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젝트 소식

세계의 민주주의돌보는 남성성과 남성 해방일지 | 이구경숙

베를린 거리를 걷다 보면 아이들과 함께 나온 아버지들을 유난히 많이 만난다. 여성들이 집에서 아이를 돌보도록 하는 보수적 가족정책이 강하다고 알고 있던 터라, 북유럽의 ‘라떼 파파’(각주1)를 독일에서 만나니 신선했다.  그 사이 분명 어떤 변화가 있었구나 직감되었다. 안 그래도 베를린에 오면서 유럽의 ‘남성과 성평등’ 정책을 살펴볼 참이었는데, 거리에서 먼저 독일의 성공사례를 접한 것 같아 부러움이 밀려왔다. 동시에 한국의 한심한 상황이 떠올라 마음은 다시 무거워졌다. “여성차별이 없어져서 여성가족부를 폐지하겠다”는 정부․여당의 주장은 기괴할 따름이다.


많은 국제 지표가 여성에 대한 ‘구조적 성차별’이 뿌리 깊게 남아있음을 가리키고 있고, 여성들은 여전히 눈에 보이지 않는 교묘한 차별과 배제, 그리고 여성폭력에 신음하고 있는데, 일부 청년 남성들은 오히려 남성이 차별받고 있다며 아우성이다. 왜 여성을 위한 정책만 있고, 남성의 말에는 귀 기울여주지 않느냐는 것이다. 전 세계적으로 성평등 전략은 남성에 비해 권력과 자원이 없는 여성에게 권한을 부여하는 방향으로 진행돼왔기 때문에 주로 '여성 문제'로 맥락화되어 왔고, 남성은 성평등의 맥락에서 덜 고려된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이제, 어느 정도 제도적 평등이 이루어진 우리 같은 사회에서는 성평등 정책에 남성을 통합하는 다음 단계의 전략을 고민할 때가 온 것 같다. 지금 한국 사회는 눈에 띄는 성차별이 사라지고 나니 여성의 파워가 남성을 능가한다는 착시현상이 일어나고, 백래쉬(페미니즘에 대한 남성들의 반격)로 인한 젠더 갈등이 극심하다. 이를 바라보며, 만약 우리가 남성에 대한 성평등 전략을 미리 세웠더라면 작금의 이런 현상은 없었을까 라는 부질없는 질문을 던져본다.


공감 X 우려가 교차하는 ‘남성과 성평등’

서구사회에서는 1980년대 초부터 남성 연구와 운동이 나타났고, EU에서는 2000년대부터 성평등 전략에 남성을 포함시키기 위한 연구와 전략 문건 등을 발간하기 시작했다. 성평등 정책에서 한쪽 이해당사자인 ‘남성’을 다루는 것은 너무 당연해 보이지만, ‘남성과 성평등’이라는 키워드는 아직 낯설고, 많은 질문과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주제이다.  여성차별도 아직 심각한데 남성차별․인권 문제를 꺼낼 때인가, 여성에게 투여되는 자원도 부족한데 이것을 남성과 나누겠다는 것인가, 또는 남성차별을 시정한다는 미명 하에 여성이 차지하던 몇몇 공적 리더 지위에 남성을 임명하는 가장 손쉬운 방법을 이용할 우려는 없는가라는 등의 우려가 그것이다.  이런 이유 때문에 EU에서도, 성평등을 촉진하는 데 있어 남성의 역할을 고려한다는 것은 남성이 불이익을 받는 영역과 특권을 누리고 있는 영역 모두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강조한다. 또한 남성의 불이익과 ‘남성차별’을 강조하는 관점은 매우 단순하고 오해의 소지가 있으므로 균형 잡힌 접근법을 취하라고 제안한다.(각주2)

독일에서는 남성의 역할을 남성 문제 해결의 주체이자, 여성해방의 파트너로 규정하면서도, 비록 소년과 남성이 남성성 규범으로 고통받는 부분도 있지만, 그들에겐 여전히 구조적 특권이 남아있으므로 그 특권에 의문을 제기해야 한다(각주3)는 것을 분명히 하고 있다.  유리그릇처럼 다루기 까다로운 이 주제에 대해 유럽인들은 20여 년 전부터 고민하고, 논쟁하고, 시민들의 생각과 태도를 바꾸기 위한 정책과 실천을 만들어왔다. 현 정부가 ‘여성’을 지우는 손쉬운 방법을 선택한 것과 대조되면서 오랜 민주주의의 힘이 느껴진다.  우리도 이런 맥락들을 민감하게 고려하면서 EU의 남성 정책들을 살펴보자. EU에서 권고하는 남성 정책의 범주는 교육, 일, 돌봄과 가족, 폭력, 건강, 남성성 등으로, 남성의 특권과 불이익이라는 양 측면을 모두 다루고 있다. 대개는 성별 차이를 다루는 데 관심을 두지만, 교육․건강 등 일부 분야에서는 사회계층이나 이주 등으로 인한 남성 간 차이가 남녀 간 차이보다 더 크기 때문에 이를 고려한 정책이 제안된다. 이 글에서는 진로와 돌봄 분야 2가지 사례를 중심으로 살펴볼 예정이다.


