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의 세계에
감금된 것들
여성서사로 본 국가보안법
'국가보안법을 박물관으로' 전시회 추진위원회 ·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이 전시는 불편한 전시입니다.
우리는 이 전시를 통해 국가가 ‘법’이라는 이름으로 국민에게 ‘조작된 죄’, ‘기획된 죄’를 묻고, 사람들의 시간, 생각과 몸을 감금했던 불편한 역사를 제대로 바라보고자 합니다.
1948년부터 현재까지 국가보안법은 한국 사회를 반으로 갈라 이분법적으로 검열하고, 편 가르고, 구별 짓도록 만들고 있습니다.
이러한 세계 속에 감금된 것들을 찾아, 말과 말 사이, 생각과 생각사이, 발화되지 못한 시간과 공간 사이에 남겨진 것은 무엇인지 기록하고자 했습니다.
이 전시는 실패한 전시입니다.
국가보안법이 ‘과거형’이 아닌 ‘현재형’으로 이 세계에 현존하는 한, 국가보안법을 역사의 박물관으로 보내야 한다는 전제를 지닌 이 전시는 실패할 수밖에 없는 전시입니다.
전제된 실패를 각오하고 이번 전시를 준비하며 수십, 수백 건에 이르는 국가보안법 사건자료들을 만지고, 보고, 읽었습니다.
하나의 사건에 해당하는 수백, 수천 장이 넘는 사건자료, 변론자료, 판결문 등을 눈앞에 두고 바라볼 때마다, 그것이 이 세계를 이루고 있는 아주 작은 일부일 뿐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직 눈앞에 당도하지 않은 어마어마한 국가폭력의 피해 기록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깨달을 때마다 좌절하였습니다.
이 전시는 72년 동안 국가보안법에 의해 훼손되고 파괴된 삶의 어느 작은 파편도 위로할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합리한 역사의 시간들에 대해 ‘질문하기’를 멈추어선 안 된다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그러므로 이 전시는 싸우는 전시입니다.
전시 제목인 ‘말의 세계에 감금된 것들’의 ‘말’은 국가보안법으로 인해 파생된 폭력적이고 억압적 언어들을 뜻합니다.
지배 권력과 생각이 다르다는 이유로 무고한 사람들을 가둔 세계, 무지와 폭력의 언어들로 가득한 세계를 목도했을 때,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사료관의 국가보안법 관련 사진들을 발견했습니다. 그 속에서 싸우는 여성들을 보았습니다
흑백사진에서 컬러사진으로 변하는 사진 속에는 도망치지 않고 국가폭력에 맞서는 사람들이 끊임없이 등장했습니다.
이 전시는 거대한 국가보안법의 역사를 모두 다루지는 못하지만, 역사의 어느 자리에 우뚝 서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들을 전합니다.
따라서 이 전시는 결국
‘나의 말이 세계를
터뜨릴 것이다’라는
선언으로 귀결됩니다.
침묵을 강요하는 세계, 부당한 국가권력에 의해 생각의 자유가 감금되는 세계를 뚫고, 우리에게 전해지는 용기 있는 말들 속의 한 글자 한 글자를 주목해주시기 바랍니다. 이 전시는 국가보안법으로 감금된 세계를 터뜨릴 ‘말’들을 모아 관객들이 읽고, 보고, 듣고, 쓰고, 사유하고, 해석하도록 구성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서로에게 하찮은 타인일 뿐인 우리이지만, 아주 작은 예술적 상상력으로 타인의 고통을 조금이나마 이해해봤으면 합니다.
바로 그 지점에서부터,
이 세계가 변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전시기획 글, 예술감독 권은비
《말의 세계에 감금된 것들》전시를 VR 전시장에서 만나보세요. @민주인권기념관(옛 남영동 대공분실)
https://my.matterport.com/show/?m=oKaUCoRNwCv 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줄 바꿈(BR 태그)은 Shift + Enter 로 사용할 수 있습니다.
이 전시는 불편한 전시입니다.
우리는 이 전시를 통해 국가가 ‘법’이라는 이름으로 국민에게 ‘조작된 죄’, ‘기획된 죄’를 묻고, 사람들의 시간, 생각과 몸을 감금했던 불편한 역사를 제대로 바라보고자 합니다.
1948년부터 현재까지 국가보안법은 한국 사회를 반으로 갈라 이분법적으로 검열하고, 편 가르고, 구별 짓도록 만들고 있습니다.
