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젝트 소식

민주주의 에세이인생은 실전, 민주주의는 행동 | 김규진

프랑스에 해외 파견으로 나와 살며 한국인이라는 이유만으로 호의를 얻는 낯선 경험을 종종 한다. 파리의 어느 한식당이 제일 맛있는지(내 입맛을 어떻게 믿고), K드라마 중 추천할 게 있는지(난 건담 애니메이션을 보는 중이다) 등의 질문은 예사며, 미팅 때 젠틀몬스터나 아더에러 등 핫한 한국 브랜드들이 소개될 때면 너희 나라 사람들은 정말 감각 있다는 코멘트를 듣는다. 에르메스, 샤넬, 루이비통의 나라라고 해서 내가 프랑스인에게 미감에 대한 칭찬을 건넨 적은 없는데 참 묘하다. 하여튼 20년 전 중국에 살 때는 전혀 없었던 일이라, 김구 선생이 말한 드높은 문화의 힘을 실감한다. 


그런 이들을 무엇보다 놀라게 하는 건 따로 있는데 바로 결혼한 레즈비언인 나를 통해 접하는 한국 사회의 성소수자에 대한 인식이다. 동성결혼이 불법은 아니지만 인정되지 않으며, 회사에 커밍아웃한 직원은 나뿐이었고, 내가 얼굴을 드러내고 결혼식을 한 몇 안 되는 케이스라 기사가 날 정도였다고 알려주면 사뭇 당황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KJ, 그럼 케이팝 보이그룹들은 왜 다 화장하고 나오는 거야?" 음, 어디서부터 설명해야 할까.


보이지 않는 존재

정체성을 드러내놓고 살다 보니 한국에서 받은 차별에 대한 질문을 많이 받는다. 우리 부부는 운이 좋은 편으로, 와이프는 '커밍아웃했을 때 대놓고 혐오 발언을 한 사람은 자신의 엄마밖에 없다'는 농담을 하곤 한다. 아직 길을 가다 누가 침을 뱉거나, 버스에서 폭행당해본 적은 없다. 그렇다면 우리가 겪는 차별은 어떤 것일까? 


물론 법적 결혼을 하지 못하여 서로의 가족이 될 수 없다는 큰 장벽이 있다. 와이프가 다쳐 응급실에 갔을 때, 둘이 어떤 사이냐는 질문에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배우자라 해도 법적인 관계가 아니라 보호자 자격이 없을 것이고, 친척 등 다른 사이를 대기엔 또 너무 비참해지니까. 다만 이런 큰 사건보다 나를 더 갉아먹는 것은 우리가 사회적으로 보이지 않는 점이다. 


<성소수자는 당신의 친구, 가족, 동료일 수 있습니다>라는 오래된 캐치프레이즈는 얼마나 사회가 성소수자를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지 드러낸다. 아빠와 와이프의 첫 만남 때, 조금이나마 정상성을 더하는 데 도움이 될까 하여 국민선물 정관장 홍삼을 사러 갔다. 정이 많은 주인분은 우리가 무슨 사이인지, 자매 같지는 않는데 홍삼은 왜 사는지 물었고 내가 부부라고 순순히 답하니 너무 재밌다며 박장대소를 했다. 이내 미국에서 결혼했다고 하니 낯빛이 안 좋아지셨지만. 배우자와 부모님을 만나러 갈 때마저도 구구절절 설명해야한다. 이런 일을 매일 겪는다. 


20년도 5월경 이태원 클럽발 코로나 클러스터가 발생했을 때, '게이들이 이렇게 많았다고?', '동성애자가 사회의 일원이 되려면 떳떳이 자수해야 할 것이다' 등의 반응을 보고 사뭇 놀랐다. 정말 우리의 존재를 모르는구나. 그리고 보이지 않으면 이렇게 쉽게 재단할 수 있구나. 강남 유흥업소에서 감염병이 퍼질 때는 아무도 이성애자의 시민 자격을 묻지 않던데. 혹시 시민 자격증을 발급하고 있는데 내가 레즈비언이라 놓쳤다면 꼭 알려주길 바란다.


접하지 않는 숫자

5,000만 한국 시민이 풍수지리적인 이유로 호모포비아를 타고난 게 아닌 이상, 우리나라에서 유달리 동성애자가 보이지 않는 데에는 원인이 있을 것이다. 그 큰 축으로 국가기관의 적극적 배제를 들고 싶다. 통계청에서 진행했던 지난 인구주택총조사 때, 내 주변 레즈비언 부부들은 곤란을 겪었다. 가구주와 세대원의 성별이 같을 시, 배우자라는 선택지를 고르는 것이 시스템적으로 막혀 있었다. 유일하게 고를 수 있는 선택지는 <그 외 같이 사는 사람(고용인, 하수인)>뿐. 우리가 조사받았다면 가구주는 와이프이므로 내가 순식간에 하수인이 되는 위기에 처할 뻔했다. 


처음부터 선택지에 없는 관계는 어떻게 포착될 수 있을까? 동성 부부는 법적 부부가 아니라 그런 것 아니겠느냐고 말하기에는 이성 커플은 결혼 여부와 무관하게 배우자라는 답을 선택할 수 있었다. 장혜영 의원이 국정감사 때 이를 문제 삼아 수정을 검토해보겠다는 통계청장의 답변을 끌어냈지만, 과연 다음 조사 때 달라져 있을지는 알 수 없다. 


