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젝트 소식

민주주의 에세이돌봄, 최소한의 삶을 넘어 감각의 향유권으로 | 김영옥

엄마는 매우 오랫동안 인지장애, 즉 ‘치매’가 있는 사람으로 살았다. 낮은 경도에서 심각한 경도로, 낮은 중도에서 심각한 중도로 넘어가는 긴 여정이었다. 중도장애 시기에는 틀니조차 사용할 수 없었다. 오로지 잇몸으로만 해야 하는 식사. '그래서’ 요양원에서는 모든 음식을 다 한꺼번에 갈아서 한 그릇의 죽으로 만드는 방법을 택했다. 나는 식판에 달랑 올려져 있는 죽을 볼 때마다 마음이 심란했다. 죽 색깔 때문에도 더욱 그랬다. 콕 짚어 무슨 색이라고 말하기 어려운, 녹색도 아니고 붉은색도 아닌 어떤 누르스름한···.  

새끼손가락으로 죽을 찍어 먹어보았다. 맛이라곤 전혀 없었다. 하물며 맛있는 음식이 가진 그 어떤 냄새도, 모양도 없는 이 죽을 엄마는 몇 년간 삼시 세끼, 싫은 내색 없이 꼬박꼬박 드셨다. 식민 통치하에 태어나 만주로 이남으로 이주하며 하루하루가 생존이었던 힘든 시기를 버텨낸 억척어멈의 평생 밥 윤리였을까. 처음 죽 맛을 본 뒤로도 혹시 달라졌을까 싶어 여러 번 엄마의 죽을 찍어 먹어보았고, 매번 티 내지 않으려 애쓸 만큼 속상했다. 


다른 분들의 식판 위에 올려져 있는 찬을 보면서 이 기묘한 맛 아닌 맛의 출처를 확인하기도 했다. 그쪽 식판의 찬도 별로 먹음직스러운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김치니, 고등어조림이니, 된장국이니 판별은 가능했고, 냄새도 있었다. 이런 죽이 아니면 안 되겠냐는 말을, 나는 엄마가 돌아가실 때까지 요양원 원장에게 단 한 번도 하지 못했다. 그냥 엄마에게 갈 때마다 이것저것 맛있는 걸 해 가려 노력했을 뿐이다. 엄마 돌아가신 지 6년 차인 지금도 맛있는 음식을 앞에 두면 엄마의 죽이 떠올라 마음에 습기가 찬다.

나는 왜 엄마의 밥상에 더 개입하지 못했던 걸까

얼마 전 견학 간 H 노인요양원에서였다. 원장이 이곳에서는 치아가 하나도 없는 어르신도 얼마든지 드실 수 있게 음식을 조리한다고 말했다. 치아가 없다고 음식을 모조리 한꺼번에 갈아서 죽으로 만들어 드리는 그런 요양원도 있더라며, 말도 안 된다고 덧붙였다. 이 말에 내 마음속 저 밑바닥에 고여 있던 쓰라림이 일렁이기 시작했다.  혀에서 살살 녹는 갈비찜을 드실 때 어르신이 얼마나 행복해 하시는지! 그가 자랑스럽게 말할 때, 결국 왈칵 눈물이 났다. 얼른 고개를 숙였지만, 한번 올라온 슬픔은 기다려도 가라앉지 않았다. 먹는 걸 참 좋아하던 엄마가, 죽을 받아 들며 매번 요양보호사에게 고맙다고 말하던 엄마가 떠올랐다. “내가 먹는 걸 잘 소화하잖아!” 아흔을 넘겼다고, 소화 잘하는 위장 덕분이라고 민망함과 자랑스러움을 섞어 말하던 모습도 겹쳤다. 


왜 나는 그 죽을 ‘어쩔 수 없다’고 받아들인 걸까. 소박하지만 맛있는, 그야말로 맛을 느낄 수 있는 그런 밥상을 왜 엄마의 기본 권리로 주장하지 못한 걸까. 왜 엄마가 식욕을 잃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나 편한 위로만 일삼은 걸까. 요양원에 사시는 분들의 밥상에 왜 더 개입하지 못했던 걸까. 집에 돌아와 한참을 나 자신에게 화냈고, 눈물 콧물 흘리며 탄식했다.  그때 내가 돌봄에 관해, 치매/인에 관해 ‘아는 게’ 얼마나 없었던지, 지금이라면 그래도 조금 더 엄마에게 적절한 돌봄을 할 수 있을 텐데···. 미각뿐 아니라 감각 자체가 사람살이에서 차지하는 중요성을 생각할 때, 돌봄에서 감각이 자연스럽게 무시되거나 그 가치가 지워지는 건 심각한 문제다. 이날 나는 (특히 중도) 인지장애를 안고 사는 이들의 감각에 관해, 더 정확히 말하자면 감각의 향유 권리에 대해 각성하게 되었다. 