이러한 세계 속에 감금된 것들을 찾아, 말과 말 사이, 생각과 생각사이, 발화되지 못한 시간과 공간 사이에 남겨진 것은 무엇인지 기록하고자 했습니다.
이 전시는 실패한 전시입니다.
국가보안법이 ‘과거형’이 아닌 ‘현재형’으로 이 세계에 현존하는 한, 국가보안법을 역사의 박물관으로 보내야 한다는 전제를 지닌 이 전시는 실패할 수밖에 없는 전시입니다.
전제된 실패를 각오하고 이번 전시를 준비하며 수십, 수백 건에 이르는 국가보안법 사건자료들을 만지고, 보고, 읽었습니다.
하나의 사건에 해당하는 수백, 수천 장이 넘는 사건자료, 변론자료, 판결문 등을 눈앞에 두고 바라볼 때마다, 그것이 이 세계를 이루고 있는 아주 작은 일부일 뿐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직 눈앞에 당도하지 않은 어마어마한 국가폭력의 피해 기록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깨달을 때마다 좌절하였습니다.
이 전시는 72년 동안 국가보안법에 의해 훼손되고 파괴된 삶의 어느 작은 파편도 위로할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합리한 역사의 시간들에 대해 ‘질문하기’를 멈추어선 안 된다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그러므로 이 전시는 싸우는 전시입니다.
전시 제목인 ‘말의 세계에 감금된 것들’의 ‘말’은 국가보안법으로 인해 파생된 폭력적이고 억압적 언어들을 뜻합니다.
지배 권력과 생각이 다르다는 이유로 무고한 사람들을 가둔 세계, 무지와 폭력의 언어들로 가득한 세계를 목도했을 때,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사료관의 국가보안법 관련 사진들을 발견했습니다. 그 속에서 싸우는 여성들을 보았습니다
흑백사진에서 컬러사진으로 변하는 사진 속에는 도망치지 않고 국가폭력에 맞서는 사람들이 끊임없이 등장했습니다.
이 전시는 거대한 국가보안법의 역사를 모두 다루지는 못하지만, 역사의 어느 자리에 우뚝 서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들을 전합니다.
따라서 이 전시는 결국 ‘나의 말이 세계를 터뜨릴 것이다’라는 선언으로 귀결됩니다.
침묵을 강요하는 세계, 부당한 국가권력에 의해 생각의 자유가 감금되는 세계를 뚫고, 우리에게 전해지는 용기 있는 말들 속의 한 글자 한 글자를 주목해주시기 바랍니다.
이 전시는 국가보안법으로 감금된 세계를 터뜨릴 ‘말’들을 모아 관객들이 읽고, 보고, 듣고, 쓰고, 사유하고, 해석하도록 구성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서로에게 하찮은 타인일 뿐인 우리이지만, 아주 작은 예술적 상상력으로 타인의 고통을 조금이나마 이해해봤으면 합니다.
바로 그 지점에서부터, 이 세계가 변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전시기획 글, 예술감독 권은비
들어가며: 말의 세계
이곳은 관객이 국가보안법 법령을 들으며 저항의 의미로서 나희덕 시인의 시 파일명 <서정시>를 필사하여 걸어두고 갈 수 있도록 구성된 방입니다.
필사한 글 하단에 참여관객마다 원하는 저항의 메세지를 자유롭게 쓸 수도 있습니다.
1부
나의 말이
세상을 터뜨릴 것이다
5층 전시실은 국가보안법에 연루된
여성 11인의 경험과 삶을
각 조사실별로 살펴볼 수 있도록 구성되었다.
국가보안법이 만들어진 이래 국가보안법으로 인한 피해와 이에 저항하는 운동은 계속되어 왔다. 하지만 여성들의 목소리는 한 번도 전면에 드러나지 못했다.
공백과 부재로 남아있던 여성들의 존재를 알려주는 목소리들을 따라가다 보면 국가보안법 체제 안에서 여성으로 산다는 것은 무엇인지, 국가보안법 폐지 운동 속에서 여성은 어떠한 위치와 조건에 있었는지를 살펴볼 수 있다.
(…)
말하고 행동하는 여성들의 존재는 여성의 시선으로 기억과 역사를 새롭게 구성하며, 국가보안법을 다시, 다르게 말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할 것이다.