소녀의 날(Girls' Day)은 2001년부터 열렸으며, 소년의 날과 같은 날 열린다

남자는 공학, 여자는 사회복지? ‘소년의 날’로 바꿔보자!

EU의 주요한 교육 분야 관심사 중 하나는 노동 시장의 강한 성별 분리 현상을 시정하는 것이다. 여자들은 주로 사회복지와 돌봄, 교육 분야에 종사하고, 남자들은 공학, 제조, 건설 분야에 있는데, 이런 성별 직종 분리는 전 세계적 현상이다.  독일에서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다양한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그 중 하나가 소년의 날(Boys' Day) 액션데이 캠페인이다. 2011년부터 매년 3월이나 4월 중에 하루 열린다. 소년의 날의 컨셉은 아주 간단하다. 소년들은 남성들이 많이 참여하지 않는 326개의 직종 중 정식 훈련이 필요한 20개 직업에 하루 동안 참여해 보는 것이다. 주로 사회 복지, 의료, 가사 서비스 및 교육 분야 등 성장하는 분야의 직업이다. 직업 선택에 영향을 끼치는 많은 요인이 있지만, 특정 직업에 대한 선험적 지식과 전문 분야에 대한 익숙함은 추후 직업 선택에 있어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요소이다. 매년 약 3만여 명의 소년들이 7천여 곳의 기관에서 반나절 또는 하루 종일 직장 생활의 현실에 뛰어 들 수 있는 기회를 제공받는다.

소년의 날 프로젝트 책임자이자 교육학자인 로미 슈투마이어Romy Stühmeier는 "보육 시설과 초등학교에서는 항상 사랑스러운 광경이 나타난다. 아이들은 소년들의 방문에 정말로 흥분하고 즉시 그들을 독점한다"라고 말하며, “이러한 경험들은 환상과 두려움을 실제 경험으로 대체한다. 성별 고정관념은 그렇게 깨진다"라고 소년의 날의 의미를 설명한다. 실제로 참여한 소년의 94%는 그 날이 "좋다" 또는 "훌륭하다"고 평가했다.(2019년 조사 결과)(각주4) 독일 정부도 현재 1년에 한번 열리는 액션데이로 확고한 성별 고정관념을 완전히 떨쳐내기에는 역부족이라는 점을 알고 다양한 프로그램을 개발해서 시행 중이다. 


우선, 정·재계에서 480개 이상의 파트너 조직이 참여하고 장기적으로 진로 안내에서 고정관념을 깨기 위해 ‘클리셰 프리 cliché-free’ 이니셔티브를 진행하고 있다. 성별 고정관념이 없는 진로 및 학업 선택을 위한 좋은 실천 사례 공유, 젊은이들과 함께하는 일상 업무에 필요한 실용적인 도구, 성평등 진로 및 학업 방향 설계 및 지원에 관한 조언 등을 제공한다. 또, 2021년 시작한 에카롬 프로젝트(ECaRoM project, Early care and the role of men)는 성별 고정관념이 영유아 시절부터 효과를 발휘하기 시작한다는 것에 착안하여 어린 나이의 아이들, 특히 남자아이들이 자신과 타인, 환경에 대한 돌봄의 중요성을 배울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교사들을 위한 커리큘럼과 매뉴얼, 교구, 교육‧훈련 등을 제공한다. 그 밖에도, 청소년을 위한 온라인 젠더 매거진 '나의 시험장'(My testing ground)을 개설하여 독일과 독일어권 국가에서는 유일하게 청소년들의 성평등에 대한 진정성 있고 편집되지 않은 게시물을 게재해 젊은 층뿐만 아니라 전문가들과의 논의를 촉발시키고 있다. 포스팅은 소녀, 소년 또는 성소수자가 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와 같은 주제를 다룬다. 성 역할과 불평등, 미래를 위한 진로와 계획, 학교와 직장, 청소년 문화와 여성인권 등에 대해 논의한다.



