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고 문헌남영동 대공분실 관련 신문자료

남영동 대공분실 관련 신문자료로는 『경향신문』, 『동아일보』, 『매일경제』, 『한겨레』가 있다. 

검색 키워드로는 ‘갈월동’, ‘갈월동 98’ , ‘남영동’ , ‘남영동 대공분실’ 로 정하여 신문자료를 수집하였으며, 남영동 대공분실과 관련된 사건을 발간사의 종류와 관계없이 시간 순으로 나열하여 전체적인 사건 흐름의 이해를 돕고자 하였다. 그리고 남영동 대공분실의 사진이 함께 수록된 기사는 요약 정리한 표 이후 별도로 이미지를 함께 정리하였다.


 꼭 꼭 숨어라‘경찰 대공수사단’  『한겨레』, 7면, 1988년 06월 10일    

서울대생 박종철 씨 고문치사사건 등 각종 시국 및 대공사건 수사로 널리 알려진 치안본부 대공수사단이 오는 7월 20일 서울 용산구 갈월동 98번지 현재의 위치에서 서울 서대문구 홍제동 산1~8 대한경무협회(이사장 조종석 현 치안본부장) 소유지(구 경찰전문학교 분교 자리)로 옮긴다.

(중략)

한편 치안본부 공보 계장 김이석 경정은“대공수사단의 홍제동 이전은 대공 분야에만 한정된 것”이라고 말했다.


* 신문자료 요약

날 짜

자료명

제 목

내 용

요 약

1987년

1월 19일

경향신문

11면 1단

머리 타박상은 연행 때 생긴 것

경찰이 발표한 박 군의 사망경위는 14일 상오8시쯤 박 군이 집 앞에서 연행돼 서울 용산구 남영동 치안본부 5층 조사실에서 욕조에 머리를 집어넣는 고문을 당하다 욕조 턱에 목이 눌려 질식사 했다는 것이다.

(중략)

박 군이 박종운 군의 소재를 계속 밝히길 거부하자 신문을 하던 조 경위가 박 군의 두 팔을 꼼짝 못하도록 뒤로 제쳐 붙들고 강경사가 박 군의 머리를 잡고 한 차례 조사실 내 욕조에 머리를 집어넣었다가 다시 빼냈으나 박 군이 계속 진술을 거부하자 상오 11시20분쯤 두 번째 머리를 욕조에 집어넣는 순간 높이 50㎝ 너비6㎝의 욕조 턱에 목 부위가 눌려 질식, 실신했다.

조사실 내 욕조 턱 크기(높이 50㎝ 너비6㎝)

1987년

1월 24일

경향신문

11면 5단

두 경관 공소장 전문

피고인 조한경은 치안본부 대공3부 5관 2계 소속 경위, 동 강진규는 같은 계 소속 경사로서 각 대공수사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경찰관들인바,

(중략)

위협 수단으로 공동하여 동일 11시 10분경 피고인 조한경은 동 강진규에게 위 조사실 안에 있는 목욕탕(길이 123㎝·높이57㎝·폭74㎝의 인조대리석제)에 물을 채우게 한 뒤, 피해자 박종철의 상의를 벗기고 목욕탕 앞으로 데리고 가서

(중략)

수 분 간 물속으로 누르는 동안 동인의 목이 욕조의 턱에 눌려 사망한 것이다.

조사실 내 배치된 인조대리석제 목욕탕 크기(길이123㎝·높이57㎝·폭74㎝)

1987년

1월 27일

동아일보

3면 1단

얼굴 없는 수사 말고 현장검증 다시 하라

물고문의 도구인 욕조시설 등 고문을 상례화 하는 기구가 설비되어 있는 남영동 대공분실을 공개하라

(중략)

박 군의 사망원인은 조사받는 과정에서 물고문을 하기위해 강제로 욕조에 밀어 넣는 과정에서 경부가 눌려 질식사 한 것이다.

