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젝트 소식

민주주의 에세이말이 닿는 곳, 민주 인권 | 이소연

“아, 잃어버린 내 목소리를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목소리에 담겨야 할 영혼을 되돌려 받을 수 있는 것일까…”


나는 김근태기념도서관에서 근무하고 있다. 도서관 전시실에서 민주주의자 김근태가 쓴 편지의 한 구절을 읽는다.


고문 후 목소리 안의 혼을 빼앗겼다는 글씨가 너무 조그맣고 가엾어서 울컥했다. 얼마나, 얼마나 말하고 싶었을까. 얼마나 영혼이 담긴 말이 하고 싶었을까. 단 한 장의 종이 위로 쏟아지는 말들을 받아내느라 갈수록 작아진 글씨 위로 ‘검열’ 도장이 찍혀있다.


신체에 가해진 폭력은 곧 한 사람의 정신을 재단하고 말을 탄압한다. 바람이 드나들고 말이 흘러야 할 세계를 봉쇄한다. 봉쇄된 세계에 길든 영혼의 가없는 슬픔의 말이 닿고자 하는 곳은 어디였을까. 오랫동안 말할 수 없었던, 그런데도 말해야만 했던 유년 시절의 한 대목을 애써 끄집어낸다



지울 수 없는 괴로운 기억

초등학교 3학년 때의 일이다. 산동네에서 읍내에 있는 아파트로 예정에 없는 이사를 했다. 하굣길에 내가 당한 끔찍한 일 때문이었다. 이미 시간이 많이 지나간 일이지만, 글자로 옮기는 것이 좀처럼 괴롭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이런 안타까운 일을 반복적으로 경청해 주는 사람들의 애처로운 표정을 떠올리며 이 글을 쓰고 있다.


나는 친구와 함께 신작로를 걸어가는 중이었고 주변은 논밭이었다. 푸른 모가 찰랑이는 못물 위로 꽁지를 반짝였다. 농수로가 있는 작은 다리를 건너자, 논두렁에 서 있던 할아버지가 자기 쪽으로 오라는 손짓을 했다. 친구와 같이 가려는데 한 명만 오라고 했다. 친구에게 내가 가겠다고 했다. 그때나 지금이나 나서길 좋아했다. 책가방과 함께 들고 있던 빨간 실내화 가방을 친구에게 맡겨두고는 할아버지가 서 있는 논두렁 끝까지 천진하게 걸어 들어갔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까무러쳤다. 소리를 지르려 해도 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할아버지는 오줌이 나오지 않는다며 자기 성기를 만져달라고 했다.


그래, 그 할아버지는 정말 오줌이 안 나왔고 누군가 자기 성기를 만져 주기만 한다면 오줌이 나올지도 몰랐다. 그는 어린 내게 도와달라는 표현을 썼다. 도울 수만 있다면 학교에서 배운 대로 곤경에 처한 늙고 병든 할아버지를 도와드리고 싶었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도 의문이 가시지 않았다. 왜 나처럼 천방지축 날뛰고 버르장머리 없기로 소문난 어린 여자아이에게 도움을 요청하셨을까. 어린이의 손을 더럽혀서 얼마나 깨끗하고 시원한 오줌을 싸려고 그랬던 걸까.


할아버지의 성기에 손을 가져다 대는 순간이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내 작은 가슴을 사정없이 밀고 쳐들어오는 알 수 없이 불결한 기분을 오랫동안 떨치기 어려웠다. 세상의 한가운데서 끝도 없이 허물어지는 존재란 게 이런 것일까. 나는 온 힘을 다해 뛰었다. 신작로에 서서 나를 기다리던 친구도 내가 뛰니까 영문도 모른 채 따라 뛰었다. 다행히도 할아버지는 자전거를 타고 우리를 쫓아오는가 싶더니 반대 방향으로 사라졌다.


내가 논두렁에서 있었던 일을 말해주자, 친구는 비밀로 하자고 했다. 왜 우리는 떳떳하지 못하다고 생각했을까. 심지어 왜 우리가 잘못을 저질렀다고 생각했을까. 하지만 바로 다음날부터 학교 가기 싫다고 고집을 피우다 엄마에게 그날 있었던 모든 일을 털어놓게 되었다. 엄마에게 비밀이었던 것이 다시 친구에게 비밀이 되었다. 엄마는 순진했던 나를 굉장히 잘 꾀어내던 사람이다. 엄마가 준 콜라, 자갈치, 새우깡, 캐러멜 같은 것들도 한몫했다.


어쨌든 엄마는 어떤 꾸지람도 하지 않고 내 얘길 들어주었다. 한동안 밤마다 아버지와 속삭이더니, 차근차근 등하교가 용이한 곳으로 이사 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이웃이었던 앵두나무 집에 곗돈을 주러 가는 엄마를 따라가게 되었다. 엄마가 품에 안은 양푼에는 이웃과 나눠 먹을 찐 옥수수가 한가득했는데, 나는 그게 꼭 하나만 먹고 싶었던 기억이 난다.


