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젝트 소식

민주주의 에세이사회적 배치를 바꾸는 돌봄 민주주의 | 류은숙


팔순이 넘은 엄마를 만날 때마다 반복적으로 듣는 말이 있다. ‘내가 원래도 말을 잘 못했는데 점점 더 말을 못하게 된다’는 것이다. ‘엄마, 나도 그래. 자꾸 단어가 생각 안 나.’ 이렇게 말해봤자, 위로가 되지는 못한다. 엄마의 말을 곱씹게 된다. 엄마가 정말 ‘원래’ 말을 못했나? 말을 ‘못한다’는 것의 의미는 뭘까? ‘더’ 말을 못하게 될 때 나는 어떻게 엄마에게 응답해야 할까?  


경청되지 못한 사람들의 말

문득 다른 질문이 들었다. 엄마는 무시받았던 경험을 ‘원래 내가 말을 못했다’는 식의 자기 탓으로 돌린 건 아닐까? 엄마는 말을 못하는 사람이 아니라 경청되지 못한 것 아닐까? 말을 한다는 것이 성립되려면 내가 단지 말을 하는 것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말을 말로써 들으려는 상대의 반응이 요구된다. 나의 엄마처럼, 가난한 여성이거나 육아와 가사를 등에 지고 불안정 노동으로 생계를 꾸려온 사람의 말을 사회는 중요하게 듣지 않았다. 


내 엄마처럼, 말을 했으나 말을 무시당했던 존재들이 얼마나 많은가. 영유아부터 노년까지, 장애·성별·계급·지역·출신 등에 따라 그 존재에 대한 듣기와 응답하기의 사회적 태도는 아주 다르다. 경청되지 않는 경우는 대개 불평등과 차별의 피해자이거나 집중적인 돌봄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다. 앎을 강조하는 사회에서 모순되게도 ‘몰라도 된다’는 무지의 방치가 허용되는 것이 돌봄이다. 경제의 언어, 정치의 언어, 법의 언어 등과 달리 배우고 익히려 하지 않는 것이 돌봄의 언어다. 


돌봄의 언어와 인간의 취약성

돌봄의 언어는 인간의 취약성과 그에 따른 응답에 대한 고민에서 출발한다. 상처 입을 가능성으로서의 취약성은 누구에게나 해당한다. 하지만 흔히 취약성은 장애와 노년 등 소위 종속적이고 열등하다는 식의 낙인을 찍기 쉬운 범주의 사람들에게만 국한된 것으로 해석된다. 그래서 돌봄을 좀 더 필요로 한다는 이유로 또는 누군가를 돌본다는 이유로 내버려지거나 권리 박탈의 빌미가 된다. 누구나 취약할 가능성이 있지만, 누군가가 더 특별하게 취약해지는 상황과 환경도 분명 존재한다. 보편적 취약성의 토대 위에서 더 취약해질 수 있는 상황과 환경을 문제삼는 것이 돌봄의 대응이다. 그렇지 않고 취약해진 사람의 원래 속성인 양 취약성을 다루게 되면 무시와 비하, 차별과 폭력으로 대응하게 된다. 


‘원래’ 말 못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누가 무엇을 ‘말’로 규정하느냐에 따라 말 못함을 강요받았을 뿐이다. 돌봄의 언어로 소통하려는 사회에서는 돌봄을 요구하는 존재 그 자체를, 온몸의 표현을, 말로써 받아들인다. 돌봄의 언어는 인간의 보편적 취약성을 토대로 함께 묶이고, 함께 존엄성을 지키는 것에 관한 것이다. 돌봄을 필요로 하는 사람과 돌보는 사람이 맺는 돌봄관계가 고립되지 않고, 우울, 소진, 억울함, 건강 상실과 폭력적 관계 등에 빠지지 않도록 지지하고 지탱하는 언어, 신뢰와 유대를 이어갈 수 있는 언어, 몸으로 체감할 수 있는 언어가 돌봄의 언어다.

돌봄 민주주의의 진정한 의미

민주주의는 어느 누구도 배제하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배제하지 않으려면 그 존재의 말을 듣고 해석하고 적절하게 반응하려는 실천이 필수적이다. 돌봄을 성스러운 행위로 추앙하거나 험하고 추한 허드렛일로 비하하는 식의 양극단은 서로를 떠받치고 이용하는 구조다. 극단적 돌봄 사례들만 주목하면서, 그 주인공을 돌봄의 순교자 삼거나 간병살해자로 몰면서 사회는 책임에서 쏙 빠져나가는 구조는 반민주적이다. 


돌봄 민주주의란 돌봄을 누구나의 권리이자 책임으로 여기는 것이다. 돌봄은 자기 돌봄을 반드시 포함한다. 헌신이 곧 희생적이어야 할 까닭은 없다. ‘엄마처럼 돌본다’는 식으로 돌봄을 성별화하거나 희생을 숭고화하는 것은 민주주의와는 거리가 멀다.  돌봄은 아프고 상처 입고 노화한 몸을 몸으로 직접 돌보는 행위이다. 몸을 돌보는 것은 마음 돌봄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다. 돌봄관계에 있는 사람들을 고립·배제해 독박 돌봄을 강요하거나 돌봄이라는 이름의 유폐와 방치를 허용하는 것은 돌봄 민주주의와는 거리가 멀다. 돌봄민주주의는 개인적 관계에서의 친밀한 돌봄을 넘어 돌봄을 돌보는 정치적 책임을 요구한다. 


