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젝트 소식

민주주의 에세이과학의 신화화를 극복하고 바른 이해로 모두를 위한 과학 만들기 | 이독실


과학은 평등하다

과학은 가치 중립적이고 진리를 추구한다. 코페르니쿠스와 갈릴레이의 사고의 전환과 종교와의 대립이 우주관을 바꾸고, 뉴턴의 만유인력이 천상계와 지상계의 경계를 무너뜨린 이래로 믿어진 관념이다.

과학은 평등하다. 모든 사람이 법 앞에 평등하다는 ‘법의 지배’보다도 더 근본적인 우주적 평등이 바로 과학이다. 한 개인에게 미치는 과학 법칙은 온 인류, 온 지구와 온 우주에까지 똑같이 적용된다. 


과학적 지식과 기술의 혜택은 모두에게 돌아간다. 하버-보슈의 질소 고정 기술은 비료를 대량 생산해 냈다. 수억 년을 진화해 온 식물들조차 얻지 못한 능력이다. 맬서스 트랩은 극복되었다. 인류는 식량 위기를 벗어나고 풍요로워졌다. 질소 비료로 인한 식량 생산량 증가, 퇴비 사용 억제로 인한 전염병 감소, 이로 인한 인구 증가 등의 혜택은 온 인류가 누리고 있다.


‘과학 기술은 근본적으로 가치 중립적이다.’
‘인류는 과학이라는 무기로 비이성의 어두움을 물리치고 진리를 향해 진보하는 과정에 있다.’
‘(인류가 도달 가능한지 와 별개로) 순수한 과학적 진리가 실재한다.’


과학의 발전사와 과학과 사회의 상호작용, 과학의 본질에 익숙하지 않은 다수의 사회 구성원이 과학에 대해 가진 생각들이다. 이는 계몽주의와 합리주의로 무장한 근대 과학자들의 노력의 결과이다. 이들은 세상을 이롭게 변화시키기 위한 계몽주의적 사상을 과학을 통해 실현하려 했다. 과학 지식의 범위와 한계를 엄밀하게 규정하기보다 세상을 바꾸는 도구로 사용한 것이다. 


불과 50년, 100년 전에 있었던 과학자들의 논쟁에 대해서조차 우리가 잘 모르거나 오해하고 있는 부분이 많다. 우리는 각색된 사실을 받아들인다. 과학자들은 순수한 열정으로 진리 탐구의 여정을 떠나 그 비밀을 밝히는 영웅들이다. 그러나 사실은 달랐다. 과학사 전체에서 손꼽히게 중요한 천동설-지동설 논쟁조차 예외 없이 오해가 광범위하게 퍼져 있다.


이런 오해와 통념은 일부 과학자들에 의해 특정 목적으로 만들어진다. 검증되지 않은 채 받아들여진 통념은 끊임없이 재생산되며 견고해진다. 사실 과학자들에게 천동설-지동설 논쟁의 실체는 중요하지 않다. 진위를 검증할 필요도 없다. 과학 진보 과정에 대한 역사적 실체는 지금 수행 중인 연구에 영향을 주지 않으며, 어찌 됐든 불합리가 합리로, 비이성이 이성으로 진보한 것은 사실이다. 이러한 생각은 과학을 탐구하는 인간의 한계와 별개로 과학 그 자체는 순수하다는 믿음에 기인한다.


특정 사회의 특정 시기에 주로 연구되는 내용은 사회의 요구와 필요, 추구하는 방향을 반영한다. 과학자도 사회 구성원으로서 시대의 분위기, 필요 등에 영향을 받는다. 당연히 연구 과제 선정과 연구 방향, 결과 해석에 편향이 들어가기도 한다.

 


과학 연구와 지식 생산의 편중 문제가 심화되고 있다

20세기 후반에 접어들면서 과학적 지식이 급격히 팽창하고 신자유주의가 도래하면서 사회가 과학에 미치는 영향이 근현대와 달라지기 시작했다. 과학적 지식은 영토와도 같다. 지식과 비지식의 경계에서 지식을 넓혀 영토를 확장하는 것을 연구라 한다면 길어진 경계는 이전에 비해 할 수 있는 연구가 훨씬 많아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현대 과학 연구는 막대한 자금이 들어가는 경우가 많으며, 연구 결과를 이용해서 이윤을 창출하는 상업적 목적을 지니는 경우도 많아졌다. 이는 연구 과제가 특정한 유형과 방향으로 편향되는 요인이 되고, 그 결과 시민 사회가 반드시 알아야 할 지식은 생산되지 않으며, 공익적・윤리적 연구의 비중도 줄어들게 된다. 이러한 과학 연구와 지식 생산의 편중 문제가 더 확대·심화되는 가운데, 왜 어떤 지식은 연구·생산되지 않는지 주목하는 학자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수행되지 않는 과학, 언던 사이언스(Undone science) 문제이다.