남성의 육아 참여를 획기적으로 늘린 부모수당제도

“ 베르너는 오늘 지하철 안에서 진땀을 뺐다. 생후 5개월 된 리온을 안고 장을 보러 나왔는데 오늘따라 왜 이렇게 울어대는지 온 몸에 식은땀이 흘렀다. 육아는 정말 보통 일이 아니다. 리온을 달래기 위해 다음 정거장에서 내린 베르너는 땀을 닦으며 출산 몇 달 전을 떠올렸다. 베르너와 줄리는 둘 다 일을 지속하면서 아이도 함께 돌볼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있었다. 독일의 부모수당 제도는 3가지 옵션이 있어 다소 복잡했지만, 그만큼 둘의 상황에 맞게 다양한 선택을 할 수 있었다. 기본 부모수당(Basic Parental Allowance)은 전일제로 아이를 돌볼 경우 12개월 간 지급되지만, 둘 모두 직장에 빨리 복귀해야 하므로 줄리는 출산 후 첫 4개월에, 베르너는 5개월과 6개월에 사용하기로 했다. 6개월 간은 둘만의 힘으로 리온을 온종일 돌볼 수 있다. 이렇게 부모가 둘 다 자녀돌봄에 참여하면 부모수당이 2개월 더 연장․지급된다(Parental Allowance Plus). 즉 총 14개월 간 지급되므로 남은 7~14개월까지 8개월 동안은 둘 다 파트타임으로 일을 하면서 번갈아가며 리온을 돌보기로 했다. 수당은 절반으로 줄지만, 월급이 공백을 메워줄 것이다. 게다가, 부모가 동시에 파트타임을 하면서 아이를 돌보는 경우 부모수당이 4개월 또 연장되므로(Partnership Bonus), 15~18개월까지는 둘 다 일주일에 24시간에서 32시간을 일하며 리온을 돌볼 것이다. ”


한 해에 3만 명도 되지 않는 한국의 남성 육아휴직자 통계를 떠올리면, 꿈만 같은 이야기로 들리는가? 실제로 있을법한 이 가상의 이야기는 독일 가족노인여성청소년부에서 펴낸 자료집의 사례(그림 2)를 갖고 재구성해 본 것이다. 현재 36%의 독일 아버지들이 사용하고 있는 제도이며, 2020년에는 46만 명이 넘는 아버지들이 부모수당을 받았다. 2015년 도입된 '부모수당 플러스' 제도가 자녀를 돌보기 위해 파트타임을 선택하는 아빠들을 더욱 증가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길거리에서 독일 라테 파파를 자주 목격한 것이 우연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 비밀이 바로 최근에 변신을 꾀한 부모수당제도 등 일-가족 균형 정책 때문이었다.


3가지 부모수당 옵션을 결합하여 사용하는 사례 (출처 : Parental Allowance and Parental Leave, 2021, BMFSFJ)

독일의 부모수당제도는 아버지를 자녀 돌봄에 많이 참여시키고, 엄마는 직장에 조기 복귀할 수 있는 방향으로 진화하고 있다. 물론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다. 2000년대 이전까지 독일의 양육지원 정책은 전통적인 성역할에 기반한 가족 돌봄을 강조했으며 가정 밖 보육 서비스의 확장보다는 엄마가 가정 내에서 자녀를 돌보는 방향이 강조되었다. 1986년부터 시작된 육아수당이 있었지만, 휴직 기간 동안 소득을 보장하기에는 너무 적은 금액이었다. 따라서 육아휴직은 여성들만 사용할 수 있었고 이용률 또한 매우 저조했다. 


결국 독일 정부는 2000년대 이후 가족정책의 패러다임 전환을 추진한다. 육아수당도 2007년부터 부모수당으로 변경하면서 소득대체율을 대폭 개선했다. 현재는 연 소득 25만 유로 이상인 고소득자를 제외하고, 출산 전 12개월 간의 소득을 기준으로 65%~100%까지 수당을 받는다. 소득이 적을수록 높은 비율을 적용하는 구조로 설계돼 있어 가구 생계비를 실질적으로 지원하는 개념이다.


또한 부모가 파트타임을 하면서 자녀를 돌보는 경우, 수당은 절반으로 줄지만 기간은 2배로 늘어나기 때문에 최대 32개월까지 가능하다. 아이가 약 만 3세가 될 때까지 부모 돌봄 시간을 확보할 수 있다. 파트타임은 주 24시간에서 32시간까지 가능하므로, 아이의 성장 과정에 맞춰 노동시간을 조절할 수 있다. 부모들도 직장을 그만 둘 걱정 없이 일과 가족생활을 양립할 수 있게 된다.  한국은 부모가 각각 1년씩 육아휴직을 사용할 수 있도록 제도화되어 있다. 1년 간 일을 중단하고 온전히 휴직할 수 있는 고용안정성이 보장된 노동자도 극히 드물 뿐 아니라, 육아휴직 급여도 월평균 102만 5천 원 수준(2021, 고용노동부)이니 활용률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부모가 함께 일과 돌봄을 분담할 수 있도록 유연한 제도 개혁이 필요해 보인다.


