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젝트 소식

민주주의 에세이한국의 여성노동자, '사건' 없이 보호받을 수 없는 것인가 | 김관욱

2022년 2월 콜센터 해지 방어 부서에 근무했던 특성화고 3학년 여학생의 죽음을 다룬 영화 <다음 소희>가 개봉되었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는 한국 사회의 모든 제도와 법이 여학생의 죽음에 어떻게 연루되어 있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학교도, 교육청도, 노동청도, 그리고 경찰도 “누구 하나 책임지는 사람 한 명이 없다”라는 현실을 보여준다.

영화가 출시된 이후 2022년 3월 30일 ‘직업교육 훈련촉진법’ 등 소위 「다음 소희 방지법」이 국회를 통과하였다. 영화 속 사건이 발생한 2017년 1월 이후로 5년이라는 시간이 흘러가고 나서야 영화의 힘을 빌려 법안이 통과된 것이다. 

그런데, 통과된 법은 실제로 ‘다음 소희’를 막아줄 수 있을까. 법에 따르면, 현장실습생이 산업체 내 괴롭힘을 학교에 신고하면 학교는 산업체 대표자에게 조사를 요구할 수 있다. 그런데, 학교와 산업체 대표가 짙은 유대관계로 얽혀 있다면 무용지물이 될 위험성이 있다. 


「감정노동자 보호법」의 통과 이후

사실 콜센터 상담사를 보호하기 위해 이미 2011년에 국가인권위원회의 「감정노동자 인권가이드」가 발표되었고, 2016년에는 ‘감정노동자 보호’ 법안이 발의되기 시작했다. 그렇지만, 2017년 1월 故 홍수연 님의 죽음을 막을 수 없었다. 그리고, 더욱 안타까운 건 영화에서 다룬 팀장의 자살 사건도 2014년 10월 같은 콜센터에서 근무하다가 자살했던 故 이문수 님의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는 점이다.


두 죽음은 슬프게도 법과 제도로 연결되어 있다. 2017년 1월 故 홍수연 님의 죽음이 있고 난 뒤 지지부진하던 「감정노동자 보호법」이 2018년 10월 결국 통과되었다. 그녀의 죽음이 법안의 통과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준 것이었다. 이로 인해 故 이문수 님의 죽음이 4년 2개월 만인 2018년 12월 ‘업무상 질병에 따른 사망’으로 산업재해 판정을 받게 되었다. 故 이문수 님은 유서를 통한 호소로 ‘다음 소희’를 막고자 했다. 


그렇지만, 아버지가 유서를 근거로 노동부에 신고했지만, 검찰에 의해 불기소로 끝나고 말았다. 그렇게 현실은 변하지 못했고 故 홍수연 님의 죽음을 막을 수 없었다. 하지만 그녀의 죽음이 결국 故 이문수 님의 죽음을 산업재해로 인정받게 만든 것이다. 이렇게 서로가 죽음으로 연결되어 있었다. 


그런데, 만일 「감정노동자 보호법」이 있었다면, 故 홍수연 님의 죽음을 막을 수 있었을까. 아닐 것이다. 이 법은 고객 응대 피해로 ‘업무 중단’을 요청한 노동자에 대해 회사가 부당한 인사조치를 취했을 때만 처벌할 수 있다. 즉, 영화 속 소희처럼 과도한 업무를 강요받거나, 그로 인해 수시로 욕설에 노출되는 것은 법이 ‘강제성’을 갖지 못한다. 故 이문수 님은 해고라는 ‘부당한 인사조치’까지 받았기 때문에 산재를 인정받을 수 있던 것이다. 


한편, 이 모든 과정에서 시민들이 잘 알지 못하는 사실이 있다. 그것은 영화 <다음 소희> 개봉 훨씬 이전부터 故 이문수 님과 故 홍수연 님의 아버지가 서로를 위로하고 연대했으며, 여러 노동조합과 시민단체들 또한 오랜 기간 함께 법과 제도 개선을 위해 싸워 왔다는 사실이다. 