확장되지 않고 정체 중인 지식, 무지로 남게 된 지식들은 체계적으로 비생산된다. 주로 시민 사회가 필요로 하는 지식들이다. 그 예로 상업적으로 활발히 생산되고 있는 과학 기술의 위험성에 대한 연구들이 있다. 가습기 살균제의 위험성에 대한 연구, GMO 식품의 장기적 위험성에 대한 연구, 저방사선량이 인체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중장기적 연구, 코로나19 백신의 부작용과 위험성에 대한 연구, 대형 강입자 가속기의 잠재적 위험성에 대한 연구 등 다양한 분야에서 그 예를 찾을 수 있다.


연구 과제들이 편중되어 있다는 말을, 진실은 사실 반대편에 있다는 의미로 오해하면 안 된다. 주류 연구를 수행하는 사람들을 좌지우지하는 검은 세력이 있는 것도 아니다. 기업과 정부에 유리하도록 연구 결과를 왜곡해서 발표하는 과학자들은 일부이다. 대부분의 과학 지식이 그렇게 생산되지 않는다. 다만 현대는 어떤 과학 지식들이 체계적으로 비생산되고 배제되는 구조라는 것이고, 이러한 지식들은 보통 돈이 안 되는, 그러나 시민 사회가 필요로 하는 지식인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과학 기술 혜택이 사회 구성원들에게 돌아가기 어려운 이유

과학 기술의 혜택이 사회 구성원 모두에게 돌아가기 어려운 또 하나의 이유로 과학적 지식이 이해하기 어렵다는 점을 꼽을 수 있다. 과거엔 당시 지식인들이 이해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연구가 수행되고 발표되곤 했다. 그러나 현대 과학에서는 불가능하다. 압도적 천재가 없어서가 아니다. 과학 지식의 크기가 엄청나게 팽창한 탓이다. 같은 과학자들조차도 다른 전공 내용은 온전히 이해하기 어렵다. 당연히 일반 사회 구성원들이 과학 지식을 바르게 이해하기는 매우 어려운 일이다.


단순히 용어나 결과 해석의 어려움뿐이 아니다. 과학 연구 방법이나 과학 지식의 특성을 바르게 파악하는 것은 쉽지 않다. 논문을 어떻게 해석하고 적용해야 하는지 판단하기는 더 어렵다. 심지어 논문은 비싸기까지 하다. 보건·의료 분야는 같은 논문을 보고 서로 다르게 해석하는 경우도 많다. 고학력 비전공자들조차 실수를 저지르곤 한다. 일반 사회 구성원들이 과학적 지식을 바르고 이해하고 해석하기 위해서는 넘어야 하는 큰 장벽이 있는 셈이다.


많은 과학적 지식은 복잡한 상황을 단순화한 뒤 결론으로 얻어진다. 과학적 지식은 외부 물리 세계를 발견하는 것이 아니라 국소적 공간에서 여러 연구 장비들을 통해 만들어지는 인공 실재(Artificial reality)라는 견해도 있다. 다양한 요인들이 복잡하게 뒤얽힌 생명공학은 개체마다, 실험실마다, 임상 조건마다 다 다른 결과를 보인다. 실험 결과는 얼마든지 다르게 해석할 수 있다. 평생 흡연자로 살다가 폐암으로 사망한 환자의 사망 원인이 담배인지를 과학적으로 판단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한 마디의 결론은 대부분 왜곡된 대답이 될 수밖에 없다.


가치 판단이 들어간 영역에 대해 하나의 명쾌한 답으로 모두를 설득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적은 확률로 지구를 집어삼킬 수 있는 블랙홀이 생길지도 모르는 LHC 실험을 해야 하는가? 제한된 사람들만 혜택을 보는 지식을 위해 그 돈을 들여 중력파 검출 실험을 해야 하는가? 우주 발사체 개발을 위해 나로호에 5,000억, 누리호에 2조를 투입하는 것은 정당한가? 기후 위기의 근거가 되는 IPCC 보고서는 어디까지 사실인가? 일본 원전 오염수는 방류해도 무방한가? 인류의 통제를 벗어난 초지능의 출현을 경고하는 석학들의 의견에도 불구하고 인공지능 연구를 계속하도록 내버려둬야 하는가?


이런 의문을 품는 것조차 반지성주의로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위 예시들은 모두 가져볼 수 있는 의문이다. 물론 모든 종류의 비난과 음모론에 성실하게 답해줄 필요는 없다. 반대 의견을 개진할 때도 마땅히 근거를 들어야 한다. 그러나 위 의문 중 일부는 엄밀한 과학적 근거를 대기 어렵다. LHC 실험을 통해 만들어질 수 있는 블랙홀에 의한 지구 파괴 위험성을 진지하게 연구한 논문이 게재된 학술지는 없다. 일본 원전 오염수 논쟁은 더욱 첨예하다. 오염수 방류가 과연 안전한지에 대해 서로 다른 주장과 근거가 끝없이 제시된다. 그중 다수가 정치적 판단이 아닌 과학적 근거를 이야기한다. 둘 중 하나가 거짓말을 하는 것일까?