돌봄에서 시작된 ‘성별 격차’라는 나비 효과

소년의 날 액션데이와 부모수당 사례는 모두 기존의 남성성 규범에 질문을 제기하며 남성들에게 ‘돌봄’에 더 많이 참여할 것을 제안하고 있다. 이는 단지 여성을 위한 것이 아니며, 성평등에 기여하라고 남성을 강요하는 것도 아니다. 아버지로서 자녀를 돌볼 권리를 보장하는 것이며, 성별에 구애받지 않고 직업을 선택할 자유를 의미하기도 한다. 이것은 결과적으로 구조적 성차별을 완화하는데 기여할 것이다. 독립적으로 생존하기까지 많은 시간이 소요되는 인간에게 있어 돌봄은 선택이 아닌 필수이다. 인간은 누구나 돌봄이 필요한 상호의존적 존재이기 때문에, 부모는 자녀를 돌볼 책임과 함께 돌볼 권리도 보장받아야 한다. 가족을 부양해야 하는 기존의 남성성 규범은 남성에게 특권을 가져다 주기도 했지만, 가족과 함께 더 많은 시간을 보낼 권리를 억압하기도 했다. 이러한 인식의 전환은 최근 가족정책에서 부모권 논의가 중요한 축을 차지하며 부성권, 돌봄권 논의로 나아가고 있다.


소년의 날 액션데이에 참가한 소년들은 돌봄‧복지‧교육 분야 등 전통적으로 여성들이 지배하는 영역에서 일 경험을 해봄으로써, 그들 자신의 미래를 성 고정관념에 기반하지 않고 스스로에게 다음과 같이 질문하는 법을 배운다.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는가?, 내가 뭘 하고 싶은가?, 내가 미래의 직업에서 성취와 행복을 이루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지난 12월, 독일 연방정부의 성평등 정책에 대해 연구‧조사하기 위해 찾아간 인터뷰(각주5)에서, 평등국 전문관인 스벤 폴은 액션데이의 성과에 대해 다음과 같이 기대에 차서 말했다.  

“이 프로젝트의 한 가지 성과는 여기에 참여한 많은 소년․소녀들의 직업의 폭이 넓어졌다는 것이다. 참가 후 많은 소년․소녀들은 이성이 지배하는 직업에서 일하는 것을 상상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이전(12%)보다 훨씬 더 많은 여학생들(21%)이 정보 기술과 컴퓨터 과학 분야 직업을 갖는 것을 상상할 수 있다. 2021/22년 대학 겨울학기 입학생 통계를 보면, 여학생들이 많이 선택한 상위 20개 전공 중 6개가 STEM(Science, Technology, Engineering, and Mathmatics) 과정이다. 여기에는 남성이 지배하는 컴퓨터 공학과 토목 공학 과목이 포함되며, 여성 비중은 각각 19%와 30%에 달한다. 노동시장의 성별 분리 측면에서 봤을 때 중기적으로 어떤 변화가 있을 수 있음을 암시하는 지표들이다.”


이렇듯 남성과 소년이 돌봄에 참여한다는 것은 스스로의 권리와 자유를 되찾는 과정이기도 하면서, 대표적인 성별 격차들을 해소하는 데 결정 적 역할을 한다는 면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전 세계적으로 여성차별을 드러내는 가장 대표적 통계는 성별“임금”격차(Gender Pay Gap)일 것이다. 잘 알려진 바와 같이, 한국은 수년째 OECD 국가 중 1위를 차지하고 있고, 독일도 EU 회원국에서 2위로 높다. 보통은 갭이 너무 크다는 것 자체만 문제 삼지만, 이것이 품고 있는 함의는 더욱 심각하다. 성별 임금격차는 노동시장의 수평적(직종)·수직적(지위) 성별 분리, 육아기 여성 경력단절, 여성의 짧은 근속연수 등 그 자체로 심각한 성차별의 결과이자, 원인이기 때문이다. 


