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젝트 소식

민주주의 에세이그런 일이 있었다 | 오지은

그런 일이 있었다. 십몇 년도 더 전의 일이다. 악기를 만드는 노동자들이 부당한 일을 당했다. 그들이 문화제를 열었다. 그 악기를 쓰던 뮤지션이던 나는 당연한 마음으로 참석하고 노래를 부르고 발언했다. 이렇게 좋은 악기를 만들어 주어서 고맙다고, 이렇게 훌륭한 노동자들은 이런 대우를 받아선 안 된다고 말했고, 기뻐하는 모습에 으쓱했던 것도 같다. 


시간이 지나고 뒷얘기를 들었다. 악기 회사에서 나에게 스폰서, 그러니까 악기 제공 등을 검토하다가 내가 문화제에 참여했다는 사실을 알고 백지화시켰다는 내용이었다. 아, 그렇구나. 그 일이 직업을 지속하는 데 별 영향을 주진 않았지만, ‘좋은 마음으로 한 일’이 때로는 어떻게 흘러가는지 조금 알게 되었다. 


시간이 지나 동료들이 생겼다. 대중의 반응도 듣게 되었다. 사람들은 예술가가 만든 것을 통해 현실에서 벗어나고 싶어 하지 괴로워지길 원하지 않는다고 누군가 말했다. 고로 정치적인 이야기는 피하라는 충고도 들었다. 애정에서 나온 말이었다. 아, 그렇구나. 시간이 지나 여성 인권에 대한 내 생각을 SNS에 올렸다. 당연한 얘기를 억누를 필요는 없으니까. 


그런데 고정 패널로 참여하던 프로그램의 게시판에 글이 올라왔다. 악플이면 무시할 수 있었을 텐데 내용이 진지하고 태도에 정성이 있었다. 애청자 같았다. 그는 내가 해로운 존재라고 확신했다. 아, 그렇구나. 그 일이 직업을 지속하는 데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는 알 수 없다. 이후로 섭외가 줄었다고 느꼈지만, 그런 말을 하면 피해의식에 젖은, 즉 매력 없는 예술가로 보인다는 것을 알기에 입 밖으로 꺼낸 적은 없다. 




시대가 바뀌면 해석도 더 크게 바뀐다

민주인권이라는 말을 생각하면 아주 커다랗고 높은 기둥 앞에 선 기분이다. 까마득하다. 기둥이 내 앞에 있다는 것은 안다. 주권이 국민에게 있다는 말을 아는 것처럼, 인간에겐 당연히 지켜져야 할 권리가 있다는 걸 아는 것처럼. 하지만 어떤 모습인지, 어떤 식으로 천장에 닿아있는지는 모르겠다. 목을 꺾어봐도 내 시야에는 전체 모습이 담기지 않는다. 그러니까 정확하게 어떻게 국민에게 있다는 거지. 그러니까 권리는 어디부터 어디까지 어떤 방법으로 지켜져야 하는 거지. 


사람마다 해석이 다를 것이다. 시대가 바뀌면 해석도 더 크게 바뀐다. 역시 잘 모르겠다. 이럴 땐 몇 가지 방법이 있다. 내 소관이 아니라고 하며 문을 닫고 나가는 방법, 대충 알겠다고 하며 목을 편안하게 제자리로 돌리고 자기 갈 길을 가는 방법, 또는 이 모든 것이 우습다며 킥킥거리는 방법, 쳐다봐야 별수 없다며 냉소하는 방법 등. 나는 어떻게 하고 있냐면 어정거리고 있다. 아주 작은 정의감과 그보다 조금 더 큰 무력감과 그보다 조금 더 큰 회피하고 싶은 마음을 가지고.


어떤 마음은 목소리에 담기에 너무 크다

가끔 집회에서 노래를 한다. 나에게는 사람들이 따라 부를 히트곡도 없고, 칙칙한 노래가 대부분이라 집회의 열기를 망치지 않을까 걱정하면서도 뭐라도 보탬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섭외에 응한다. 


30분 정도 전에 도착하면 누군가가 발언을 하고 있다. 떨리는 목소리, 비명에 가까운 목소리, 커다란 에너지를 목이 받쳐주지 못해 깨어지는 목소리를 듣는다. 정치인의 느리고 차분한, 여유 있는 말투와는 다르다. 사람들은 그런 목소리에 신뢰가 간다고 하지만 어떤 마음은 목소리에 담기에 너무 크다. 그래서 줄줄 넘쳐버리는 모습을 보면 나는 항상 운다. 문제는 노래하기 전에 울면 안 된다는 것이다. 간단하다. 성대는 근육이라 울면 상하고, 호흡도 무너지기 때문이다. 노래하러 간 사람이 노래를 제대로 못 한다니 말도 안 된다. 그래서 최근에는 미리 울고 진정한 다음 무대에 올라가는 방법을 쓰고 있다. 