'인간답게' 살고 싶었던 여성 노동자들

감정노동자 보호법 시행이 5년이 다 되어 간다. 하지만, 여전히 상담사들의 80%가 욕설을 경험하고 있으며, 관리자의 모욕적인 언행도 사라지지 않았다. 여전히 법은 ‘다음 소희’를 막기에는 역부족으로 보인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법과 제도가 여성노동자의 안전을 앞장서서 보호하려 했던 적이 있었던가. 예를 들면, 여성을 비하하는 표현인 “무식한 년”이 지난 50년간 노동 현장에서 얼마나 사라졌을까. 


확실한 건 50년 전 공단에서 일했던 여공들이 공장 안팎에서 들었던 이 말을 지금은 콜센터 상담사들이 헤드셋 안팎에서 여전히 듣고 있다는 것이다. 정말 ‘공순이에서 콜순이’로 여성노동자에 대한 표현만 변했을 뿐 ‘저임금 고강도 여성노동자’라는 사회적 지위는 시대가 변해도 그대로인 듯하다. 


그럼에도, 사회는 변했다. 문제는 누가 그 변화를 이끌어 왔는가이다. 모두가 기억하듯 1970년 11월 청계천 피복공장 노동자였던 전태일의 분신자살이 ‘근로기준법 준수’에 대한 분수령이 되었다. 그런데, 이후 10년간 70년대 한국 노동운동의 중심에 ‘무식한 년’으로 학대받던 여공이 있었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구해근 교수(하와이대 사회학과)는 1980년대 민주노동운동의 초석을 세우기 위해 싸운 사람들이 ‘노동집약적 수출 부문의 여성노동자’였음을 강조한다. 그렇다면, 그녀들은 너무나도 폭력적이었던 70년대 군사독재 시절에 어떻게 격렬한 노동운동을 감행할 수 있었을까. 구해근 교수는 그 이유를 육체적 학대(철야근무, 성폭력)와 함께 상징적 학대(‘무식한 년’)가 결합한 노동착취 때문이었다고 지적한다. 특히 여성노동자에 대한 경멸적 태도와 비인간적 대우가 가장 큰 도화선이 되었다고 말이다. 그녀들은 정말로 ‘인간답게’ 살기를 원했다.



여성의 노동 현실 개선을 위해

법과 제도의 변화는 여성노동자의 현실 개선에 필수적이다. 그렇지만, 여기에는 성찰해 보아야 할 또 다른 장벽이 존재한다. 그것은 주디 와이즈먼 교수(Judy Wajcman, 호주대학 사회학과)가 지적했듯 법과 제도는 물론이고 기술의 발전마저도 모두 기존의 사회적 관계를 ‘전제’로 형성된다는 사실이다. 


정보통신기술의 발전으로 여성노동자가 육체 노동이 아닌 사무실 안에서 감정 노동을 하고 있지만, ‘감정을 판매한다’라는 콜센터 업무도, ‘의자놀이’식 인센티브 기반의 저임금 방식도 모두 비숙련여성 노동에 대한 오래된 가부장적 성별분업의 전제하에 만들어진 것들이다. 애초에 저임금도, 고된 업무와 감정 탈진도 계산에 들어가 있었던 셈이다. 사회가 여성을 보호할 의지가 없는데, 법과 제도가 앞장서서 그녀들을 보호할 리 만무하다. 


결국, 국가와 시민의 이목을 집중시킬 ‘사건’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여성의 노동 현실은 개선되기 어려운 현실처럼 느껴진다. 어찌 보면, 우리는 영화 <다음 소희>의 현실처럼 ‘사건’의 당사자와 유가족, 그리고 시민단체와 노동조합의 외롭고 힘든 싸움의 결과로 지금과 같은 법과 제도의 혜택을 누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소망컨대, 이제는 여성의 노동 현실 개선을 위해 그 어떤 사건도 필요하지 않은 시대였으면 한다. 



글 : 김관욱

덕성여자대학교 문화인류학과 교수이자 가정의학과 전문의. 오랫동안 노동과 건강(특히, 콜센터 여성상담사)을 연구해 왔으며, 저서로 『사람입니다, 고객님: 콜센터의 인류학』,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아프면 보이는 것들』(공저) 등이 있다.

* 해당 원고의 의견은 필자 개인의 의견으로, 민주화운동기념관의 공식 의견과는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