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노동자 51명 전원 해고 통보
2021년 1월, 신라대학교는 학내 청소노동자 51명 전원에게 해고를 통보했다. 청소노동자 대신 교직원을 이용해 자발적으로 청소함으로써 학교 예산을 절감하겠다고 발표한 것이다. 이러한 결정의 배경에는 학령인구 감소로 인한 지방대 재정 위기가 있었다. 2월 23일, 청소노동자는 해고에 맞서 대학 본부를 점거하고 파업 농성을 시작했다. 2012년(9일)과 2014년(79일)에 이은 세 번째 농성 투쟁이었다. 세 번째 농성은 114일간 이어졌고, 2021년 6월 16일 해고 철회와 직접 고용을 쟁취했다.
2014년 두 번째 농성투쟁이 끝나던 날, 학교와 합의하는 자리에 청소노동자는 없었다. 더불어민주당 을지로위원회 국회의원과 학교 총장이 합의서를 작성했다. 당시 총장은 용역업체 소속인 간접고용 비정규직인 청소노동자를 학교 구성원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국회의원 중재로 겨우 합의서에 도장을 찍었다.
결과는 간접고용을 유지하며 대신 용역업체가 바뀌어도 고용을 보장해 주겠다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총장이 바뀌면서 번복되었고, 집단해고를 당한 청소노동자들은 2021년 다시 농성 투쟁에 돌입했다.
2021년 6월 16일, 114일간의 농성 끝에 학교와 합의하는 역사적인 날이었다. 총장은 청소노동자들에게 가족이라는 표현을 쓰며 합의하는 자리에 직접 초대했다. 누구의 중재가 아니라 조합원들이 직접 참여하여 직접 고용에 합의했다. 간접고용 비정규직에서 직접 고용이 된 청소노동자들은 ‘한 가족’이라는 표현에 뭉클했다고 한다. 간접고용으로 살아온 지난 10여 년 동안 학교 구성원으로 인정받지 못했다. 끈질긴 투쟁 끝에 쟁취한 결과라 더더욱 값진 성취였다.
민주주의는 누구도 배제하지 않는 공동체
사실 당시 학교는 청소노동자 전원 해고 사실을 직접 통보하지도 않았다. 1월 초, 교수와 교직원을 통해 흘러온 이야기를 듣고 현장 대표가 상황을 감지했다. 내용을 자세히 알기 위해 노조에서 총장 면담을 신청했지만, 학교는 회피했다. 우리는 직접 총장실에 찾아가서야 해고 사실을 정확히 알게 되었다. 학교는 청소노동자가 용역 업체 소속의 간접고용 비정규직이라는 이유로 학교 구성원에서 배제했다.
조합원들은 “씹다 버린 껌처럼 10년 넘게 일한 청소노동자를 하루아침에 길거리에 내동댕이쳤다"라고 말했다. 만약 학교에서 위기 극복을 위해 비상대책위원회를 꾸려 함께 논의하자고 제안했다면, 청소노동자 또한 극한 농성 투쟁을 선택하지 않았을지 모른다.
2021년 합의 후, 학교는 고용과 처우 문제에 대해 노동조합과 직접 단체교섭을 해야 했다. 간접고용 비정규직이었을 때는 작은 휴게실에서 용역업체 사장과 단체교섭을 진행했다. 직접 고용 후에는 학교 간부가 직접 단체교섭에 나왔다. 단순히 학교 관계자가 교섭에 참여하는 것만 끝이 아니었다. 1차 교섭 자리에는 꼭 총장이 직접 나와 인사를 했다. 장소도 작은 휴게실이 아니라 고위급 학교 간부들이 쓰는 대회의장을 빌려 진행했다. 조합원들은 학교 구성원으로서 제대로 대접받는다며 형식적인 대우에도 기뻐했다.
신라대 청소노동자가 직접 고용 쟁취를 위해 3번의 농성을 진행할 수 있었던 것은 노동조합 활동을 통해 민주주의 가치를 깨달았기 때문이다. 노조에서는 자주성, 계급성, 민주성을 가장 큰 가치로 내세운다. 특히 민주성에 대해 조합원들은 대한민국 국민으로 살면서 투표장에 가서 투표할 때 말고는 느끼기 어려웠다고 말했다. 모든 의사결정을 함께 논의해서 정하는 것이 처음에는 어려웠다. 점점 민주적인 노조 활동이 익숙해지니, 누구나 차별받거나 부당하게 대우받지 않고 살아야 할 권리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2021년 농성 투쟁 당시에도 조합원들은 10년간 노조 활동으로 체화된 민주성을 과감히 보여줬다. 매일 일정을 마치고 노조 간부와 조합원들이 참여하는 쟁의대책위원회 회의가 열렸다. 일정이 늦게 끝나도 꼭 하루 평가를 하고 다음 날 계획을 함께 짰다. 노조 위원장이 나를 따르시라고 한다고 무작정 따르지 않았다. 토론을 통해 끊임없이 가장 좋은 방법을 함께 고민했다. 누구 하나 발언권을 독점하는 사람도 없었다.
