의 문제로부터 출발한 작업으로, 식물을 넣고 굳힌 오브제를 공간에 개입시킨 형태이다. 제목은 ‘클라우드’라는 단어가 기상현 상(구름)과 디지털 데이터 보관소라는 두 가지 의미를 갖는다는 점에 착안했다.
② 의외의 사실
2019, 스테인리스, 지름 약 190cm
사이비 종교 시설 안에 들어갔다가 인생이 완전히 바뀌어 버렸다는 내용의 외국 괴담에서 모티브를 얻어 제작한 설치 작업이다. 수상쩍은 건물과 그에 얽힌 이야기는 왠지 옛 남영동 대공분실을 떠올리게 하는 부분이 있다.
강은구 EunGoo Kang
내일의 연대기
2019, 공연
금기의 건물이자 폭력과 인권유린의 역사를 간직한 남영동 대공분실을 건물 외부에서 스캔하는 방식으로 역사와 사건들을 들여다보고자 합니다. 공연 보기를 지원한 1명의 관람자는 스카이차에 탑승하여 총9개의 공연을 창문 너머로 감 상하게 됩니다. 실내에서 벌어지는 공연은 1명의 참여자 외에는 볼 수 없는 공연입니다. 지상에 있는 관람객은 스카이차를 타고 올라 간 참여자를 바라볼 수밖에 없습니다. 여기에서 참여자가 보고 있는 공연의 스토리는 중요하지 않게 됩니다. 제일 중요한 것은 지상의 관람자가 지금 무엇을 보 고 있느냐가 될 것입니다
오카모토 하고로모 Okamoto Hagoromo
목소리와 온도
2019, 퍼포먼스, 설치
김수근은 한국의 유명한 건축가다. 남영동 대공분실도 그의 작품 중 하나다. 그는 과연 남영동의 사용용도를 몰랐을까? 물론 정부에게 위협 을 받았을 가능성은 있으나 나는 그가 이 시설의 용도를 알고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그는 이 시설에 나선형계단이나 방음벽 그리 고 좁은 창문 등 공포심을 유발하는 장치를 다양하게 사용했기 때문이다. 나는 그가 올림픽스타디움과 같은 사람들이 모이는 따뜻한 공간을 만들면서도 이러한 공포와 차가움으로 가득한 장소를 어떻게 만들 수 있 었는지 궁금하다. 하지만 그러한 이중성은 우리도 늘 갖고 있다. 나는 평소에 보이지 않는 차가운 공간이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늘 불안정한 곳에 서 있다. 나는 그가 만든 공포와 차가움의 공간에 서 있다. 우선 나는 내 몸을 통해서 이 곳의 온도를 잴 것이다. 나는 이 공포의 공간에 접촉함으로써 우리 신체 속에도 존재하는 차가운 공간에 접근하려고 한다.
주혜영
주체하는 신체
2019, 퍼포먼스, 약 20분
강유라, 김관지, 김소현, 김예은, 김은우, 김홍주, 남선희, 류정문, 박준성, 박희령, 배선영, 이민진, 이재은, 허윤경 그리고 협조에 유지영
김수근이 건축한 남영동 대공분실은 신체를 제한하고 통제하고 구속했다. 공기감은 공간에 처음 들어섰을 때 즉각적으로 신체를 반응하게 하는 분위기라고 할 수 있는데, 공간에 존재의 형태를 결정하는 요인이 된 다. 주체적인 신체가 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움직임이 공간에 전위한다. 공간과 신체가 서로 얽히며 만들어내는 다양한 이야기와 움직임 을 통해 공기감을 다시 구축하고자 하는 것이 전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