용어의 정의가 다르고 바라보는 관점이 다르다. ‘안전’에 대한 정의가 같지 않을 수 있고, 자연 방사선과 저선량 방사선으로 인한 확률적 위험을 해석하는 관점도 다를 수 있다. 이런 부분은 정량화하기 어렵다. 국제 허용 기준을 근거로 삼곤 하지만, 사실 허용 기준은 안전하다는 과학적 보장이 아닌 사회적 합의에 더 가깝다. 일본 원전 오염수 방류에 대해 논쟁할 때 과학적 사실을 언급하다가 금세 사회, 문화, 외교, 윤리 문제로 넘어가는 이유이며, 과학이 어떤 명쾌한 답을 내려줄 수 없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특정 사안에 대한 시민 사회의 우려를 비과학적 주장 혹은 음모론으로 몰아붙이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근거의 부족은 언던 사이언스, 즉 위험성과 유해성에 대한 연구가 진행되지 않은 연유일 수 있다. 지동설 이전에도 행성은 태양 주위를 돌았다. 우려가 사실로 드러난 사례도 얼마든지 있다.


과학 기술에 대한 올바른 교육이 필요하다 

여기서 언론과 교육의 역할이 불거진다. 모든 시민이 공정하게 누릴 수 있어야 하는 민주인권에는 현대 사회를 지탱하고 견인하는 과학 기술에 대한 바른 이해가 포함된다. 언론은 많은 연구 결과를 찾아볼 수 있는 상업적 연구 주제뿐 아니라, 우려스러운 측면이 있지만 이를 뒷받침하는 연구 결과는 찾기 어려운 주제에 대해 통찰을 가지고 공정하게 다뤄야 한다. 


교육은 다양한 연구 결과를 적절히 사용해서 원하는 데이터를 만들어 내는 데 익숙한 소수의 과학자뿐 아니라 데이터를 해석하고 그 함의를 도출하기 어려워하는 다수의 일반 사회 구성원에게도 연구 결과를 바르게 해석하는 법과 날카롭게 질문하는 법을 가르쳐야 한다. 또 근본적으로 과학적 쟁점의 합의는 결국 사회적 맥락 안에서 이루어진다는 것을 지적하고 보여줘야 한다.


갈릴레이의 주장에 대한 종교 재판의 이유는 우리가 아는 바와 사뭇 달랐다. 다윈과 멘델과 아인슈타인의 연구는 신화화된 측면이 있다. 신화를 걷어내면 그때 진짜 과학 탐구의 민낯을 볼 수 있다. 동시에 이 위대한 과학자들의 빛나는 성취를 바르게 이해하고 해석할 수 있게 된다.


과학은 많은 주제에 대해 무엇 하나 속 시원하게 말해주지 않는다. 이럴 때 과학이라는 이름을 빌려 수많은 사이비 과학이 출몰한다. 우리는 혹하기 마련이다. 불확실함을 피하고 싶어 하는 인간의 본성은 명쾌한 답에 끌리게 되어 있다.


사이비 과학을 분별하기 위해 과학적 방법론을 배워야 하지만, 과학적 방법론의 신화에 빠지면 안 된다. 음모론이나 정치적 편향에 빠지지 않은 채 과학 지식을 바르게 이해하고 적용해야 한다. 과학적 사실이 알려주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엄밀하게 구분하고, 많은 경우 과학 외적인 요인에 의해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진다는 것을 염두에 둬야 한다. 언던 사이언스, 즉 수행되지 않은 과학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시민들의 체계적 연구가 필요하다. 사회 구성원 모두를 위한 과학, 소외되거나 무시당하는 구성원 없이 전부를 위한 과학, 특히 소수와 약자를 위한 과학을 위해 꼭 필요한 과제이다.


글: 이독실

과학을 사랑해서 과학에 독실하다고 하면서도 과학주의를 경계한다. 과학을 통한 진리 탐구에 동의하면서도 한계와 경계를 명확하게 세워야 함을 강조하는 과학 평론가. 칼럼을 쓰고 강연을 하고 방송을 통해 과학을 알린다. 과거 팟캐스트 ‘지대넓얕’을 시작으로 과학 팟캐스트와 인문학 강연을 진행하고 TV, 라디오 등의 매체에서 활동하고 있다.
* 해당 원고의 의견은 필자 개인의 의견으로, 민주화운동기념관의 공식 의견과는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