자신이 의식하든 않든 간에 사람은 누구나 돌봄 과정에 참여하는 존재다. 누구는 그 관계에서 신뢰와 협력의 관계를 만들어 내지만, 누구는 학대나 방임 등으로 관계를 파괴한다. 왜냐면 돌봄도 권력관계에서 벌어지는 일이기 때문이다. 독재정권과 시민과의 관계에서처럼 권력관계적 속성을 갖기 때문에 억압과 지배가 벌어지고, 특정 개인이나 집단이 배제된다. 시민들이 저항의 정치로 체제를 민주화하고 평등한 자유의 관계를 지향하듯이, 돌봄의 권력관계가 어디를 향하느냐는 돌봄이 행해지는 사회 구조에 달려있다. 돌봄 인프라의 구축을 간병인 등 개별적 돌봄자가 할 수는 없다. 돌봄을 돌보는 시스템의 구축이 요구되고, 이를 위한 돌봄 정치가 요구된다. 


돌봄 민주주의는 권력관계의 구조와 속성을 바꾸어서 서로 돌보고 함께 돌보는 관계로 나아가는 것을 말한다. 돌봄에 대한 의무와 책임을 같이 지는 돌봄의 동심원이 필요하다. 가운데 핵심에 돌봄자와 돌봄의존자(일방적이 아닌 상호의존적인 돌봄관계)가 있다면 이 관계를 둘러싼 친지나 친구, 시민들, 돌봄 기관, 지역사회, 지자체와 중앙정부가 자기 위치에서 돌봄의 가치를 실현하는 책임의 동심원이 필요하다. 

 

돌봄을 중심으로 사회의 재편성 추구

흔히 복지를 좀 더 확충하면 돌봄이 될 듯 얘기하지만 그렇지 않다. 복지의 확충은 필수적이지만 그게 전부가 아니란 말이다. 돌봄민주주의는 있는 그대로의 틀에서 복지를 보충하는 것이 아니라 돌봄을 중심으로 사회를 재편성하는 걸 추구한다. 소위 ‘생산적, 표준적, 정상적’인 몸을 중심으로 위계화하는 사회관계를 문제 삼는다. 경제성장을 중심으로 두면, 소위 ‘비생산’적인 존재들은 주변화된다. 생산하는 몸과 돌보는 몸을 나누는 위계적인 이분법이 사회 속 관계들을 지배하게 된다. 임금노동을 하는 활동은 중심이 되고, 돌보는 활동은 주변이 된다. 주변화된 돌봄은 임금노동시장에 속하더라도 주변부 취급을 받게 된다. 돌봄에 대한 가치 폄하는 무급과 유급 노동을 가리지 않는다. 사회 전반적으로 경쟁을 가치의 중심으로 두면, 서로 돌보고 협력하는 활동은 주변이 된다. 국가는 돌봄을 공적 책임으로 수행하기보단 가족의 책임이나 사적인 도리로 떠넘기려 한다. 가족의 부담을 덜어준다는 명분으로는 다른 사회구성원을 착취하는 돌봄, 질 낮은 돌봄을 획책하는 정책을 주로 이용하려 든다. 이런 일들이 바로 지금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는 반-돌봄의 정치이다.  


어떤 돌봄을 추구할 것인가, 어떤 돌봄 관계를 맺을 것인가는 치열하고 섬세한 돌봄 정치를 요구한다. 영유아부터 노년까지, 일생에 걸쳐 정도의 차이가 있지만 장애와 질병과 노화를 보편적으로 경험하는 사람들의 돌봄 욕구를 인정해야 한다. 그 욕구와 필요를 사회적으로 충족시켜야 할 기본적 인권으로 판단해야 책임 있게 대응하게 된다. 재정 지출의 우선순위를 돌봄이라는 필수적 권리에 두고, 모두를 보편적인 돌봄자로 전제하고 노동과 돌봄 시간을 조정하는 정치가 요구된다. 구체적인 돌봄에서는 사람을 중심으로 인권적 돌봄을 직접 제공하는 역량이 요구된다. 돌봄이 일방적인 제공이 아닌 상호작용으로서 이뤄지려면, 돌봄 받는 사람의 반응이 판단의 기준이 돼야 한다. 


늘 말을 해왔는데 듣지 못하고 해석하지 못한 돌봄의 언어를 배우고 익히려는 돌봄 시민이 절실하다. 엄마가 ‘더’ 말을 못하게 될수록, 내가 ‘더’ 잘 들을 수 있어야 할 것이다. ‘더’와 ‘덜’의 차이는 있지만, 우리는 모두 돌봄의 필요자이자 돌보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글 : 류은숙
인권연구소 ‘창’ 연구활동가. 1992년부터 인권활동가로 살아왔다. 인권운동사랑방에서 아동인권교육을 시작했고 최근엔 돌봄을 중심주제로 삼고 있다. 『인권을 외치다』, 『사람을 옹호하라』, 『여자들은 다른 장소를 살아간다』, 『돌봄과 인권』(공저) 등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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