엄마가 건네는 양푼 밑으로 내가 본 것은 미닫이문을 빼꼼 열고 내다보던 할아버지였다. 순간, 온몸이 얼어붙었다. 논두렁에서 본 그 할아버지였다. 앵두나무집 아주머니의 시아버지라고 했다. 모시고 산 지 얼마 안 된 모양이었다. 그에게 엄마는 고개 숙여 인사했지만 나는 할 수 없었다. 게다가 무슨 큰 싸움이라도 날까 봐 저 할아버지가 바로 그 할아버지라고 말하지도 못했다.


대단한 평화주의자인 척했지만, 사실은 저 평범한 동네 할아버지가 성추행범이라고 말할 용기가 없었다. 나는 매우 수다스럽고, 아무도 내 말을 믿어주지 않을 만큼 형편없는 이야길 지어내기도 하던 어린 여자아이였으니까. 누군가는 쉽게 발언권을 얻지만, 나는 그러지 못했다. 아무리 진실을 말해도 거짓말한다고 혼이 나던 시절이었다.


그러나 아무리 가해자가 평범하고 선량하고 뻔뻔한 동네 할아버지가 되어 있다고 해도 그가 저지른 일은 절대 없던 일이 될 수 없다. 내겐 영원히 지워지지 않는 기억이다. 인간이 괴로운 기억을 지울 수 없는 건 다시는 반복하고 싶지 않은 욕망 때문이 아닐까?


말을 하기 위해 목숨을 걸어야만 하는 사람들

첫 시집 『나는 천천히 죽어갈 소녀가 필요하다』에 수록된 시 「우유를 마시며」는 그렇게 쓰였다. 세상은 여전히 소녀들의 입을 막고 진실한 말을 무효화시키고 위기에 빠뜨린다.


이 시의 마지막 구절은 이렇게 끝난다. “똑같지만 똑같지 않은 나의 길을 걸어/오늘은 엄마에게/젖소 집 할아버지가 바로 그라고 말한다” 내가 가장 의지했던 엄마, 누구보다 가깝고 누구보다 내 말을 믿어주었을 사람에게 진실을 말할 수 있었을 때는 아이러니하게도 세상 모든 사람에게 말할 수 있을 때였다.

김근태는 1985년 12월 19일 민청련사건 첫 재판에서 모두진술을 통해 고문의 진상을 폭로했다. 말해질 수 없었던 현실을 말할 수밖에 없었던 한 사람의 여러 국면을 들여다보며, 민주인권은 침묵하는 자가 아닌 말하는 자에 있다는 확신을 거듭했다.


말의 억압이란 인간의 삶을 무시로 무너뜨리고 지나간다. 그리고 그것이 반복될수록 폭력이 폭력인 줄 모른다. 감각이 무뎌지고 아픔에 익숙해진다. 나는 어린 내가 당한 일이 폭력인 줄 몰랐고, 아버지는 제철소의 소음 때문에 귀가 먹어가면서도 폭력인 줄 몰랐다. 말해지지 않는 세계는 그래서 위험하다.


메리 셸리는 세계 최초 SF 소설가다. 『프랑켄슈타인』이라는 작품으로 유명하다. 작가는 이 소설을 자신의 이름이 아닌 남편의 이름으로 출간했다. 권력의 좌표를 인지했기 때문일 것이다. 메리 셸리는 소설 속 괴물의 입을 통해 자신을 소외시킨 사회를 비판했던 것처럼 남편의 이름을 통해 마치 괴물과 같은 가부장제의 문제를 밝힌다.


아주 자잘하게 가려진 인권의 층위 속에서 누구의 말은 듣고 누구의 말은 버리는가. 권력을 가진 사람에게 너무 쉽게 발언권을 줌으로써 너무 쉽게 많은 사람을 소외시키고 있는 건 아닌가. 말을 하기 위해 목숨을 걸어야만 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의 말이 닿는 곳에 민주인권이 있다고 믿는다.


어린 시절에는 하루가 멀다고 바다에 갔다. 제철소 굴뚝에서 사정없이 치솟는 흰 연기를 쳐다보며 해수욕했다. 하늘은 여전히 맑고 바닷물 아래 모래는 훤히 비쳤다. 내게 바다는 그런 것이었다. 무슨 짓을 해도 영혼을 잃지 않는 것. 물은 갈라져도 곧 아물었다. 어떤 말은 만신창이가 되어서라도 기어코 가 닿는다. 나는 그런 말들을 알고 있다.



글: 이소연

시인. 2014년 한국경제신문 신춘문예로 등단하였다. 시집 『나는 천천히 죽어갈 소녀가 필요하다』, 『거의 모든 기쁨』, 산문집 『거의 모든 기쁨』 등을 썼다. 현재 ‘켬’ 동인의 일원으로 활동 중이다.

* 해당 원고의 의견은 필자 개인의 의견으로, 민주화운동기념관의 공식 의견과는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