잠시 걸음을 멈추고, 아직 말해지지 못한 침묵에도 귀 기울이며, 우리에게 말을 거는 이야기들에 응답하기를 바란다.
1부 "나의 말이 세계를 터뜨릴 것이다"
5층 전시실은 국가보안법에 연루된 여성 11인의 경험과 삶을 각 조사실별로 살펴볼 수 있도록 구성되었다.
국가보안법이 만들어진 이래 국가보안법으로 인한 피해와 이에 저항하는 운동은 계속되어 왔다.
하지만 여성들의 목소리는 한 번도 전면에 드러나지 못했다.
공백과 부재로 남아있던 여성들의 존재를 알려주는 목소리들을 따라가다 보면
국가보안법 체제 안에서 여성으로 산다는 것은 무엇인지,
국가보안법 폐지 운동 속에서 여성은 어떠한 위치와 조건에 있었는지를 살펴볼 수 있다.
또한 요란한 국가안보의 구호와 웅변 속에서 이들의 이야기는
삶과 영혼에 깊은 상흔을 남긴 국가보안법의 참상을 고발하면서 과연 누구를 위한 국가안보였는지를 돌아보게 한다.
말하고 행동하는 여성들의 존재는 여성의 시선으로 기억과 역사를 새롭게 구성하며,
국가보안법을 다시, 다르게 말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할 것이다.
잠시 걸음을 멈추고, 아직 말해지지 못한 침묵에도 귀 기울이며, 우리에게 말을 거는 이야기들에 응답하기를 바란다.
사운드 스케이프 국가보안법의 일상
11개의 낭독 | 단채널 오디오, 2020 | 녹음진행: 권은비, 박지은, 보코 | 녹음편집: 이효섭, 정유민 | 사진: 정택용
낭독은 문화평론가 손희정님이 참여해주셨습니다.
사진 작품 사진 정택용 | 피그먼트 프린트 | 80cm*53cm | 2020년
권명희 <광화문, 외침>권명희 씨가 일곱 살짜리 막내를 데리고 주말마다 다녔던 광화문 광장. 촛불집회가 열리던 추운 겨울날, 그곳은 한 시간이 넘게 걸리는 거리. 그가 광장에서 외쳤던 말들은 어디로 갔을까. 그가 들었던 피켓에 적혀 있던 무수한 말들은 누구에게 전해졌을까.
김은혜 <되찾은 불온서적>사건이 터진 뒤 압수됐다 뒤에 돌려받은 유동우의 『어느 돌맹이의 외침』. 1970년대 노동자의 삶과 투쟁을 기록한 노동자문학의 고전으로 평가받는다. 전두환 정권은 이 책과 더불어 E.H. 카의 『러시아혁명사』, 『역사란 무엇인가』 같은 책들도 불온서적이라며 압수해 증거로 쓰려고 했다.
김정숙 <목요집회>구호를 외칠 때 손도 안 올라가던 어머니는 어느새 투사가 됐다. 오로지 내 새끼만 예뻐 보이던 어머니가 민가협 활동을 하며 내 새끼나 남의 새끼나 똑같아 보이게 됐다. 그 예쁜 새끼들이 자유롭게 살아야지, 국가보안법 따위에 얽매여서 살게 하면 안 된다는 어머니들. 코로나19로 끊임없던 목요집회가 잠시 멈췄다. 2006년 11월 23일의 목요집회.
고애순 <육아일기>고애순 씨가 구속되기 하루 전날인 1995년 12월 3일에 쓴 태교일기. 인권운동사랑방이 발행하던 《인권하루소식》 1996년 2월 9일자에 실렸다. 국가안보라는 명목으로 생긴 상처는 아물지 못한 채 고스란히 개개인한테 남았다.
배지윤 <절반의 자리>배지윤 씨의 남편 지영강 씨가 묻힌 양평군 양동면 국립하늘숲추모원의 나무. 그는 눈물부터 훔쳤다. 건강했던 사람이었고 위암에 걸릴 이유가 없다고 생각한다. 괜히 자기가 남한으로 데리고 와서 중앙합동신문센터에서 받은 스트레스로 위암에 걸렸다며 자책한다. 조사 과정의 이간질로 생긴 오해의 마음을 좁히지도 못한 채 이별한 그들을 누가 책임질 수 있을까.