(중략)

박 군의 머리 어깨 허리 등 10여 군데에 있는 피하 출혈에 대해 부검의인 황적준 박사는 그 색깔로 봐 박 군이 욕조에 머리를 넣는 등의 가혹행위로 숨지는 것과 같은 시간에 생긴 것으로 보인다는 소견을 진술한 바 있다.

고문 기구로 사용된 조사실 내 욕조

1987년

5월 22일

매일경제

11면 1단

박종철군 고문치사 경관 3명 더 있었다

수사결과 사건당일인 지난 1월 14일 상오8시께 조한경·황정웅·반금곤·이정호 등이 박 군을 서울 용산구 남영동 소재 치안본부 대공3부 제9호분실로 연행, 조·이가 상호 10시30분까지 간단한 인정신문을 마친 뒤 박 군에게 아침식사를 제공하고 휴식을 취하게 했다는 것.

(중략)

그러나 상오 10시 50분께 조피고인은 강피고인에게 황정웅·반금곤을 불러오게 하여 조의 지시에 따라 이정호가 욕조에 물을 채운 뒤 박 군을 욕조 앞으로 끌고 갔다.

대공3부 제9호분실에서 조사가 이루어짐

 

욕조에 물을 채워 고문 용도로 사용

1987년

5월 22일

동아일보

11면 5단

세 경관이 팔 껴안고 등 밀자 강경사가 물통에 머리박아

고 박종철 군이 서울 용산구 갈월동 치안본부 대공분실(속칭 남영동)5층 9호실에 연행된 것은 지난 1월 14일 오전 8시 40분경

(중략)

이경장이 9호실 안쪽 구석에 있는 욕실로 가서 수도꼭지를 틀어 욕조에 물을 채우자 형사들은 박군을 욕조 앞으로 끌고 갔다.

대공분실 5층 9호실에서 조사가 이루어짐

 

9호실 안쪽 구석에 욕실이 배치됨

 

욕조에 물을 채워 고문 용도로 사용

1988년

6월 10일

한겨레

6면 1단

막 내리는 대공수사단 남영동시대

70년대 유신시대까지만 해도 치안본부 제3부 밑에 정보1,2과·외사과만 설치돼 주로 간첩 등 순수 대공 공작사건을 다뤄오던 남영동 분실(실제 위치는 용산구 갈월동 98-8)은 80년대 들어 시국관련 사건이 폭주하면서 더 이상 감당하기 힘들어 옮긴다는 것이 관계자들의 말이다. 남영동 건물 크기는 대지 1천9백36평에 건평 7백94평으로 연건평으로는 홍제동 새 건물의 절반 정도.

(중략)

치안본부 대공수사단은 75년 5월 정보과 산하 공작분실과 무선감시실인 AMD를 통합, 80년대 중반까지 대공분실로 설치 운영돼 오다가 85년 9월 30일 내무부 직제가 개정되면서 본부 밑에 제4부가 신설돼 독립했다.

(중략)

취조실에서 고문할 때는 붉은색이나 노란색으로 칠한 완전히 밀폐된 심문실에 칠성판이라는 고문대를 갖다놓고 (후략)

남영동 대공분실 조직(치안본부 제3부 하 정보1,2과·외사과)

 

남영동 대공분실의 대지 및 건물 규모(대지 1천9백36평, 건평 7백94평)

 

무선감시실 AMD

 

붉은색이나 노란색으로 칠한 완전히 밀폐된 심문실

 

고문대로 사용된 칠성판

1988년

6월 10일

한겨레

7면

꼭꼭 숨어라 경찰 대공수사단

서울대생 박종철 씨 고문치사사건 등 각종 시국 및 대공사건 수사로 널리 알려진 치안본부 대공수사단이 오는 7월 20일 서울 용산구 갈월동 98번지 현재의 위치에서 서울 서대문구 홍제동 산1~8 대한경무협회(이사장 조종석 현 치안본부장) 소유지(구 경찰전문학교 분교 자리)로 옮긴다. 

