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80년대 ‘고문’ 관련 시설의 운용과 변화 :
서빙고 보안사, 남산 안기부, 남영동 대공분실을 중심으로
정호기(원광대학교 동북아시아인문사회연구소 HK+연구교수)
폭력의 대표적인 행위들은 전쟁, 고문, 살인, 학살 등이다. 인간이 집단을 이루고 정치ㆍ사회적 행위를 하며 살아가기 위해서는 질서와 안전이 수반되어야 하는데, 이러한 과정과 제도의 일부로 폭력의 ‘정당화’와 ‘도구화’가 슬며시 똬리를 틀었다.
한국도 국가폭력과 고문이 만연했다.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이후 정치ㆍ사회적으로 고문이 논란이 된 경우는 한두 번이 아니었다. 이러한 일을 수행한 주요 주체는 안보와 안전의 첨병을 자부했던 정보기관들이었다. 그런데 정보기관이 없는 국가는 아마도 없을 것이다. 목적과 형식 그리고 역할과 기능에서 차이가 있을 뿐, 정보기관 혹은 유사한 역할과 기능을 하는 조직은 대부분의 국가에서 확인된다.
한국에서 고문 행위는 특정한 사건들을 계기로 단계적으로 축소되었다. 물론 근절되었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지난 정부들이 보여주듯이, 정보기관들은 여전히 왕성하게 활동했다. 이들 기관은 안보와 비밀 등을 방패로 법률이 규정한 경계와 기준을 넘나들었고, 이를 정치행위로 합리화했다. 사회구성원의 감시와 통제를 벗어난 정보기구들은 불명예와 불법성을 망각하고, 과거로 언제든지 회귀하려는 속성이 내재되어 있음을 보여주었다.
정보기관의 활동과 동향은 고문과 명백한 탈법 행위 등에 의해 크게 사건화 될 때 조금씩 세상에 알려졌다. 민주화가 진전되면서 정보기관과 국가폭력 그리고 고문은 사회구성원들에게 접근이 가능한 이야기 소재가 되었다. 그런데 이에 관한 구체적이고 실증적인 자료와 기록은 희박하다. 정보기관에서 이루어진 고문에 관한 자료와 기록은 피해자의 증언과 기억이 거의 전부라고 해도 틀리지 않다. 피해자의 증언은 고문과 사건에 관한 정황의 극히 일부를 말하고 있을 따름이다.
대조적으로 정보기관이 생산한 공식 자료와 기록은 은폐되어 있다. 정보기관이 어떤 목표와 목적을 갖고 운영되었으며, 누가 어떤 활동을 했는지 알려진 것은 빙산의 일각이다. 정보기관 근무자들은 자신의 활동을 안보와 애국으로 자평하지만, 이를 드러내는 것에는 소극적이거나 음성적이다. 그러므로 고문이 이루어졌던 조직 구조와 체계 그리고 운영과 정당화의 논리 등이 대부분 비밀에 쌓여 있다고 할 수 있다.
정보기관의 활동이 그나마 드러난 사건은 5ㆍ18민주화운동이었다. 5ㆍ18민주화운동 전반에 깊숙이 개입했던 보안사의 활동에 관한 자료가 어느 정도 공개되었던 것은 국회 청문회가 개최되었고, 관련 법률이 제정되었기 때문이다. 이는 정보기관이 자행한 폭력과 고문의 기록 및 흔적을 양지로 이끌어내는 것이 험난하고 장벽이 높음을 의미한다.
정보기관들이 사용했던 건물과 장소들은 해체 혹은 전용되는 추세이다. 현장성과 장소성을 유지한 경우가 드물다. 서빙고 보안사 시설은 오래 전에 사라졌다. 남산 안기부 시설들은 상당부분이 해체되었고, 일부만 개조 및 변형되어 다른 용도로 이용되고 있다. 상대적으로 현장성이 잘 보존된 시설은 남영동 대공분실이다. 이 또한 내부는 상당히 달라졌지만, 외형은 대체로 유지되고 있다. 오늘날 남영동 대공분실에 대한 정치사회적 관심이 높고 영화 등 문화적 소재가 되고 있는 것은 그나마 원형이 보존되고 있고 관련 증언이 많기 때문일 터이다.
한국인들은 인간이 마땅히 누려야 할 최소한의 기본권도 보장받지 못하는 시대를 오랜 기간 살아야 했다. 그러므로 이를 반면교사로 삼기위해서는 비극과 상흔을 보듬고 유사한 사건의 재발을 차단하는 거점으로 고문 관련 시설들의 재고가 필요하다. 고문에 의한 후유증과 트라우마를 호소하는 피해자를 치유하고 지원하기 위해서도 창의적이고 능동적인 기억 활동의 장소가 요구된다. 이는 사회구성원의 균열과 반목을 회복하는 터전이 될 것이며, 사회적 연대의 토대로 작용할 것이다.