또 올해 1월, 국가인권위원회의 '국가승인통계조사 및 실태조사에서 트랜스젠더를 비롯한 성소수자의 존재를 파악하도록 하는 내용의 지침을 마련할 것'이라는 권고를 관계부처들에서 수용하지 않았다. 이유는 표본이 적어 유의미한 결과를 얻기 어렵다는 것. 조사를 해보지도 않고 표본이 적다는걸 어떻게 확신하는지 나로서는 알 길이 없다. <대한민국에 성소수자가 존재한다>와 <대한민국에 약 300만 명의 성소수자가 존재한다>는 울림이 다르다. 만약 3만 명일지라도 여전히 그러하다. 숫자를 알게 되면 다시는 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 예산 분배 때, 정책 수립 때, 또 선거철에 머리 한 켠에서 맴돌 테니까.


연애를 하려면 사람을 만나야, 변화를 주려면 행동을 해야 

부정적인 예시만 가득 나열하였으니 희망찬 소식도 하나 공유하려 한다. 최근 동성부부의 건강보험 피부양자 자격을 다투는 싸움에서, 부부 측이 2심을 승소하였다. 해당 사건 판결문의 일부가 화제가 되었는데, 내용은 다음과 같다. 


누구나 어떠한 면에서는 소수자일 수 있다. 소수자에 속한다는 것은 다수자와 다르다는 것일 뿐 그 자체로 틀리거나 잘못된 것일 수 없다. 다수결의 원칙이 지배하는 사회일수록 소수자의 권리에 대한 인식과 이를 보호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고, 이는 인권 최후의 보루인 법원의 가장 큰 책무이기도 하다. 


성범죄자의 미래를 참작해 집행유예를 주었다는 둥 흉흉한 판결만 보다 이런 상식적인 사법부의 메시지라니, 신선하게 다가왔다. 또 한편으로는 정의로운 판사 몇 명에게 기대야 하는 상황이 착잡하기도 했다. 보이지도 포착되지도 않는 시민은 기다리는 것 말고 뭘 할 수 있단 말인가. 나는 변호사도 아니고, 사회운동을 하기에는 당장 내일 출근해야 하는데. 


주변 레즈비언들이 연애하기 너무 힘들다고, 어떻게 여자친구를 만드냐고 할 때마다 우리 부부는 말한다. 소개받든, 앱에서 말을 걸든 해서 주말 이틀 동안 점심, 커피, 저녁때 한 명씩 총 두 달을 만나보라고. 그렇게 약 50명을 만나면 서로 호감을 느끼는 관계가 한 번쯤은 생기지 않겠냐고. 


사회운동이 연애와 똑같다는 것이 아니다. 다만 행동하지 않으면 변화가 없다는 점에서만은 같다. 물론 시민이 가만히 있더라도 민주주의 사회에서 결정권자들은 위의 판사처럼 사고해야 마땅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지 않나. 일반 시민도 할 수 있는 건 많다. 관련 단체 후원하기, 좋은 기사를 보면 퍼뜨리기, 국회 청원에 동의하기, 혐오 발언을 하는 지역구 정치인에게 항의하기. 성소수자 당사자건 앨라이(성소수자를 지지하는 비성소수자 - 편집자 주)건, 일상을 걸지 않아도 할 수 있는 일들이다. 


커밍아웃 역시 상대방의 인식을 전환하는 데 효과적이다. 성소수자가 막연한 악마들에서 우리 막내 조카가 되었을 때, 혐오를 유지하는 건 쉽지 않다. 물론 안전이 우선이겠지만, 두 손을 가슴에 얹고 생각해보았을 때 나는 먹고살 만하다 싶으면 정체성을 오픈하고 다니는 것을 적극 추천한다. 또 모르지 않나, 커밍아웃한 이웃이 판사일 수도 있다. 


민주인권에도, 사회운동에도 별다른 경험이 없는 일개 당사자일 뿐이기에, 마치며 첨단기술의 힘을 빌리겠다. 챗지피티에 물어보았을 때, 레즈비언이 연애하는 법은 '한국에서 여성 간의 동성애가 아직 수용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어려울 수 있습니다'며 비관했지만, 성소수자의 민주인권 수호는 '할 수 있는 일은 다양합니다'라며 희망차게 단언하였다. 사회 변화, 느리고 힘들겠지만 행동한다면 동성연애보다는 쉬울지도. 그렇게 믿으며 늘 나에게 말을 거는 집 앞 정육점 아저씨에게 외국인이라 mon mari(남편)를 잘못 표현한게 아니라 진짜로 ma femme(아내)이 있다고 말을 해야겠다.


글: 김규진

한국 국적 유부녀 레즈비언. 2019년 아내와 뉴욕에서 혼인신고 후, 한국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2020년 「언니, 나와 결혼할래요?」 를 출간하여 동성 결혼이 법제화되지 않은 21세기 대한민국에서 레즈비언이 결혼하는 방식에 대해 이야기했다.

* 해당 원고의 의견은 필자 개인의 의견으로, 민주화운동기념관의 공식 의견과는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