안소희 <이런 압수수색>2013년 9월 24일. 두 번째 압수수색. 집과 시의회 사무실을 뒤졌다. 사무실에서 나온 건 국내외 정세 관련 뉴스나 관심 있는 칼럼을 인쇄한 것들, 메모 몇 가지. 서류봉투 하나에 넣을 정도였다. “(그걸) 커다란 박스 두 개에 나눠 담는 거예요. 시의회 현관에 나가니까 카메라들이 쫙 있어요. 그 앞에서 한 박스에 장정 네 명씩 붙어서 들고 나가 차에 싣더라고요. 언론에서는 안소희 의원 집과 사무실을 압수수색 했는데 상당수의 이적표현물이 확보된 것으로 보인다고 떠들어댔죠.”
양은영 <캠퍼스, 코로나19>“만약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면, 정말 그럴 수 있다면, 대학생 때로 돌아가고 싶어요.” 양은영 씨가 대학 시절을 보낸 명지대학교. 학생회가 있던 본관 건물 뒤. 코로나19로 봄날의 활기찬 캠퍼스는 찾아볼 수 없었지만 강경대 열사 추모사업회의 현수막이 한쪽에 걸려 있어 반가웠던 날.
유가려 <회령 화교>중앙합동신문센터에서 조사 받던 어느 밤의 기억. “화교라는 게 밝혀진 뒤에는 A4 용지에 ‘회령화교 유가려’라고 써가지고 제 가슴하고 등에 앞뒤로 붙여서 사람들이 다 보게 했어요. 그때가 시간이 밤 9시가 넘었는데 조사 받는 청사 말고, 사람들이 숙소로 쓰는 청사로 데리고 가서 거기 출입문 앞에 나를 세워놓고 사람들이 다 내려와서 내 양 옆을 지나가게 했어요. 그리고 청사 앞에 운동장 같은 데가 있는데 거기로 데려가서 또 사람들이 제 주변을 빙 돌아 서게 하고. 거짓말쟁이를 구경하라고. 저는 그때 서있을 힘도 없었는데, 그렇게 망신 주고.”
유숙열 <대공분실의 흔적>좁고 긴 창을 통해 본 바깥세상의 아무렇지도 않은 풍경은 1980년의 유숙열에게 막막함과 고립감을 줬다. 욕조의 상상력을 자극하며 들어오는 빛은 희망일 수가 없었다. 욕조와 바닥의 삭아버린 하수구로 흘러내려간 것은 물만이 아니다. 박종철 열사가 물고문을 받다 목숨을 잃은 509호를 빼고 유일하게 욕조가 남아 있는 3층 조사실.
유해정 <기억 찾기>그는 지금은 고 김근태 선생의 전시실로 만들어진 남영동 옛 대공분실 515호 조사실을 오래도록 바라봤다. 그가 1997년 조사받던 장소라고 생각한 곳. 그러나 방을 보고난 그는 가늠할 수가 없다. 맞은편 조사실을 살펴봐도 도무지 확신할 수 없다. 그의 낯선 기억은 그만의 것은 아니다. 지하층이 없는 이 건물의 지하에서 받은 고문을 증언한 고문피해자들의 기억 역시 낯설지만 진실이다.
정순녀 <민가협의 상징>“엄마, 울지 마. 울지 말고 민가협을 찾아가.” “민가협이 뭔데? 어디에 있는데?” 면회 가서 만난 딸과 나눈 이 대화 뒤 정순녀 어머니의 삶은 민가협이 됐다. 온몸엔 수십 년 싸움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았지만 멈출 생각은 없다. 더 이상 아무도 안 당해야 하기에.