114일간의 농성 투쟁에서 민주성이 가장 빛난 것은 학교와 정식 교섭을 진행할 때였다. 학교는 5월 25일 정식 교섭을 요청하여 노조와 만났다. 쟁점은 '전원 직접 고용으로 복귀'와 정년 문제였다. 합의는 한 번에 이루어지지 않았다. 학교는 100일간 문제를 끌어왔으므로 합의를 위해 인원을 정리하자고 제안했다. 조합원들은 그 제안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60세 이상인 사람들도 끝까지 함께 투쟁했기 때문이다.
두 차례 교섭으로도 학교와 접점을 만들지 못해 조합원 전체 토론회가 열렸다. 전원이 모여 토론하기도 하고, 조별로 합의안에 대한 대안을 제출하기 위해 분임토론도 진행했다. 온종일 토론 끝에 협상안을 도출했다.
조합원들은 21년 연말까지 실업급여가 나왔다. 일부 인원은 9월에 끝나지만 대부분 11월까지였다. 학교 예산 절감을 위해 복귀 시점을 합의 직후가 아닌 9월에 4명, 12월에 23명, 부상자 1명은 치료 후 복귀하는 것으로 학교에 제안했다. 학교는 조합원들의 타협안을 수용하여 6월 16일 합의가 이뤄졌다.
노조법 개정으로 민주인권을 지키자
신라대 청소노동자와 같이 간접고용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사회 구성원으로 대우받지 못하고 투명 인간으로 일하고 있다. 노동 현장이 누구나 배제 없는 민주주의 공동체가 되기 위해 노조법 2조 개정이 필요하다.
노조법 2조 개정은 근로자와 사용자 개념을 확대하는 내용이다. 현재 노조법은 근로계약을 한 당사자에 국한하여 사용자성을 인정하고 있어서 하청 노동자에 대해 원청이 책임져야 할 법적 근거가 없다. 노조법 2조 개정으로 원청이 실질적인 사용자로서 책임을 지며, 노조와 교섭을 할 수 있게 바꿔야 한다. 다행히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 법안이 통과되어 본회 통과만 남겨두고 있다. 어떤 노동자도 배제 없는 민주적 공동체를 위해 노조법 2조 개정안이 꼭 통과되어야 한다.
글 : 배성민
부산지역일반노동조합 사무국장이자 <현장의 힘: 신라대청소노동자와 함께한 114일> 저자
* 해당 원고의 의견은 필자 개인의 의견으로, 민주화운동기념관의 공식 의견과는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청소노동자 51명 전원 해고 통보
2021년 1월, 신라대학교는 학내 청소노동자 51명 전원에게 해고를 통보했다. 청소노동자 대신 교직원을 이용해 자발적으로 청소함으로써 학교 예산을 절감하겠다고 발표한 것이다. 이러한 결정의 배경에는 학령인구 감소로 인한 지방대 재정 위기가 있었다. 2월 23일, 청소노동자는 해고에 맞서 대학 본부를 점거하고 파업 농성을 시작했다. 2012년(9일)과 2014년(79일)에 이은 세 번째 농성 투쟁이었다. 세 번째 농성은 114일간 이어졌고, 2021년 6월 16일 해고 철회와 직접 고용을 쟁취했다.
2014년 두 번째 농성투쟁이 끝나던 날, 학교와 합의하는 자리에 청소노동자는 없었다. 더불어민주당 을지로위원회 국회의원과 학교 총장이 합의서를 작성했다. 당시 총장은 용역업체 소속인 간접고용 비정규직인 청소노동자를 학교 구성원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국회의원 중재로 겨우 합의서에 도장을 찍었다.
결과는 간접고용을 유지하며 대신 용역업체가 바뀌어도 고용을 보장해 주겠다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총장이 바뀌면서 번복되었고, 집단해고를 당한 청소노동자들은 2021년 다시 농성 투쟁에 돌입했다.
2021년 6월 16일, 114일간의 농성 끝에 학교와 합의하는 역사적인 날이었다. 총장은 청소노동자들에게 가족이라는 표현을 쓰며 합의하는 자리에 직접 초대했다. 누구의 중재가 아니라 조합원들이 직접 참여하여 직접 고용에 합의했다. 간접고용 비정규직에서 직접 고용이 된 청소노동자들은 ‘한 가족’이라는 표현에 뭉클했다고 한다. 간접고용으로 살아온 지난 10여 년 동안 학교 구성원으로 인정받지 못했다. 끈질긴 투쟁 끝에 쟁취한 결과라 더더욱 값진 성취였다.
민주주의는 누구도 배제하지 않는 공동체
사실 당시 학교는 청소노동자 전원 해고 사실을 직접 통보하지도 않았다. 1월 초, 교수와 교직원을 통해 흘러온 이야기를 듣고 현장 대표가 상황을 감지했다. 내용을 자세히 알기 위해 노조에서 총장 면담을 신청했지만, 학교는 회피했다. 우리는 직접 총장실에 찾아가서야 해고 사실을 정확히 알게 되었다. 학교는 청소노동자가 용역 업체 소속의 간접고용 비정규직이라는 이유로 학교 구성원에서 배제했다.
