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젝트 소식

민주주의 에세이작은 뿌리들의 소란이 만들어내는 민주주의 | 황유미

내 혈관 속에는 '각자도생(各自圖生)'이란 글자가 흐른다. 각자 각, 스스로 자, 꾀할 도, 살 생. 각자가 스스로 제 살길을 꾀함. 뜻풀이를 할 수 없었던 어린 시절에도 나는 아버지가 입버릇처럼 말하던 그 단어가 무엇을 함의하고 있는지 눈치껏 알아차렸다. 내 뒤를 봐줄 사람은 없다는 뜻이구나. 

“이제는 각자도생이다.”

뉴스에서 매일 ‘IMF’란 알파벳만 들리던 그 시절, 밥상머리에서 ‘각자도생’을 가르치는 아버지의 목소리는 긴장을 감추려고 하지만 감추지 못하고 허세를 부리는 초짜 킬러 역할을 맡은 성우의 음성처럼 들렸다. 그 목소리가 너무 불안하게 들려서, 자신의 불안을 새끼들에게 전가할까 전전긍긍하며 검은 불안의 그림자를 제 손아귀에 욱여넣으려는 몸부림이 내 눈에도 보일 정도여서, 나는 반박 없이 밥알을 씹어 삼키며 ‘각자도생의 원칙’을 착실하게 소화했다.


밥때마다 나타나 우리 가족을 노리던 국가부도란 검은 그림자에 집어삼켜지지 않으려면 더 크고, 거대하고, 탄탄한 거인의 비호가 필요했다. 이를테면 학교와 회사, 회사 중에서도 대기업이라 불리는, 그런 거인처럼 큰 곳들…… 합리적 결론에 따라 사회인 된 후엔 덩치가 큰 거인을 찾아가 계약을 맺어 한때 ‘회사원’이란 이름을 얻기도 했지만, 이상하게도 거인의 크기가 커지면 커질수록 불안의 그림자도 짙게 느껴졌다.  역시 아버지 말씀이 맞았네. 나를 보호해 줄 거인은 찾지 않기로 했다. 세간에서는 이러한 내 상태를 압축하여 ‘프리랜서’ ‘독립출판 작가’ ‘등단하지 않은 작가’라는 꼬리표를 달아주었다. 아직 마음에 드는 표식은 없다. 어느 것도 호시탐탐 내 미래를 노리는 불안과 싸워주진 않을 것 같기에.


얼기설기 엮인 작은 뿌리 없이 몸집을 키워나갈 수 있는 시스템은 없다

올해 2월, 한 통의 이메일을 받으면서 나에게는 ‘마포출판문화진흥센터(이하 ‘플랫폼 P’) 입주자협의회 회원’이라는 꼬리표가 추가되었다. 내가 2020년 여름부터 약 1년간 입주 작가로 있었던 플랫폼 P는 출판사와 작가, 편집자, 북 디자이너와 번역가, 일러스트레이터 사진작가 등 출판 생태계에 몸담은 다양한 분야의 직업인들의 업무 공간이자, 출판 교육 및 컨설팅 프로그램을 지원하는 곳이다.  점처럼 고여서 책을 만드는 작업자들이 연결되는 ‘창작자들의 허브’ 역할을 하는 그곳에서 오랜만에 받은 이메일에는 충격적인 내용이 있었다. 마포구청 측에서 센터 운영을 대행하고 있는 운영사 계약을 일방적으로 단축하고, 예산을 삭감하여 신규 입주자 모집이 불투명한 상황이라는 호소였다. 개관한 지 3년이 채 되지 않은 기관에, 구청은 구체적인 이유도 제시하지 않으면서 운영 축소만 종용하고 있었다.


플랫폼 P에서 일을 했던 1년간, 나는 처음으로 내가 하는 일이 다른 작업자와 회사, 회사 안의 편집자와 마케터, 회사 바깥의 인쇄소와 유통사까지, 수많은 직업인들이 잔뿌리처럼 얽혀있는 ‘출판업’이라는 거대한 시스템의 일부란 자각이 생겼다. 얼기설기 엮인 작은 뿌리 없이는 몸집을 키워나갈 수 있는 시스템이 없다는 사실도. 계보 없이 생겨나는 생물체는 없다. 그런데 이미 19세기 중반에, 실험에 의해 오류로 판명이 난 아리스토텔레스의 ‘자연발생설’이 진리인 양 믿으며 자꾸만 혼자 힘으로 태어났다는 착각에 빠져 오만한 결정을 반복해 온 생물체가 있다. 그 생물체의 이름은 ‘국가’다.