사진 아카이브 제공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사료관 | 사진 박용수, 정태원
이화여자대학교 학생 시위 (1987.05.26) 제공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사진 정태원
"국가보안법 철폐 없는 통일논의 기만이다" 피켓을 들고 있는 임수경 면회자들 (1990.08.01) 제공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사진 박용수
국가보안법 완전 철폐를 외치며 농성 중인 민가협 회원들 (1991.01.21)제공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사진 박용수
국가보안법, 사회안전법 철폐하라는 피켓을 들고 시위를 벌이는 민가협 회원들 (1988.01.01)제공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사진 박용수
평민당사에서 국가보안법 철폐 등을 요구하며 침묵 시위하는 민가협 회원 및 학생 (1989.11.23)제공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사진 박용수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잡혀들어간 사람들의 석방을 요구하며 보안법 철폐를 주장하는 시민들의 모습 (1990.00.00)제공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사진 박용수
"양심수 석방, 국가보안법 철폐" 플래카드를 들고 농성중인 전노협 회원들 (1990.06.22)제공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사진 박용수
국가보안법 철폐, 노태우 퇴진, 보안사 해체를 성토하는 단식 농성자들 (1990.10.17)제공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사진 박용수
국가보안법 노동악법 철폐 및 양심수 석방 결의대회에 아이와 함께 나온 여성 참가자의 모습 (1991.10.02)제공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사진 박용수
국가보안법 철폐를 요구하는 머리띠를 두른 양심수 가족의 비통한 모습 (1991.10.02)제공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사진 박용수
국가보안법 집시법 등의 폐지를 요구하는 피켓을 들고 시위하는 민가협 회원들의 모습 (1988.07.12)제공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사진 박용수
결의대회에서 양심수 석방 및 국가보안법 폐지를 요구하는 민가협 회원들 (1991.04.24)제공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사진 박용수
양심수 석방과 국가보안법 폐지를 요구하는 민가협 가두 캠페인 (1990.03.01) 제공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사진 박용수
양심수 석방과 국가보안법 폐지를 요구하는 민가협 가두 캠페인 모습 (1990.03.01)제공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사진 박용수
파고다 공원 앞에서 양심수 석방과 국가보안법 폐지 캠페인 하는 민가협 (1990.03.01)제공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사진 박용수
국가보안법 및 주한미군 핵무기 화형식이 열리는 건대에서 연설을 하는 여성 참가자 (1990.09.01)제공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사진 박용수
국가보안법 및 주한미군 핵무기 화형식에서 구호를 외치는 여성 참가자 (1990.09.01)제공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사진 박용수
국가보안법 노동악법 철폐 및 양심수 석방 결의대회에서 구호를 외치는 모습 (1991.10.02)제공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사진 박용수
국가보안법 노동악법 철폐 및 양심수 석방 결의대회에서 피켓을 들고 시위하는 모습 (1991.10.02)제공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사진 박용수
국가보안법 노동악법 철폐 및 양심수 석방 결의대회에 부모와 함께 참석한 아이 (1991.10.02)제공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사진 박용수
국가보안법 노동악법 철폐 및 양심수 석방 결의대회 단상에 올라 구호를 외치는 참석자 (1991.10.02)제공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사진 박용수
사진 작품 사진 정택용 | 피그먼트 프린트 | 80*53 | 2020년
권명희 <광화문, 외침>권명희 씨가 일곱 살짜리 막내를 데리고 주말마다 다녔던 광화문 광장. 촛불집회가 열리던 추운 겨울날, 그곳은 한 시간이 넘게 걸리는 거리. 그가 광장에서 외쳤던 말들은 어디로 갔을까. 그가 들었던 피켓에 적혀 있던 무수한 말들은 누구에게 전해졌을까. (사진 정택용)
김은혜 <되찾은 불온서적>사건이 터진 뒤 압수됐다 뒤에 돌려받은 유동우의 『어느 돌맹이의 외침』. 1970년대 노동자의 삶과 투쟁을 기록한 노동자문학의 고전으로 평가받는다. 전두환 정권은 이 책과 더불어 E.H. 카의 『러시아혁명사』, 『역사란 무엇인가』 같은 책들도 불온서적이라며 압수해 증거로 쓰려고 했다. (사진 정택용)
김정숙 <목요집회>구호를 외칠 때 손도 안 올라가던 어머니는 어느새 투사가 됐다. 오로지 내 새끼만 예뻐 보이던 어머니가 민가협 활동을 하며 내 새끼나 남의 새끼나 똑같아 보이게 됐다. 그 예쁜 새끼들이 자유롭게 살아야지, 국가보안법 따위에 얽매여서 살게 하면 안 된다는 어머니들. 코로나19로 끊임없던 목요집회가 잠시 멈췄다. 2006년 11월 23일의 목요집회. (사진 정택용)
고애순 <육아일기>고애순 씨가 구속되기 하루 전날인 1995년 12월 3일에 쓴 태교일기. 인권운동사랑방이 발행하던 《인권하루소식》 1996년 2월 9일자에 실렸다. 국가안보라는 명목으로 생긴 상처는 아물지 못한 채 고스란히 개개인한테 남았다. (사진 정택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