그러다 한번은 앞에 앉은 사람과 눈이 마주쳤다.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한 집회였고 그날은 성소수자 부모 모임이 주축이 되었다. 저분은 어떤 마음으로 여기까지 오셨을까. 어떻게 저렇게 흔들림이 없는 표정일까. 나는 그만 펑펑 울어버렸다. 목소리가 비어버린 음악은 건반 연주자가 연주로 채워주었다. 아마도 앞으로 섭외는 오지 않겠지. 이렇게 글까지 써버렸으니 더욱.


평화 아래 상처받은 사람이 있다

평범한 사람들에 대해 생각한다. 밤낮으로 남을 괴롭힐 계획을 세우는 악당이 아닌, 그냥 평범한 사람들. 나와 내 가족이 행복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법을 지키려고 하며 소소하게 사는 사람들. 때로는 남을 돕고 때로는 외면하는 사람들. 나도 그중 한 명일 것이다. 그런 사람들 눈에 평범하게 보이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국회 앞에서 피켓을 들고 1인 시위를 하는 사람, 삼보일배를 하는 사람, 단식을 하는 사람, 크레인 위에 올라가는 사람. 


고속도로 톨게이트 노동자들을 위한 음악을 만든 적이 있다. 곡을 쓰기 전에 인터뷰를 찾아보고 다큐멘터리를 보다가 이런 말을 들었다. “나는 내가 여기서 이러고 있을 줄 몰랐어요.” 평범한 삶은 의외로 쉽게 깨어진다.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권리가 갑자기 뭉개진다. 그럴 땐 소리가 나온다. 그러지 말아요. 아파요. 살려주세요. 하지만 세상은 종종 그 목소리마저 뭉개고 어서 치워버리고 싶어 한다. 


악한 사람들에 대해 생각한다. 고문이 직업이던 사람이 있었다. 지금 없어도 미래에 다시 생길지도 모른다. 무서운 부분은 그들이 더 나은 세상을 위해 열심히 일했을 뿐이라고 생각한다는 점이다. ‘대의’를 위해서 ‘불순한 사람’을 색출하고 ‘건강한 사회’를 위해 노력했을 뿐이라고 말한다. 평범과 선량을 가르는 기준은 무엇이었나. 누가 무슨 목적으로 분류하였나. 불순한 사람이 되지 않기 위해 사람들은 입을 닫는다. 생각을 멈춘다. 기꺼이 불순한 역할을 한 사람들이 무슨 일을 겪었는지 알고 있기 때문이다. 


끔찍한 일 앞에서 인간의 방어기제가 발동된다. 그런 일이 없었다고 하며 부정한다. 명백한 증거를 보면 어쩌다 벌어진 일이고,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을 것이고, 다시는 벌어지지 않으리라 생각하고 싶어 한다. 불안해지기 때문이다. 내가 딛고 있는 세상이 단단하다고, 내 세계는 안전하다고 믿고 싶기 때문이다. 하지만 평화 아래에는 항상 상처받은 사람이 있다. 시체가 있다.


순진함이 세상을 굴러가게 하고, 빛은 꺼지지 않는다

우리는 기꺼이 불편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한 명의 조금 비겁한 국민으로서 그렇게 생각한다. 발밑이 깨어질지도 모른다는 불안감과 남의 발밑이 깨어지는 것을 보는 괴로움을 느껴야 한다. 기둥 뒤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을 알아야 한다. 조금이라도 말이다. 그리고 내가 저지를 수 있는 일에 대해서도 알아야 한다. 결국 변하지 않는다며 눈을 감고 싶어도, 막막한 그 마음 그대로 한 뼘 앞의 세상을 보아야 한다. 혼란을 끌어안고 냉소를 접어두고 앞을 보아야 한다. 내 작은 자리에서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이어야 한다. 


마음을 붙들기 힘들 때는 옆을 보아야 한다. 마음이 모이는 공간이 있다. 거기서 마음을 타인에게 보내고 또 받는다. 그렇게 해도 문제가 되지 않는 세상, 마음이 자유롭게 모이는 세상을 꿈꾼다. 누군가는 참 순진한 소리 한다며 비웃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결국 이런 순진함이 세상을 굴러가게 했다고 믿는다. 빛은 희미하고 깜빡이지만 절대로 꺼지지 않는다. 


글 : 오지은

글을 쓰고 음악을 하는 사람. 앨범 [3], 책 『당신께』 등을 냈다. 

* 해당 원고의 의견은 필자 개인의 의견으로, 민주화운동기념관의 공식 의견과는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