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젝트 소식

민주주의 에세이슈뢰딩거의 비정규직과 학교 사회 | 정보라

대학 강사였을 때 연세대 노문과 전공 학생들이 결성한 학과 동아리의 자문을 맡아 달라는 부탁을 받은 적이 있다. 동아리에서 활동하는 우리과 학생이 직접 나에게 동아리의 역사와 활동 상황을 자세하게 설명하며 정중하게 부탁했으나 나는 수락할 수 없었다. 학생을 실망시키고 싶지 않았지만, 그리고 학생 동아리 활동에 관심이 없었던 것도 아니지만, 나는 자문‘교수’ 역할을 수행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나는 학교 구성원으로 존재했지만 동시에 아무 권한이 없으므로 존재하지 않았다 


일단 나는 정규직 교수가 아니라서 학내 공간을 대관할 자격이 없었다. 모든 학교가 다 강사 권한을 이런 식으로 제한하는 건 아닌데 연세대학교는 강사가 학내 공간을 대여할 수 없다. 동아리 활동에 필요한 공간을 마련해야 할 경우, 내가 처리하는 방법은 학과 사무실에 부탁해서 신청하는 것뿐이었다. 아니면 학생들이 직접 신청해야 했다. 


급하게 동아리 활동 공간이 필요하더라도 내 직권으로 처리할 수 없었다. 동아리 활동에 필요한 경비도 학과에서 지원받을 수 있는지 불분명했다. 학과장님에게 개인적으로 문의할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비정규직 강사가 학생 지도를 위해서 학과비를 공식적으로 신청할 수 있는 경로나 제도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다. 내가 사비를 들여야 할 것이 상당히 명백해 보였다. 그때 내 월급은 세금 제하면 150만 원 정도였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나는 학생들에게 내가 권한도 없고 돈도 없는 비정규직이라는 사실을 알리고 싶지 않았다. 자문 역할을 거절하면서 나는 이런 자세한 설명을 하지 않았다. 나에게 부탁한 학생은 실망한 것 같았지만 다시 부탁하지 않았다. 그것은 학생에게 몹시 미안한 일이었고, 나에게 수치스럽고 민망한 경험이었다. 나는 학교 구성원으로서 존재했지만 동시에 아무 권한이 없으므로 존재하지 않았다.


비정규직 강사는 책임도 권한도 없지만 연구와 강의를 하며 학생지도 노동을 한다


퇴직금 소송을 진행하면서 나는 여러 강사 퇴직금 소송에서 학교 측이 비정규직 강사는 학과 행정과 학생지도에 참여할 책임이 없기 때문에 정규직 교수보다 노동을 적게 한다고 주장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내 경험으로는 책임이 없는 게 아니라 비정규직에게는 그런 권한이 주어지지 않는 것이다. 강사가 비정규직이기 때문에 학과 행정에서 배제되는 대표적인 경우가 강의개설권을 주지 않는 것이다. 학과 전공필수 과목이고 내가 몇 년이나 해왔던 강의인데, 학생이 다음 학기에 혹은 내년에 그 강의가 개설되는지 물으면 나는 대답할 수 없다. 


강의는 교수들이 결정해서 개설하거나 개설하지 않으며, 나는 그 과정에 참여할 권한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권한이 있건 없건 강사는 어쨌든 대학에서 연구와 강의노동을 수행하는 교육자이고, 강의를 하면 학생지도를 당연히 하게 된다. 책임이 없다고 안 해도 되는 게 아니라 책임도 권한도 없지만 학생지도 노동은 한다. 


학과 행정도 마찬가지다. 연세대학교 노어노문학과는 한 학기에 두 번 정도 러시아어 과목을 강의하는 교수와 강사들이 전부 모여서 회의를 진행했다. 이름은 러시아어 과목 ‘교강사’ 회의였지만, 실제로 모여보면 교수는 한 명이고 나머지 일곱 명에서 열 명은 전부 강사들이었다. 행정시스템에 접속해서 메뉴를 선택하고 학교에 보고서를 올리고 필요한 제도적 신청을 할 권한은 교수에게만 있으니까, 학과 교수 중에서 가장 끗발이 약한 교수가 실무처리를 위해 참석하는 것이다. 