(중략)

한편 치안본부 공보 계장 김이석 경정은“대공수사단의 홍제동 이전은 대공 분야에만 한정된 것”이라고 말했다.

남영동 대공분실 조직 중 대공수사단의 홍제동 이전

1988년

7월 27일

한겨레

2면

내무위 야당의원들 남영동 대공분실 방문

국회내무위 소속 야당의원들은 26일 지난 해 박종철 씨가 물고문을 받다 숨진 치안본부 대공분실(남영동)을 방문, 조사실을 직접 확인했다.

지난 임시국회에서 야당의원들의 요구에 의해 이루어진 이날 방문에는 백형조 치안본부 대공5차장이 안내를 맡았다. 백 차장은 조사실 욕조 앞에서“여기서 얘기가 잘 안되면 고문도 하는 겁니까”라는 신순범 의원의 분노에 찬 질문에“외국 것을 참조해서 만든 것이며 간첩 수사 때 장기간 수사를 하면 피의자가 피곤할 때 쉬기도 하고 목욕도 하기 위한 것”이라고 답변했다.

백 차장은 또“김근태 씨가 고문 받았던 칠성판을 보자”는 정상용 의원의 요구에 대해서도“그런 것은 없다”면서 (후략)

조사실 욕조는 외국 사례를 참조해서 만든 것

1988년

10월 13일

동아일보

13면 4단

치안본부 대공수사단 홍제동 새 건물로 이전

박종철 군 고문치사사건 등 각종 시국 및 대공사건수사와 관련, 물의를 빚어온 치안본부 대공수사단(일명 남영동 분실)이 13일 서울 용산구 갈월동 98에서 서대문구 홍제동 산1의8 신축 건물로 이전했다.

(중략)

치안본부는 현재의 갈월동 건물이 협소하고 내부시설에 문제가 있어 새로 건물을 지은 것이라고 밝혔는데 새 건물에는 좌경용공사건을 전담하는 대공3부와 외사사건전담부서가 입주했다.

남영동 치안본부 대공수사단의 홍제동 이전

 

대공3부와 외사사건전담부서가 입주

1988년

10월 14일

한겨레

11면

치안본부 대공수사단 홍제동 새 건물로 옮겨

‘남영동 대공분실’로 불리는 용산구 갈월동 98의 건물은 대간첩수사만을 전담하는 대공2부가 쓰게 된다.

남영동 대공분실은 대공2부가 사용

1988년

10월 20일

경향신문

1면 1단

김근태씨 10차례 고문 증언

이어 치안본부 대공분실의 고문행위와 관련해 증인으로 출석한 김근태 씨는“85년 9월 4일부터 26일까지 23일 동안 치안본부 남영동 대공분실 515호실에서 8차례의 전기고문과 2차례의 물고문을 받았다”고 폭로하고“고문한 사람은 당시 치안본부대공1과장 윤재호 총경, 김수현·백남은 경감, 김영두 경위, 정현규·박병선·최상남·허만규 경장과 이름을 알 수 없는 경감 및 경장 1명 등 10명”이라고 말했다.

남영동 대공분실 515호실에서 23일간 김근태 씨가 고문 받음

1988년 10월 25일

한겨레

10면

물고문 못 이겨 김근태씨 관련 허위자백

김 의장이 불법 연행되었던 지난 85년 9월 4일부터 내가 구치소로 송치되던 9월 21일까지 만 17일 동안 김의장이 고문을 당하던 조사실(515호실) 바로 앞방에서 조사를 받았다. 515호실은 욕조가 갖추어져 있고, 칠성판 등 고문도구를 들여놓기 좋도록 널찍하게 만들어진 큰 방이다. 박종철 씨가 고문 받다 죽어간 방보다 두 배 정도 크다. 본래는 내가 그 방에서 조사를 받고 있었는데, 김 의장이 연행되어옴에 따라 방을 내주고 앞방으로 옮겨갔다. 대공분실에서는 사건의 가장 중요한 인물을 주로 그 방에서 조사하는 게 관례처럼 되어 있다. 대공분실 수사관들은 농담 삼아 그 방을 VIP실이라고 불렀다.

