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젝트 소식

민주주의 에세이소수자의 인권이 담기는 민주주의 | 김예원

오천만 년이 넘는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우리나라는 불과 백 년 전, 주권을 잃은 채 일본의 식민지 한 가운데를 지나고 있었다. 불과 한 세기 안에 일본으로부터의 독립과 한국전쟁, 군부독재와 권위주의 시대를 지나 선진국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준의 민주주의를 이룩하면서, 남한은 가히 기적 같은 나라라는 세계의 찬사를 받았다. 


이코노미스트의 산하 기관 EIU(The Economist Intelligence Unit)가 발표하는 비교적 전통적인 민주주의 지표는 선거 과정과 다원주의, 시민의 자유, 정부의 기능, 정치 참여, 그리고 정치문화 이렇게 다섯 범주로 민주주의 수준을 들여다보는데, 한국은 이 범주 모두에 걸쳐 전반적으로 높은 수준으로 조사되곤 한다.

같은 대한민국의 오늘을 살아가는 사람들 안에는 70년대와 80년대 유신정권과 전두환 정권의 폭압적 권력에 맞서 거리에 나갔던 사람도 있지만, 태어날 때부터 자연스레 민주주의 안에서 살아온 사람도 있다. 자유롭고 공정한 선거가 실제로 치러지고, 법치주의, 시민의 권리보호, 행정부에 대한 수평적 견제가 가능해진 것이 길게 봐야 30년 정도밖에 되지 않기 때문에, 민주주의와 인권은 누군가에게는 피눈물이요, 누군가에게는 공기처럼 당연한 일상이기도 하다. 중요한 것은 언제 어떻게 민주주의를 만나고 누리고 있건 민주주의는 포기하거나 타협할 수 없는 대한민국의 중요한 가치라는 점이다.

민주주의 안에서 보장되기 어려운 소수자의 인권
장애인 당사자이자 변호사로서 장애인권법센터라는 법률사무소를 통해 장애인, 아동, 여성 등 취약하거나 소외된 사람들의 사건을 변론하며 살고 있다. 사건을 통한 제도개선 현장에서 꿈틀거리는 민주주의를 느낄 때도 있지만, 민주주의 안에서 소수자의 인권이 보장되는 것이 생각보다 어렵다는 것을 절감할 때도 있다. 분명히 우리나라는 정책과 법률이 여론에 빠르게 반응하고 변화하기는 하지만, 정작 그 안에 당사자의 목소리가 잘 담기는지 의문이 들 때가 있기 때문이다.

장애인권법센터에서 상담 전화를 받다 보면 수시로 이런 질문을 듣는다. "당신은 장애인 당사자인가?" 


한 눈이 없는 시각장애인으로 평생 살아왔으니 ‘맞다’라고 답해도 틀린 말은 아니지만 그렇게 즉답을 하기가 참 쉽지 않다. 정작 이 질문을 던진 사람은 나에게 '당신의 신체와 정신 중 어딘가에 손상이나 기능 상실이 있느냐'는 취지가 아닌, '당신은 소수자로서 사회에서 배제되어 본 경험을 해 본 적이 있는가?'라고 질문하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어서다.



정치 의사결정에서 배제되는 사회적 소수자

민주주의 안에서 사회적 소수성을 가진 당사자가 정치 의사결정에 직접 참여하는 것은 그만큼 쉽지 않다. 실제로 현실 정치에 참여하고 있는 장애인을 놓고 보더라도 '장애인'이라서라기보다는 장애인이지만 한 분야의 '전문가'로서 쌓아온 경력이나 이력을 배경으로 하는 것을 알 수 있다.
 

어찌 보면 불가피한 일이기도 하다. 민주주의라는 것이 국가의 운영이나 사회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고안된 비교적 합리적인 의사결정의 과정과 절차를 의미하는 것인데, 날이 갈수록 사회가 복잡해지면서 특정 영역과 분야에 대한 전문지식의 수요가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최근 소위 '전문가'라는 사람들은 선거를 거듭하며 정당 내 최대집단으로 자리 잡았고, 선거캠프나 공천심사위원회, 비상대책위원회, 혁신위원회 등은 대부분 ‘전문가’라고 불리는 법률가, 학자, 시민운동가나 언론인들로 채워지고 있다.

