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젝트 소식

민주주의 에세이현대사가 아닌 '현재사'의 관점에서 말하는 민주와 인권 | 심용환


마음은 오직 희생할 뿐이지. 사람이 살아있고 세계가 지탱되는 것은 생각이나 뜻 때문이 아니라, 오직 희생할 뿐인 마음 때문인 거다. 마음은 말없이 사람들을 하나로 모으고 돕고 의지하고 섬기면서 살아가는 가운데서 기쁨을 찾는 거지. 그래서 이번에 들어와서는 성경을 그냥 소리 내 읽는다. 뜻을 찾으려는 생각을 깨끗이 버리고, 그냥 하느님의 마음의 빛깔이 내 마음에 물감이 들 듯 번져 오기를 기대하면서.. 

- 1980. 12. 1 문익환

마음은 오직 희생할 뿐이지. 사람이 살아있고 세계가 지탱되는 것은 생각이나 뜻 때문이 아니라, 오직 희생할 뿐인 마음 때문인 거다. 마음은 말없이 사람들을 하나로 모으고 돕고 의지하고 섬기면서 살아가는 가운데서 기쁨을 찾는 거지. 그래서 이번에 들어와서는 성경을 그냥 소리내 읽는다. 뜻을 찾으려는 생각을 깨끗이 버리고, 그냥 하느님의 마음의 빛깔이 내 마음에 물감이 들 듯 번져 오기를 기대하면서.. - 1980. 12. 1 문익환


1980년 12월 참으로 엄혹했던 시절 민주화운동에 앞장섰던 문익환 목사의 글이다. 1979년 12월 12일부터 1980년 말까지는 대한민국 역사에서 가장 어두운 시간이었다. 전두환과 노태우가 이끄는 신군부의 등장과 5월 18일의 비극. 비로소 민주화가 눈앞에 다가왔다고 생각했던 바로 그때부터 모든 것은 뜻대로 되지 않았다. 이 땅의 민주화는 이토록이나 어려운 것일까. 아마도 문익환은 이 시점에 크게 한계를 느꼈을 것이다. 그렇다고 포기할 것인가. “오직 희생할 뿐인 마음”. 이제 뜻을 찾지 않으며 그냥 “하느님의 마음의 빛깔이 내 마음에 물감이 들 듯” 그렇게 다시 시작해 보자.


그리고 역사는 움직이기 시작했다. 5.18민주화운동은 ‘5월 운동’이라는 이름으로 되살아났다. 신군부가 힘으로 민주주의를 누르던 기간이 채 3년이 되었을까. 재야인사, 대학생 그리고 야당 정치인 등 수많은 사람이 모여들기 시작했고, 그 거대한 민주주의를 향한 걸음은 1987년 6월항쟁이라는 기적을 일으키고 말았다.


그때 그 시절 민주화 운동의 열정과 헌신은 어떤 의미를 지닐까

그리고 어느덧 30여 년의 시간이 흘렀다. 이루 말할 수 없을 만큼 참으로 많은 것이 바뀌었다. 불완전하더라도 독재 체제는 타도되었고 정치적 민주주의는 확고하게 뿌리를 내렸다. 세대가 바뀌어서 1980년대 당시 대학생이었던 분들이 아버지를 넘어 할아버지 세대가 되어가고 있다. 세계화와 외환위기가 불러일으켰던 그 거대한 평지풍파가 오늘날에는 너무나 당연한 ‘일상의 구조’가 아니던가. 2023년 일론 머스크와 챗GPT를 말하는 오늘의 시대에서 도대체 그때 그 시절 민주화운동의 열정과 헌신은 어떤 의미를 지닐까.


폭력이 자욱하던 시대. 기합과 벌칙이 일반적이었던 세상. 학교 가면 선생님이 때리고, 교실에 있으면 선배나 친구가 때리고, 집에 오면 아버지가 때리던 세상. 오늘의 모습은 그때와는 정반대에 서 있다. ‘개인의 신성화’가 이룩된 세상. 이곳에서는 ‘사회’, ‘정의’ 같은 말보다는 ‘개인’, ‘성공’ 같은 말이 훨씬 큰 의미를 지닌다. 균등하거나 평등하다는 말보다는 공정해야 한다는 말이 크고 넓다. ‘얼마 벌어요’를 편하게 말하는 세상인 만큼 팍팍 쓰고, 돈을 뿌리고 다녀도 윤리적 지탄을 받지 않는 세상이 되었다. 감히 상상이나 하던 미래였을까.


양심은 공동체적이며 사회적인 성격을 띠고 있다 

그렇다고 과거에서 완전히 자유롭지도 못하다. 애국자의 탈을 쓴 친일파들이 여전히 국립묘지에 안장되어 있듯 독재 정권에 부역했던 이들은 ‘극우적 언동’과 ‘역사 수정주의’ 사이에서 독재의 역사를 미화하고 면죄부를 거머쥐고자 하는 노력을 포기하지 않고 있다. 한술 더 떠 그때와는 전혀 무관한 젊은 극우파들이 등장하여 훨씬 교묘하고 잔혹한 형태의 언어폭력과 정치적 선동을 이어가기도 한다. 그리고 이 지점에서 한국에서의 민주주의는 교묘하게 왜곡되기 시작했다.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역사를 민주화운동의 역사로 규정하고, 민주화운동은 특정 세력이 주도한 분파 운동이며, 고로 정치적 정파성을 띠고 있다는 식의 주장이 그것이다. '보수는 산업화, 진보는 민주화'라는 식으로 쉽게 도식화하는 행태인데,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이슈를 간편하게 단순화한다. 이러한 문제는 어떻게 해야 극복할 수 있을까.