조합원들은 “씹다 버린 껌처럼 10년 넘게 일한 청소노동자를 하루아침에 길거리에 내동댕이쳤다"라고 말했다. 만약 학교에서 위기 극복을 위해 비상대책위원회를 꾸려 함께 논의하자고 제안했다면, 청소노동자 또한 극한 농성 투쟁을 선택하지 않았을지 모른다.
2021년 합의 후, 학교는 고용과 처우 문제에 대해 노동조합과 직접 단체교섭을 해야 했다. 간접고용 비정규직이었을 때는 작은 휴게실에서 용역업체 사장과 단체교섭을 진행했다. 직접 고용 후에는 학교 간부가 직접 단체교섭에 나왔다. 단순히 학교 관계자가 교섭에 참여하는 것만 끝이 아니었다. 1차 교섭 자리에는 꼭 총장이 직접 나와 인사를 했다. 장소도 작은 휴게실이 아니라 고위급 학교 간부들이 쓰는 대회의장을 빌려 진행했다. 조합원들은 학교 구성원으로서 제대로 대접받는다며 형식적인 대우에도 기뻐했다.
신라대 청소노동자가 직접 고용 쟁취를 위해 3번의 농성을 진행할 수 있었던 것은 노동조합 활동을 통해 민주주의 가치를 깨달았기 때문이다. 노조에서는 자주성, 계급성, 민주성을 가장 큰 가치로 내세운다. 특히 민주성에 대해 조합원들은 대한민국 국민으로 살면서 투표장에 가서 투표할 때 말고는 느끼기 어려웠다고 말했다. 모든 의사결정을 함께 논의해서 정하는 것이 처음에는 어려웠다. 점점 민주적인 노조 활동이 익숙해지니, 누구나 차별받거나 부당하게 대우받지 않고 살아야 할 권리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2021년 농성 투쟁 당시에도 조합원들은 10년간 노조 활동으로 체화된 민주성을 과감히 보여줬다. 매일 일정을 마치고 노조 간부와 조합원들이 참여하는 쟁의대책위원회 회의가 열렸다. 일정이 늦게 끝나도 꼭 하루 평가를 하고 다음 날 계획을 함께 짰다. 노조 위원장이 나를 따르시라고 한다고 무작정 따르지 않았다. 토론을 통해 끊임없이 가장 좋은 방법을 함께 고민했다. 누구 하나 발언권을 독점하는 사람도 없었다.
114일간의 농성 투쟁에서 민주성이 가장 빛난 것은 학교와 정식 교섭을 진행할 때였다. 학교는 5월 25일 정식 교섭을 요청하여 노조와 만났다. 쟁점은 '전원 직접 고용으로 복귀'와 정년 문제였다. 합의는 한 번에 이루어지지 않았다. 학교는 100일간 문제를 끌어왔으므로 합의를 위해 인원을 정리하자고 제안했다. 조합원들은 그 제안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60세 이상인 사람들도 끝까지 함께 투쟁했기 때문이다.
두 차례 교섭으로도 학교와 접점을 만들지 못해 조합원 전체 토론회가 열렸다. 전원이 모여 토론하기도 하고, 조별로 합의안에 대한 대안을 제출하기 위해 분임토론도 진행했다. 온종일 토론 끝에 협상안을 도출했다.
조합원들은 21년 연말까지 실업급여가 나왔다. 일부 인원은 9월에 끝나지만 대부분 11월까지였다. 학교 예산 절감을 위해 복귀 시점을 합의 직후가 아닌 9월에 4명, 12월에 23명, 부상자 1명은 치료 후 복귀하는 것으로 학교에 제안했다. 학교는 조합원들의 타협안을 수용하여 6월 16일 합의가 이뤄졌다.
노조법 개정으로 민주인권을 지키자
신라대 청소노동자와 같이 간접고용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사회 구성원으로 대우받지 못하고 투명 인간으로 일하고 있다. 노동 현장이 누구나 배제 없는 민주주의 공동체가 되기 위해 노조법 2조 개정이 필요하다.
노조법 2조 개정은 근로자와 사용자 개념을 확대하는 내용이다. 현재 노조법은 근로계약을 한 당사자에 국한하여 사용자성을 인정하고 있어서 하청 노동자에 대해 원청이 책임져야 할 법적 근거가 없다. 노조법 2조 개정으로 원청이 실질적인 사용자로서 책임을 지며, 노조와 교섭을 할 수 있게 바꿔야 한다. 다행히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 법안이 통과되어 본회 통과만 남겨두고 있다. 어떤 노동자도 배제 없는 민주적 공동체를 위해 노조법 2조 개정안이 꼭 통과되어야 한다.
글 : 배성민
부산지역일반노동조합 사무국장이자 <현장의 힘: 신라대청소노동자와 함께한 114일> 저자
* 해당 원고의 의견은 필자 개인의 의견으로, 민주화운동기념관의 공식 의견과는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