인생의 매 단계가 개인의 자발적 선택인 듯 하지만 거대한 사회구조와 젠더 규범 안에서 여성들의 선택지는 이미 결정돼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 개개인이 존엄한 삶을 살아가는데 가장 기본이 되는 경제적 자립이 여성들에겐 여전히 요원한 일이며, 이는 결국 노년의 연금 축소로 귀결되고 만다. 한국의 성별“연금”격차(Gender Pension Gap)는 57% p로 남자가 100만 원의 연금을 수령할 때 여성은 43만 원을 받는다. 독일도 그 격차가 46% p나 된다.  이런 구조적 격차를 벌이는 시작 지점에 바로 ‘돌봄’ 이슈가 있다. 한국 여성의 가사 및 돌봄 노동시간은 남성의 3.5배에 달한다. 독일에서 성별“돌봄”격차(Gender Care Gap)가 가장 높은 시기는 34세일 때이다.(각주6) 이른바 ‘인생의 러시아워 rush hour of life’로 직장에서의 경력, 파트너십 또는 부부 관계, 자녀 양육과 교육 등 모든 일이 집중되는 시기이다. 이때 결정된 파트너 간 노동량 할당은 장기적인 영향을 미친다. 보통 이 시기에 여성들은 유급노동을 줄이는 대신 무급 돌봄 노동을 더 부담하게 되는데, 이것이 노동시장에서 임금 격차로 이어지고, 노년에 이르러 현격한 연금 격차로 벌어진다. 결국 평생에 걸쳐 자원과 권력 면에서 상대적 약자가 되어 가는 것이다. 이를 성별“권력”격차(Gender Power Gap)라 부를 수 있을 것이다.



‘돌보는 남성성’이라는 대안 모델

그러나 변화는 시작되었다. 20~39세의 독일인 91%는 두 부모가 모두 육아에 참여해야 하며, 81%는 두 부모가 모두 가계소득에 동등한 책임을 져야 한다고 생각한다.(각주7)  최근의 이런 인식 변화는 한국의 젊은 세대도 마찬가지이다. 젊은 아버지들은 가족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며 ‘권리’로 요구하고 있다. 가장 오래되고 전통적으로 여성의 역할이었던 ‘돌봄’ 영역에 남성들이 진입하겠다는 이 선언은 아무리 들어도 반갑다. 이는 스스로의 권리를 되찾는 것이면서도, 그 과정에서 성차별의 구조를 이해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남성들이 가진 특권과 억압을 인지하게 될 것이고, 결과적으로 성평등이 모두에게 이익이 된다는 것을 알아차릴 것이다.


다시 강조하지만, 남성은 여전히 기존의 남성성 규범에 의해 특권을 얻는 존재인 반면, 불이익과 제약을 받는 존재이기도 하다. 그러나 앞으로 성평등 정책은 이러한 역설적 문제들을 세심하고 공정하게 다루어야 할 것이다. 지금처럼 남성을 가해자 또는 피해자로 취급하면 훨씬 간단하고 단순하겠지만, 남성의 참여를 배제한 채 실질적인 성평등을 실현하기는 쉽지 않기 때문이다. 한국의 청년 남성들을 어떻게 성평등 정책의 주체이자 파트너로 참여시킬 수 있을지, EU가 제안하는 대안적 남성성 모델인 ‘돌보는 남성성 caring masculinities’이 어떻게 우리 사회의 주류 담론과 실천될 수 있을지 함께 이야기 나누고 싶다.


[세계 민주인권을 보는 8개의 시선] 세계 곳곳에서 다양한 형태로 벌어지는 '민주주의와 인권 위기'를 목도하며 8명의 필자가 고민과 성찰을 나눕니다.

글 : 이구경숙 (베를린 자유대학교 방문학자, 전 여성가족부 정책보좌관)

* 해당 원고의 의견은 필자 개인의 의견으로, 민주인권기념관의 공식 의견과는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각주1. 커피를 들고 유모차를 끌고 다니는 육아에 적극적인 아빠를 의미하는 말
각주2. The Role of Men in Gender Equality - European strategies & insights (2012, EU)
각주3. Gender equality policy for boys and men in Germany(2020, BMFSFJ(Bundesministerium für Familie, Senioren, Frauen und Jugend))
각주4. Gender equality policy for boys and men in Germany(2020, BMFSFJ(Bundesministerium für Familie, Senioren, Frauen und Jugend))
각주5. BMFSFJ 폴 스벤과의 인터뷰(2022. 12. 6, 이구경숙․이진)
각주6. https://www.bmfsfj.de/bmfsfj/themen/gleichstellung/gender-care-gap/indikator-fuer-die-gleichstellung/gender-care-gap-ein-indikator-fuer-die-gleichstellung-137294
각주7. Gender equality policy for boys and men in Germany(2020, BMFSFJ(Bundesministerium für Familie, Senioren, Frauen und Juge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