요양원의 어르신에게 감각은 사치스러운 이야기일까

요양원처럼 한 공간에서 시간표에 따라 일괄적으로 일상이 구성될 때, 단조로움과 지루함, 생기 없음은 쉽사리 이곳의 기본 정조가 될 수 있다. 스스로 일상을 지탱하기 어려워 전적으로 누군가의 돌봄에 기댈 때, 먹는 기쁨을 비롯해 감각의 즐거움은 어느 정도까지 기대할 수 있을까. 


데이케어센터를 흔히 어르신들이 가는 ‘유치원’이라고 말한다. 인지능력이 달라졌으니 복잡하고 추상적인 활동은 조정될 필요가 있다. 그러나 유치원에서의 활동이 유치할 필요는 없다. 요구되는 건 즐거운 자극이지, 유치함이 아니다. 참신하고 즐거운 자극을 위해 단순함과 명료함을 적절히 세련되게 변주할 수 있어야 한다. 요양원이라고 해서 크게 다르지 않다. 상황은 더 나빠지기도 한다. 


요양원에서 제공되는 문화 프로그램은 주로 외부에서 오는 자원/봉사활동가들의 선의에 기대기 때문에, 그곳에 사는 고령주민들의 상태나 취향, 생의 이력 등을 고려한 기획은 언감생심이다. 자원/봉사활동을 원하는 사람들과 프로그램이 필요한 요양원이 만나 무엇인가가 꾸려진다. 그래서 이런 프로그램의 관객으로 동원되는 고통도 드물지 않게 언급된다. 


감각을 일깨우고 활성화하는, 예술적 요소를 포기하지 않은 문화 프로그램은 왜 아예 고려의 대상이 되지 않는 걸까. ‘자기를 상실하고 있는 중’인, 아니면 이미 ‘자기가 다 사라져’ 어떤 빈 껍데기로, 그저 흔적으로 생명을 유지하고 있을 뿐인 존재들이니, 감각은 너무 사치스러운 이야기라는 걸까.  


갈수록 심해지는 요양원의 산업화와 돌봄의 시장화

인지에 장애가 생기면 감각도 작동하지 않는다고 여기는 메커니즘이 있다. 치매라고 부를 만큼 어리석음만 남았는데 무슨 한가롭고 고상한 얘기냐, 하는 은밀하고도 노골적인 관점이다. 이것이야말로 인지장애를 안고 사는 고령자들을 고립과 소외로 ‘유배시키는’ 폭력적인 선입견이다. 


요양원이 새 건물로 이사했을 때, 엄마는 방의 벽지에 그려져 있는 커다란 붉은 목단을 좋아했다. 예쁘다고, 누가 그린 거냐고, 참 잘도 그렸다고 칭송했다. 이후 나는 엄마를 방문할 때면 색과 형태가 아름다운 그림이나 책을 들고 갔다. 늘 성경책과 찬송가를 끼고 살던 엄마를 위해 찬송가를 앱으로 내려받아, 이어폰을 하나씩 나눠 끼고 같이 들었다. 부채에 그려져 있는 어떤 남자(이미지)와 대화를 나누는 엄마 옆에서 그 대화에 끼어들기도 했다. 이 사람이 요즘 이런 안타까운 일을 겪었다더라, 엄마에게 그의 사연을 전하기도 했다. 


지식 단위에서의 기억력은 거의 다 사라진 상태였지만, 이처럼 엄마의 감각은 멀쩡했다. 그러나 나는 이 사실을 사적으로 엄마와 나 사이의 소통 관계 안에 품었지, 제도에 적용해야 할 공적 권리의 토대로 삼지 못했다. 엄마 앞에 놓인 그 죽을 질문하지 못했던 것처럼. 돌봄은 규격화나 자본주의적 효율성, 그에 따른 합리성 논리에 저항해야 한다.  이것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으면 돌봄 자체가 ‘시설화’된다. 연구활동가로서 이 사실을 지적하는 건 당연했다. 그러나 정작 요양원의 현실에서 ‘보호자’로서 이것을 주장하기는 참 어려웠다. 지금도 어렵다. 어쩌면 더 어려워졌는지도 모른다. 요양원의 산업화와 돌봄의 시장화가 한층 더 심해졌기 때문이다.

