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젝트 소식

민주주의 에세이아픈 몸들의 기록 | 김지승

통증은 정밀한 언어다. 특히 보호자가 상주할 수 없는 간호간병통합 병동의 병실에서는 그렇다. 실제 언어보다 환자 개인의 고유한 몸을 더 잘 드러내며 그를 이해하는 데도 용이하다. 새벽에 대장암 수술을 받고 좀 전에 병실로 돌아온 70대 순임 씨의 신음 소리나, 난소암 화학치료 중인 50대 미선 씨의 간헐적인 한숨 소리는 이곳에서 그들의 통증과 존재를 드러내고 확인시키는 언어다. 내가 가능한 참을 수 있을 때까지 참다가 내려놓는 “끙” 소리도 6인실 병동의 나머지 다섯에게는 그렇게 들릴 것이다. 


우연히 한 병실에 모인 여성들이 여러 의미에서 약해지고 돌이킬 수 없어진 몸들을 누군가 봐주었으면 하는 마음과 누구에게도 보이기 싫은 마음을 공유하며 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세계에서 사라진, 비가시적인 아픈 몸들이 겪는 병원에서의 시간은 주로 심장을 경유해 사라졌다. 이해할 수 없이 느리거나 빠르게. 그러다 아주 잠깐, 가령 점심 식판이 여섯 개의 침대를 둘러싼 커튼을 열면 목소리들이 한꺼번에 들리고는 했다. 아픈 몸을 외롭게 홀로 감당하고 있는 이들의 목소리였다. 나는 그 순간이 좋았다. 내가 읽고 쓰는 사람이라는 걸 알고 난 후 그들이 꺼낸 각자의 이야기도, 이야기 속 생소한 단어를 정확히 기록할 수 있도록 또박또박 다시 말해줄 때 퍼지던 웃음도 좋았다.


대낮에도 병실은 어두웠다. 창가 쪽에 마주해 놓인 두 침대의 30대 여성들 중 하나가 창 커튼을 열면 다른 하나가 신경질적으로 커튼을 다시 치기를 반복하기 여러 번. 커튼을 열어젖히는 쪽 여성이 점심 후 세면도구를 가지고 자리를 비운 사이, 굳이 커튼을 다시 닫는 여성에게 방사선 치료 후유증 때문에 입원한 지윤 씨가 한 소리 했다.


“그러다 싸우겠네. 왜 그렇게 악착같이 커튼을 쳐요?”

병실 입구 쪽에 있는 내 침대에서도 커튼을 친 여성의 언짢은 내색이 느껴졌다. 싸움은 이쪽에서 먼저 나겠는데. 일순 병실 공기가 딴딴해졌다. 여성의 날카로운 목소리가 허공을 푹 찔렀다.

“날이 좋잖아요, 짜증 나게. 나는 아파 죽겠는데!”


시어머니가 면회랍시고 와서 ‘애비 밥’ 타령하지 않아 살 것 같다던 지윤 씨가 그래, 이해되네, 하고 성격 좋게 받아주는 걸로 대화는 끝났다. 그 덕에 다시 느슨해진 병실 공기를 밀고 간호사가 들어와 날이 좋아 짜증 난다는 그에게 점심 약을 건네면서 “어머, 맞은편 환자랑 이름이 같으시네요? 김은영, 최은영.” 하는 통에 커튼 싸움 중인 두 사람의 이름을 모두가 알게 됐다. 전날 비슷한 시간대에 입원한 두 은영이들이 언제까지 커튼을 열었다 닫았다 할지, 다들 소소한 구경거리가 생긴 것처럼 관심을 둘에게 모았다. 아니나 다를까, 화장실에서 돌아온 최은영 씨가 커튼을 촥 소리 나게 열어젖혔고 지윤 씨가 붙인 불씨가 아직 남았던 터라 김은영 씨는 즉각 반응했다.


“커튼 쳐주세요. 눈 아파요.”

“10분만요. 제가 우울증이 심해서…”

“우울증도 외과 병동에 입원을 하나?” 지윤 씨가 끼어들었다.

“우울증 걸린 암환자라서요.”


최은영 씨의 덤덤한 대답에 누구도 긍정적으로 생각하라거나, 요즘 우울증 아닌 사람이 어디 있냐, 암은 몇 기냐 같은 말은 하지 않았다. 고요해진 와중에 순임 씨와 미선 씨, 내 통증의 언어만 간헐적으로 병실을 한 바퀴 돌았다. 각자 다른 병증에 압도당하면서도 서로를 연결할 수 있는 공통점을 발견하기란 어렵지 않아서 바짝 날카로워진 마음이 쉽게 풀어지고는 했다. 