양심이란 ‘아픔을 아는 마음’이 아닐까 싶군요. 그것도 남의 아픔을 내 아픔처럼 느끼는 마음이지요. 온갖 고난을 몸으로 겪어 아는 사람, 겪어 봤기 때문에, 남의 고난을 그냥 보아 넘길 수 없고, 같이 아파하고, 이의 극복을 위해서 몸을 내대고 사는 사람, 같이 고난을 겪는 사람의 마음이 양심이라는 말이기도 하구요.… 같이 아파하는 양심은 공동체적인 마음이지요. 양심은 사회성을 띠지 않을 수 없어요. 사회성을 띠지 않은 양심, 순수히 개인적인 고고한 양심은 허위의식인 거죠. 그래서 우리는 민족의 양심을 말해야 하는 거고, 인류의 양심을 말해야 해요. - 1987. 2. 19 문익환


1987년 2월 민주화의 여명이 떠오르던 그때 문익환이 남긴 글이다. 우리는 왜 사람일까. 사람이란 무릇 양심을 가지고 있는 존재인데 그렇다면 양심은 무엇일까. ‘아픔을 아는 마음’. 문익환은 "남의 아픔"을 "그냥 보아 넘길 수 없고, 같이 아파하고" 고난에 동참하는 마음을 양심이라고 보았다. 그리고 그러한 양심은 각자의 마음속에 있지만 분명히 공동체적이며 사회적인 성격을 띤다고 확신하였다. 모든 사람 안에 양심이 있고 양심적인 사람들이 함께 살아가는 곳이 국가며 민족이고 세계이며 인류 아닌가. 양심은 결국 사람과 사람 사이에 존재하는 집단적 가치인 것이다.


어떻게 보면 민주주의는 이미 충분히 넘쳐흐르고 인권 의식은 말할 수 없이 높은 이때, 우리는 어떻게 ‘민주’와 ‘인권’을 이야기할 수 있을까. 신학자이자 사상가였던 문익환의 고뇌는 매번 현실적이며 또한 매번 본질적이었다. 앞선 이야기처럼 그는 역사의 고비 고비에서 마음과 양심을 찾았고 현실에서는 민주화운동, 통일운동 같은 구체적인 움직임을 통해 역사의 흐름에 부응하거나 맞서고자 했다.


현재를 회복하려는 시도, 그곳에 민주와 인권이 새롭게 불타오를 것이다 

다시 본질적인 측면에서 시작할 필요가 있다. 민주주의. 그것을 외쳤던 이유가 무엇일까. 독재정권이라는 외부적인 힘, 그로 인한 파괴적 폭력, 그로 인한 인간 본원의 위기의식 때문 아니던가. 오늘날 우리의 형편은 어떤가. 국가, 외부적인 힘, 폭력, 이에 대한 위기의식과 저항성 등이 과거의 주제였다면 오늘 우리의 민주주의는 어느 지점에서 새롭게 시작할 수 있을까. 더구나 이미 갖추어진 민주적 자원이 충분한 때 우리의 시작점은 어떠한 형태로 구축되어 발전할 수 있을까.


‘인권’이라는 주제는 지극히 새롭다. 민주화운동 시절에 인권은 국가 폭력의 비참한 결과에 대한 사과와 배상의 문제였다. 최근의 인권 논의는 여성주의적인 동시에 일상적 주제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현재의 일상을 잘 보존·발전시키는 것이 인권을 신장시키는 행위일까. 그렇게 간단하지는 않을 것이다. 오늘 우리의 인권 의식 혹은 인권이라고 부르는 것으로부터 결핍된 것들, 아마 그 지점에서 인권은 여전히 쟁취해야 할 과제일 것이다.


현대라고 부르던 시간은 이미 황혼 녘에 도달해 있다. ‘민주주의 만세’라고 외치던 그때의 간절함 또한 노쇠한지는 오래다. 그렇다고 시간이 멈추던가. 오늘 우리의 현재에 기반하여 새로운 담론, 새로운 실천, 새로운 본질에 다가서기 위한 노력을 이어가야만 한다. 현재를 회복하려는 시도, 그곳에 민주와 인권이 새롭게 불타오를 것이다.


글 : 심용환

다중 미디어 시대에 등장한 젊은 지식인이자, 단단한 학문적 기초 위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시민과 호흡하는 역사학자. 성균관대학교 역사교육학과를 졸업하고 한양대학교 대학원 사학과에서 「5·18 광주 민주화 운동 국회 청문회 연구(1988~1989)」로 석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심용환역사N교육연구소 소장 및 성공회대학교 외래 교수로 일하고 있다. 오늘 우리가 당면한 현실의 문제를 해결할 방법을 찾기 위해 힘쓰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 『1페이지 한국사 365』, 『우리는 누구도 처벌하지 않았다』, 『리더의 상상력』, 『헌법의 상상력』등이 있다.


* 해당 원고의 의견은 필자 개인의 의견으로, 민주인권기념관의 공식 의견과는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