러시아어 수업 회의에서 강사들은 학기 초에 자신이 맡은 강좌의 수강생 숫자, 수강생 어학 수준, 전반적인 교육과정 진행을 논의했다. 학기 말에는 강좌마다 진도를 어디까지 나갔는지 확인하고 다음 학기에 어디서부터 진도를 시작해야 할지 논의했다. 러시아어 교재를 선정하고 수업방식에 대한 의견을 교환하기도 했다. 교재 선정, 진도 확인, 강좌별 수강생 숫자 통일, 강좌 수준에 맞지 않는 학생의 수강 여부 결정 등은 모두 학과 행정 업무이다. 나는 러시아어 수업을 맡은 학기에는 매번 이 학과 회의에 참여했으며 학과 회의록도 여러 번 작성했다. 그러니까 강사가 학과 행정에 참여할 의무가 없다는 주장도, 그렇기 때문에 교수보다 노동을 적게 한다는 주장도 모두 거짓이다. 단지 비정규직의 노동은 노동으로 인정받지 못할 뿐이다. 





비정규직의 시간과 노력은 이 신분을 유지하기 위한 비용으로 여기고 체념할 뿐이다 


비정규직의 시간과 노력은 보상 받지 못한다. 비정규직이라는 신분이나마 유지하기 위해서 치를 수밖에 없는 비용으로 여기고 체념할 뿐이다. 그런데 이 러시아어 ‘교강사’ 회의에서 내가, 혹은 다른 비정규직 강사 선생님들이 작성한 회의록은 학과가 러시아어 교과 과정을 정상적으로 운영하고 있다는 증거이자 실적으로서 학교에 정기적으로 제출되었다. 


그렇다면 회의에 참석하고 회의록을 작성한 강사는 학과 행정에 참여한 것인가 참여하지 않은 것인가? 권한이 없어도 최선을 다해 학생을 지도한 강사는 교육자인가 아닌가? 책임이 없어도 학과 회의에 참여하고 회의록을 작성한 강사는 대학이라는 교육공동체의 구성원인가 아닌가? 고등교육법 개정안은 강사가 교원이고 교육자라고 규정하는데, 학교 측 법률대리인은 아니라고 주장한다. 강사의 존재론적 실체는 대체 어디에 있는가? 


한국 대학은 이 간단한 질문에 모순적이고 부조리한 질문만 되풀이해 내놓으면서 위기의 길로 스스로 들어선 것인지도 모른다. 학령인구가 줄어들면 교원의 숫자는 그대로인데 학생 숫자는 줄어드니까, 아주 이상적으로 생각한다면 교원 한 명이 소수의 학생에게 맞춤식 교육을 제공할 수도 있다. 


소수 기득권층이 권력을 독점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비민주적인 생각

대학에서 대형강의가 사라지고 모든 학생이 최소한 한 명 혹은 두세 명의 지도교수에게 맞춤식으로 고등교육을 받는다면 한국의 학문 수준은 눈부시게 발전할 것이다. 그러나 한국 대학은, 그리고 대학이 속해 있는 한국 사회는, 교수라는 직위를 아주 극소수만이 진입할 수 있는 특권층으로 남겨두고, 그 아래 많은 강사들이 불안정한 비정규직 신분으로 강의와 학생지도와 때로는 학과 행정까지 아우르는 실무를 수행하고, 학생들은 등록금을 납부할 때만 능동적이고 실제 수업에서는 수동적으로 강의를 ‘듣고’ 교육을 ‘받는’ 대상으로만 남아있는 구조를 유지하고자 한다. 이 구조 자체가 소수 기득권층이 권력을 독점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비민주적인 생각을 바탕에 깔고 있다. 


교육부도 정부도 이러한 비민주적인 관점을 무너뜨리려 하지 않는다. 그러니까 학교 측 법률대리인은 고등교육법 개정안에도 불구하고 정규직 교수만이 ‘진짜’ 교원이고 강사는 학교가 쓰다 버리는 소모품에 불과하다고 당당히 주장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차별적이고 권위주의적인 모습이 교육기관의 일반적이고 정상적인 체제로 남아 있는 한 대한민국 교육 현장에서 민주적인 가치와 인권 존중도, 수평적인 의사전달도 효율적인 정보전달도 불가능하다. 대학 교육이 등록금 장사, 학위 장사로 전락하는 이유가 바로 이렇게 교육의 기본 가치에 대한 인식을, 인간에 대한 기본적인 존중을 버렸기 때문이다. 



글 : 정보라 

데모꾼. 저주 전문 작가. 2023년 12월까지 한국과학소설작가연대 대표로 일하고 있다. 

2022년 『저주토끼』가 부커상 국제부문 최종후보에 올랐다.

* 해당 원고의 의견은 필자 개인의 의견으로, 민주화운동기념관의 공식 의견과는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