문용식 씨는 515호실에서 조사를 받다가 이후 그 앞에 위치한 514호실로 옮김

 

515호실은 9호실보다 두 배 정도 크며, 욕조가 갖추어 져 있으며 칠성판 등 고문도구를 들여놓기 좋게 넓음

 

1985년 당시 515호실을 농담 담아 VIP실이라고 부름

1988년

10월 29일

동아일보

3면 1단

여기가 남영동

80년 5월과 6월 언론인에 대한 검색과 연행선풍이 불 때 언론인들에 대한 수사가 벌어졌던 서울 남영동의 치안본부 대공분실 건물

남영동 대공분실 건물 전경

1988년 12월 3일

동아일보

5면 1단

용공조작 잦았던 경찰 대공분실

치안본부는 지난 해 박 군 고문치사사건 후 좌경의식화사건을 취급하는 대공수사 2단의 인원을 줄이고 기능도 시국 및 좌경용공사범에 대한 직접수사에서 기획업무위주로 전환하겠다고 밝힌바 있으나 현재까지 기능의 변화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박종철 고문치사사건 담당 부서는 대공수사 2단임

1988년

12월 22일

한겨레

11면

나도 이근안에게 당했다 폭로 잇따라

80년 7월 7일 기자협회사건과 관련, 연행돼 3일간 남영동에서 조사를 받고 나온 라원규(45, 당시 서울 도봉구청 하수계장)씨는“팬츠 하나만 남기고 발가벗긴 채 이 경감은 그 큰 주먹으로 얼굴·배를 가리지 않고 무차별 구타했다. 유리재떨이로 얼굴 정면을 맞아 피를 철철 흘리기도 했다”면서“이 경감 등 3~4명이 욕조 턱에 목을 눌러 물고문을 해 3차례 실신했다”고 말했다.

조사실 내 욕조는 물고문 용도로 사용됨

1999년

11월 25일

한겨레

14면

이근안 전 동료경관이 밝힌 당시 고문수법

피의자가 서울 남영동 대공분실로 잡혀오면 5층 조사실로 데려갔다

(중략)

조사실엔 강렬한 백열등 아래 대형 책상, 수사관과 피의자가 앉는 나무의자 2개, 침대와 욕조가 있었다. 1단계 신문을 받는 동안 피의자는 대부분 나무의자에 앉은 채 잠을 자지 못하도록 했다. 침대는 쉬고 싶어 하는 피의자의 갈망을 극대화하는 일종의 정신적 고문 장치였다. 수사관 4~5명이 교대로 조사하면서 24시간 감시하고 까딱 졸기라도 하면 빨랫방망이나 주먹으로 피의자를 때렸다.

(중략)

이 과정이 끝나고 구체적인 혐의를 조사하는‘2단계 신문’이 시작되면서 고문은 본격화됐다. 피의자가 혐의를 부인하면 손을 뒤로 묶은 채 일단 조사실 욕조에 머리를 처박아 물고문을 했다. 그래도 말을 듣지 않으면 복도 건너편에 마련된 고문실로 끌로 갔다. 고문실에는‘칠성판’이라는 고문대가 준비되어 있다.

5층 조사실에는 백열등, 대형 책상, 나무의자 2개, 침대, 욕조로 구성

 

침대는 정신적 고문장치

 

욕조는‘2단계 신문’과정에서 사용한 물고문 장치

 

복도 건너편에 별도로 마련된 고문실에는‘칠성판’이 준비되어 있음


출처: 남영동 대공분실 시설물 기초조사 연구 보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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