1970~80년대 ‘고문’ 관련 시설의 운용과 변화 :
서빙고 보안사, 남산 안기부, 남영동 대공분실을 중심으로
정호기(원광대학교 동북아시아인문사회연구소 HK+연구교수)
폭력의 대표적인 행위들은 전쟁, 고문, 살인, 학살 등이다. 인간이 집단을 이루고 정치ㆍ사회적 행위를 하며 살아가기 위해서는 질서와 안전이 수반되어야 하는데, 이러한 과정과 제도의 일부로 폭력의 ‘정당화’와 ‘도구화’가 슬며시 똬리를 틀었다.
한국도 국가폭력과 고문이 만연했다.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이후 정치ㆍ사회적으로 고문이 논란이 된 경우는 한두 번이 아니었다. 이러한 일을 수행한 주요 주체는 안보와 안전의 첨병을 자부했던 정보기관들이었다. 그런데 정보기관이 없는 국가는 아마도 없을 것이다. 목적과 형식 그리고 역할과 기능에서 차이가 있을 뿐, 정보기관 혹은 유사한 역할과 기능을 하는 조직은 대부분의 국가에서 확인된다.
한국에서 고문 행위는 특정한 사건들을 계기로 단계적으로 축소되었다. 물론 근절되었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지난 정부들이 보여주듯이, 정보기관들은 여전히 왕성하게 활동했다. 이들 기관은 안보와 비밀 등을 방패로 법률이 규정한 경계와 기준을 넘나들었고, 이를 정치행위로 합리화했다. 사회구성원의 감시와 통제를 벗어난 정보기구들은 불명예와 불법성을 망각하고, 과거로 언제든지 회귀하려는 속성이 내재되어 있음을 보여주었다.
정보기관의 활동과 동향은 고문과 명백한 탈법 행위 등에 의해 크게 사건화 될 때 조금씩 세상에 알려졌다. 민주화가 진전되면서 정보기관과 국가폭력 그리고 고문은 사회구성원들에게 접근이 가능한 이야기 소재가 되었다. 그런데 이에 관한 구체적이고 실증적인 자료와 기록은 희박하다. 정보기관에서 이루어진 고문에 관한 자료와 기록은 피해자의 증언과 기억이 거의 전부라고 해도 틀리지 않다. 피해자의 증언은 고문과 사건에 관한 정황의 극히 일부를 말하고 있을 따름이다.
대조적으로 정보기관이 생산한 공식 자료와 기록은 은폐되어 있다. 정보기관이 어떤 목표와 목적을 갖고 운영되었으며, 누가 어떤 활동을 했는지 알려진 것은 빙산의 일각이다. 정보기관 근무자들은 자신의 활동을 안보와 애국으로 자평하지만, 이를 드러내는 것에는 소극적이거나 음성적이다. 그러므로 고문이 이루어졌던 조직 구조와 체계 그리고 운영과 정당화의 논리 등이 대부분 비밀에 쌓여 있다고 할 수 있다.
정보기관의 활동이 그나마 드러난 사건은 5ㆍ18민주화운동이었다. 5ㆍ18민주화운동 전반에 깊숙이 개입했던 보안사의 활동에 관한 자료가 어느 정도 공개되었던 것은 국회 청문회가 개최되었고, 관련 법률이 제정되었기 때문이다. 이는 정보기관이 자행한 폭력과 고문의 기록 및 흔적을 양지로 이끌어내는 것이 험난하고 장벽이 높음을 의미한다.
정보기관들이 사용했던 건물과 장소들은 해체 혹은 전용되는 추세이다. 현장성과 장소성을 유지한 경우가 드물다. 서빙고 보안사 시설은 오래 전에 사라졌다. 남산 안기부 시설들은 상당부분이 해체되었고, 일부만 개조 및 변형되어 다른 용도로 이용되고 있다. 상대적으로 현장성이 잘 보존된 시설은 남영동 대공분실이다. 이 또한 내부는 상당히 달라졌지만, 외형은 대체로 유지되고 있다. 오늘날 남영동 대공분실에 대한 정치사회적 관심이 높고 영화 등 문화적 소재가 되고 있는 것은 그나마 원형이 보존되고 있고 관련 증언이 많기 때문일 터이다.
한국인들은 인간이 마땅히 누려야 할 최소한의 기본권도 보장받지 못하는 시대를 오랜 기간 살아야 했다. 그러므로 이를 반면교사로 삼기위해서는 비극과 상흔을 보듬고 유사한 사건의 재발을 차단하는 거점으로 고문 관련 시설들의 재고가 필요하다. 고문에 의한 후유증과 트라우마를 호소하는 피해자를 치유하고 지원하기 위해서도 창의적이고 능동적인 기억 활동의 장소가 요구된다. 이는 사회구성원의 균열과 반목을 회복하는 터전이 될 것이며, 사회적 연대의 토대로 작용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