나와 내 주변의 일상이 어느 날 갑자기 무너질 수도 있다는 불안감

동료들이 작성한 ‘플랫폼 P 운영 정상화 촉구를 위한 성명서’를 읽으며 2022년 마포구 내 작은도서관이 폐관 위기라는 소식을 들었던 때가 떠올랐다. 작은도서관을 폐관하고 스터디카페로 전환하겠다는 계획을 기사로 접했던 그때가. 그리고 2023년 봄 현재, 나와 동료들은 출판 산업을 진흥하는 시설인 플랫폼 P가 일자리센터가 될지 모른다는 불안한 소문 앞에서 분노한다. 언제든 우리 가족의 밥상을 엎을 수 있는 ‘누군가’가 있다는 만성적 불안에 시달린 부모를 지켜보며 자라난 유년기에 느꼈던 불안도 겹친다. 동네의 작은도서관, 신간을 준비하고 있는 내 동료들이 있는 사무실이 사라진다면. 그리고 그 후에는…? 가까운 미래에 대해 생각할수록 우울한 전망을 하게 되는 건 어린 시절 밥상머리 교육에서부터 시작된 뿌리 깊은 의심 때문일 것이다. 겨울철이면 갈아엎는 보도블록처럼, 내가 언제든, 어느 순간이든, 어느 높으신 한 사람의 결정에 따라 교체될 수 있는 작은 부속품일 수밖에 없다는 서글픈 인식을 물려받은 작은 존재의 핏줄이기 때문이다. 


아버지와 어머니, 나와 너, 우리 가족, 옆집에 사는 내 친구, 친구 아빠와 엄마의 일상이 어느 날 갑자기 무너질 수도 있다는 불안의 검은 그림자에 지지 않으려면 우리를 지켜줄 거인이 필요하다고 말했던 부모는 끝까지 국가는 거인 후보로 쳐주지도 않았다. 국가야말로 거인 중에서도 가장 덩치가 큰 거인인데도.


이 땅에는 거인에게 밟힐 수 밖에 없는 슬픈 운명이 블랙홀처럼 고여 있다 

내 부모는 거인이 발을 옮길 때마다 맘을 졸여야 하는 나라에서 자라났다. 그 시절 거인이 옮기는 발걸음 한 번에 깔아뭉개진 사람들의 머릿수가 광장을 가득 채운 촛불처럼 아른거려서, 부모는 나에게 불길이 번지기 전에 빠져나오는 법부터 가르쳤다. 하필이면 덩치 크고 센 놈 옆에 서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그림자 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말았던 사람들의 얼굴을 생생하게 기억하는 세대, ‘민주화’가 무엇인지는 몰라도 ‘종철’과 ‘한열’의 자식같이 앳된 얼굴이 그림자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는 걸 알아버리고 말았던 날, 어둡고 습한 거인의 발밑에 웅크리고 앉아 읽던 신문과 다듬던 콩나물을 허탈하게 내려놓고 묵념해야 한다는 걸 알았던, 나의 부모 세대. 그들에게 거인과 싸우는 자식은 악몽이다.

반대로 거인에게 밟힌 아버지를 둔 딸도 있다. 소설 <아버지의 해방일지>에서 ‘아버지’는 좌익 활동을 했다는 이유로 잡혀가 전기고문을 당했고, 일평생 후유증을 끌어안고 살아간다. 그로부터 40여 년이 흐른 1987년에도 알다시피 나랏일이란 명목으로 잡혀 들어가 고문을 받다 죽은 사람들이 있었다. 그리고 30여 년이 더 지난 오늘은? 이 땅에는 거인에게 밟힐 수밖에 없는 슬픈 운명이 블랙홀처럼 고여 있고, 어느 시대에나 그 커다란 구멍이 사람들을 빨아들이고 있는 것만 같다는 절망 쪽으로 마음이 쉽게 미끄러진다.

참견하는 인간이 많아져야 거인도 제 발 밑을 의식하며 몸을 사린다

석연치 않은 죽음과 말하지 못한 사연으로 쌓아 올린 무덤 위에서 운이 좋게 살아남았다. 남은 운은 ‘참견’에 쓰고 싶다. 참견하는 인간이 많아져야 거인이 제 발 밑을 의식하며 몸을 사린다고 믿기에. 언론보도, 민원, 성명서 발표 등 여러 창구를 통한 질의에 모호한 답변만 돌아와도 포기하지 않고 같은 질문을 돌멩이처럼 던지는 사람들처럼. ‘네 뒤를 봐줄 사람은 없다’는 아버지의 가르침 역시 잊지 않았다. 그래서 언제 뽑힐지 모르는 잔뿌리의 불안을 아는 사람끼리 뒤를 봐주기로 했다. 


일단은 내 앞 사람의 뒤부터 바라본다. 플랫폼 P 문제에 대응하기 위해 동료들이 조직한 협의회에 가입했다. 현안 홍보를 위한 현수막 설치, 공무원 간담회, 연대서명 요청, 시위 준비라는 고단한 릴레이에 참견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 진지한 투쟁 속에서 지치지 않으려면 즐겁게 싸워야 한다는 걸 잘 알고 있던 동료가 ‘어쨌거나 우리는 책으로 싸우는’ 사람들이라며, 시민들에게 공간의 가치를 알릴 수 있는 북페어 행사 기획을 제안했다. 덕분에 요즘엔 플랫폼 P 최초의 북페어를 만드는 일에 기꺼이 참견하고 있다. 거인의 발밑에 서식하는 작은 뿌리들이 일으킨 소란이 머리 꼭대기까지 닿기를 바라며.


글 : 황유미

소설가. 독립출판 『피구왕 서영』으로 활동을 시작했다. 작은 목소리와 사소한 문제에 귀 기울이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쓰고 싶다.  『오늘도 세계평화를 찾아 주셔서 감사합니다』  『수프, 좋아하세요?』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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