이에 비해 권력과 정치적 의사결정에서 소외된 사람들, 사회적 소수자들이 당사자 본인 아니면 그 결사체를 통하여 정치과정에 참여하는 비율은 여전히 미미한 수준이다. 정당이나 지방자치단체에 여러 종류의 직능위원회나 지역위원회가 있긴 있지만, 그런 상설 위원회들은 선거 동원이나 홍보에 소모되는 경우가 많고, 정작 사회적 소수자의 요구를 바탕으로 정책을 만들어 내는 기능은 제대로 작동하지 못한다. 정당마다 있는 장애인 위원회도 그 사정이 별반 다르지 않다.

장애인을 위한 정책을 연구하고 발굴하여 직업 정치인을 통해 입법하는 기능보다는 출세의 등용문 내지는 세력 확장의 수단으로 왜곡되는 경우들이 있다. 이런 현실 속에서 남발되는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수많은 선거 공약들은 전문가들의 코멘트나 제안을 면밀한 검토 없이 이것저것 다 끌어모아 놓은 책자가 될 뿐이다. 나라의 의사결정 과정에 당사자와 집단의 이해를 대표하는 조직보다 이른바 '고학력 중산층 전문가'의 영향력이 더 큰 상황이라 할 수 있다.



소수자의 인권 실현이 꽃피는 날
어릴 때부터 장애인 거주시설에 살아오면서 성인이 된 이후에도 스스로 투표라는 것을 해 본 적이 없는 한 지체장애인의 제대로 된 투표권 행사를 위하여 법률지원을 했던 적이 있다. 시설에 살 때는 시설장이 '거소투표'라는 제도를 악용해서 본인이 지지하는 후보자나 정당에 투표하라고 시켰다고 한다. 자신의 의지로 어렵게 탈시설하여 지역사회에 살게 된 후 처음으로 집 근처 투표장에 가서 소중한 한 표를 던졌던 그 기분은 어떠했을까.

민주주의의 중요한 사상적 기초는 개인주의이다. 한 개인의 자유와 권리가 제대로 보장되면 그 안에서 다양성과 창의성이 자라나고 이를 바탕으로 국가와 사회가 발전한다고 믿는 것이다. 개인주의의 발전을 위해 국가권력의 행사는 민주적 절차를 통해 생긴 법률로 제한된다. 결국 제대로 된 정책은 전문가가 정답을 내놓는 모양새가 아닌, 사회를 구성하는 사람들의 다양한 이익이 표출되고 조정되면서 방향이 정해지기 마련이다.

그 표출되는 이익의 내용이 사익(私益)을 기반으로 하는 것은 인간의 본성상 당연하다. 이익 표출의 방식이 온건한 수위에 머물러야 한다는 기대 역시 과욕이다. 그래서 장애인 단체가 시위하거나 장애인 당사자가 크게 목소리를 내면 그 내용은 들여다보려고 하지 않고, 좌표를 찍어 공격하고 소수자 혐오를 조장하는 정치인을 경계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민주주의 안의 소수자 인권 실현은 헌법 제11조의 ‘법 앞의 평등’과 직결된다. 소수성을 가진 개인이 혐오에 노출될 위험 없이 날로 발전하고, 그 다양성이 당사자의 목소리를 통해 정책에 담길 때 소수자의 인권은 민주주의 안에서 꽃필 수 있다. 누구나 가지고 있는 소수성을 사회에 가감 없이 드러내는 것이 넉넉히 허용될 때 헌법 속 평등은 우리 삶 속에 녹아들 수 있지 않을까.


글 : 김예원
<장애인권법센터> 변호사. 인권활동가. 취약한 범죄피해자를 위해 무료로 법률지원을 하고 있다. 『상처가 될 줄 몰랐다는 말』을 비롯한 여러 책을 썼고, 범죄피해자 지원 대통령 표창, 변호사 공익대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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