우리 중 누구도 마음 편히 아플 수 없는 처지라는 공통점. 생계, 가족, 업무, 돌봄, 약속… 책임져야 하고 살펴야 하고 단단히 묶인 현실까지 함께 입원한 셈이었다. 불안, 공포, 무기력, 우울, 광기, 자책… 느꼈다가 부정했다가 슬픔으로 수렴되는 감정도 닮아 있었다. 그 모든 것들이 매일의 잠을 찍어 누르고 있었고 어쩔 수 없이 병실 창의 커튼을 열었다 닫았다 하도록 했을 것이다.



여섯 중 넷이 암환자였고, 그중 둘은 동거인이 있었지만 법적 보호자로 인정받지 못해 입원신청서의 보증인란을 채우려고 일 년에 한 번 볼까 말까 한 사촌이나 육촌에게 아쉬운 소리를 해야 했다. 1인 가족인 나 역시 사정이 크게 다르지 않았다. 최은영 씨가 자연스럽게 생활동반자법에 대해 말을 꺼냈고, 나와 김은영 씨가 크게 동의하자 지윤 씨와 순임 씨가 궁금함을 내비치면서 생활동반자법 설명회가 잠깐 진행되기도 했다. 혼자 사는 다른 여성 노인들과 가까이 의지하며 살던 순임 씨는 병실 누구라도 눈치챌 만한, 보험료 배분을 기대하는 자식들의 잦은 전화에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노인 빈곤 문제는 ‘여성노인’ 빈곤 문제나 다름없어서 병실의 모두가 순임 씨가 보험료를 꼭 쥐고 있길 바랐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코로나 직전 가게를 연 큰아들에게 넘어갈 확률이 높아 보였다. 참 신기한 일이었다. 병실의 상황이 세대별 여성들이 겪고 있는 현실과 사회 문제의 반영이자 결과라고 해도 전혀 무리가 없었다. 우연이겠지 하면서도 정말 우연이기만 할까 싶은 삶들이 거기 있었다.


제일 말이 없던 미선 씨는 퇴원 즈음에야 자기 상황을 털어놓았는데, 열 번째인가 열한 번째 입원 직전에 이혼했다고 했다. 계속 아픈 사람과 누가 살고 싶겠어요. 그가 직접 꺼낸 이혼 사유는 간단했다. 그 짧은 말에 담겨 있는 맥락은 그리 간단치 않아 보였다. 그가 계속 아팠던 게 원인이 아니라, 계속 아픈 사람이 일상을 유지하고 존중받으며 살 수 있는 사회가 아닌 게 문제라는 걸, 구조와 인식의 미비함이 관계에까지 영향을 미치게 된 거라는 걸 말은 안해도 다들 아는 것 같았다. 오래 아프면 절로 알게 되는 게 있었다. 물론 알아도 자기 탓을 맨 앞에 두고 살지만. 이런 이야기를 써도 될지 물었을 때 미선 씨가 말했다.


“내 삶이 그럴 가치가 있다는 거잖아요?”


사람은 누구나 기억되고 기록될 가치를 지닌다. 그렇게 믿고 통증의 언어를 가진 이들을 기억하려고 애쓴다. 누군가는 사람이지만 누군가는 덜 사람이고, 다른 누군가는 가까스로 사람인 세계에서 아픈 몸의 기록은 한 인간을 초과하는 삶과 죽음의 면밀한 복원작업일 수 있다. 그것 외에 아픈 몸을 수시로 지우는 권력과 폭력에 대항하는 방법을 아직 나는 잘 모른다. 


몸과 마음의 폐허에서 다시 살아야 하는 이들이 자신을 ‘아픈’ 사람이 아니라 아픈 ‘사람’으로 보듬을 수 있도록 지원하는 제도와 인식에 관한 상상을 요청할 수는 있을 것이다. 그 또한 기록과 기억을 기반으로 가능할 일이다. 그러니 정상성의 권력에 의해 아픈 몸들의 시간이 지워지지 않도록, 가까스로 사람 말고 그냥 사람일 수 있도록 누구나 모두가 말하고 기록하기를. 변화를 요구하는 힘 센 기억이 되기를.


글 : 김지승

작가. 여성적 글쓰기, 여성노인 서사에 관심을 두고 개인 연구와 강의를 진행하고 있다. 『100세 수업』, 『아무튼, 연필』, 『짐승일기』 등을 썼다.

* 해당 원고의 의견은 필자 개인의 의견으로, 민주화운동기념관의 공식 의견과는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민주화운동기념관] 04322 서울특별시 용산구 한강대로71길 37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16029 경기도 의왕시 내손순환로 132  | T.031-361-9500 F.031-361-957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