제도 속에 당연시되는 최소한의 돌봄

보편적 노인복지로 도입된 노인장기요양보험제도는 처음 설계될 때부터 돌봄 인력을 최소한으로 배치했다. 돌봄의존자 10명을 돌봄제공자 4명이 돌보게 한다는 2.5:1이 실제로 의미하는 건 10:1, 야간이라면 평균 18:1이라는 사실. 이것이 최소한의 돌봄으로 이어졌고, 그 결과는 ‘최소한의 존재’로 축소된 돌봄 의존자 노년이라는 건(전희경, “‘최소한’을 넘어서는 돌봄을 희망할 수 있을까‘, <일다>), 알만한 사람은 다 아는 사실이다. 


제도가 도입된 지 15년이 되었다. 문제가 무엇인지 알려주는 경험들은 이미 충분히 쌓였지만, 커뮤니티 케어니, 스마트 케어니 말만 무성할 뿐 구체적인 행동은 감지되지 않는다. 정부의 이런 게으르고 뻔뻔한 태도와 요양원에서 돌봄 받으며 사는 말년은 결코 자신의 인생극에 등장하지 않을 거라고 믿는 시민의 무/의식은 서로 지지대가 된다. 생의 마지막 시간을 요양원에서 돌봄 받으며 사는 걸 자신의 인생 서사에 포함할 수 없는 사람은 요양원의 실태를 알려고도, 개혁에 힘을 쏟으려고도 하지 않는다. 특히 요양원 ‘입소’가 중증치매와 연동되기에 이 부인 기제는 이중적으로 강고하다. 요양원도, 치매에 걸리는 것도, 절대 나의 일이 되어서는 안 되는 최악의 상태라고 생각하고 느낀다. 


돌봄의 가치는 저울질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인지장애는 노년에 대한 상상 중 가장 어둡고 폭력적인 두려움의 영역이다. 다른 상상력을 모두 집어삼키는 블랙홀이다. 그냥 질환이 아니라 자기를 모조리 잃어버리게 되는 질환으로 간주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이 질환과 그로 인해 바뀐 자신의 상태를 절대 자신과 연결하지 않으려는 것도 이 ‘나를 잃어버림’, ‘더 이상 내가 아님’이라는 인식과 관련된다.

그러나, 앞에서 말했듯이 자기는 사라지지 않는다. 지식 차원의 데이터들은 지워져도 감각 차원의 기억과 기능은 충분히 남아 있다, 늙은 사람들, 병든 사람들, 신체뿐 아니라 인지에도 큰 변화가 온 사람들, 여러 이유로 활동이 최소로 제한되거나 축소된 사람들, 이런 사람들에게서 얼마나 쉽게 감각의 권리가 박탈되거나 삭제되는가를 진지하게 생각해 보자. 이들이야말로 감각의 힘이 더욱 필요한 사람들이다.  


돌봄의 가치는 저울질하거나 잴 수 없다. 이론의 차원에서라면 논리 정연한 규범의 정식을 세울 테지만, 사람 사이의 관계에서라면 세밀한 디테일에서 느낌으로 만나고 알아차리는 감각적 소통이 징표가 될 것이다.  아름다운 걸 보고, 평화와 위안을 주는 음악과 다정한 속삭임을 듣고, 다채로운 맛과 냄새를 혀와 코로 느끼고, 보드랍고 따스한 손길과 까슬까슬하고 청량한 질감을 만질 수 있게 돕는 돌봄. 어쩌면 미래에 인지장애를 안고 사는 할매일 수 있는 나는 이런 돌봄을 원한다. 이런 돌봄이 보편적 인권이 되는 사회에 살기 원한다.


글 : 김영옥

생애문화연구소 옥희살롱 연구활동가. 늙어가는 여성의 정체성으로 나이듦과 노년 인권, 돌봄 등을 연구하고 있다. 『노년은 아름다워』, 『흰머리 휘날리며: 예순 이후 페미니즘』, 『늙어감을 사랑하게 된 사람들』, 『새벽 세 시의 몸들에게: 질병, 돌봄, 노년에 대한 다른 이야기』(공저), 『돌봄과 인권』(공저)을 썼다.

* 해당 원고의 의견은 필자 개인의 의견으로, 민주화운동기념관의 공식 의견과는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