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문제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 인권 선진국으로 가는 첫 걸음
겉모습은 남자이지만 성 정체성은 여자인 사람이 화장실에 간다면 남성용, 여성용 중 어디를 이용해야 할까. 대부분 사람은 이러한 질문을 받으면 당황한다. 성소수자들이 우리 곁에 있음직한 존재라고 느끼지조차 못하거나, 인지하고 있더라도 이들이 일상생활에서 느낄 당혹감과 좌절감까지는 미처 생각에 이르지 못하기 때문이다.
반면, 지구 반대편에는 성소수자의 인권을 고려해 남과 여로 구분되는 화장실의 기준을 없앤 나라가 있다. 바로 스웨덴이다. 스웨덴의 화장실 문에는 남녀 성별이 함께 그려져 있거나, 혹은 그마저도 없애고 화장실임을 알 수 있는 표지판만 붙어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내부는 변기와 세면대가 함께 있는 독립적인 공간으로 성별이나 성 정체성과 관계없이 누구나 사용할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다. 명칭도 남녀 공동 화장실이 아니라 성 중립 화장실(Gender neutral restroom)이다. 스웨덴 사회에 약자에 대한 배려가 깊이 녹아들었음을 잘 보여주는 단면이다.
그러나 ‘복지천국’을 향한 우리의 통념과는 다르게, 그리고 이미 안정적인 정착단계에 들어선 배려문화와도 역설적으로 사회적 약자들이 스웨덴에서 존중받았던 역사는 그다지 길지 않다. 한때 스웨덴에서도 동성애를 질병으로 분류했던 적이 있었다. 성소수자들과 인권운동가들은 “오늘은 동성애가 느껴지니 일을 못 하겠다”라는 핑계로 단체 병가를 내면서 이들의 인권을 둘러싼 기류를 바꾸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결국 스웨덴 의회는 1979년 질병 분류에서 동성애 항목을 없앤다. 그리고 더 나아가 2009년에는 동성혼을 합법화한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십여 년 전까지만 해도 스웨덴에서는 성전환자들이 성전환 사실을 법적으로 인정받기 위해 불임수술을 받아야 했다. 이 같은 관행에 대해 스웨덴 법원이 기본적 인권에 어긋난다는 판결을 내린 것이 불과 2012년 12월이다. 그간 강제로 불임수술을 받았던 성전환자는 700여 명에 달했고, 정부는 이들에게 22만 5천 크로나(약 2,800만 원)를 보상했다.
인권 선진국 스웨덴에서도 성소수자들을 향한 차별과 편견, 냉대가 존재했던 아픈 역사가 있다. 그러나 이들을 위해 공중화장실의 명칭과 시스템까지 바꾸기까지 십 년도 채 걸리지 않았다는 사실은 정말 놀랍다. 결국 스웨덴을 인권 선진국으로 만드는 것은 작은 문제점에도 민감하게 반응하고, 공론화시켜 사회적 합의로 이끌어나가는 힘일 것이다.
모든 인간은 자유로운 삶을 살아갈 인격체다
스웨덴은 성소수자뿐 아니라 장애인에게도 살기 좋은 나라다. 이들은 비장애인과 구분되지 않고 사회에서 함께 어우러져 살아간다. 밖으로 그 존재감을 드러낼 수 없는 한국의 장애인과는 다른 삶이다. 그러나 스웨덴에서도 이들이 당당한 사회적 인격체로 존중받기까지 극심한 사회적 진통을 겪었던 부끄러운 역사가 있다.
스웨덴 정부는 1935년 정신지체장애인 불임수술을 합법화했다. 이후 유전성 질환을 지닌 이들에게까지 범위가 확대되어 1975년 폐지될 때까지 6만 명이 넘는 장애인들과 미혼모, 성폭행범 등이 강제로 불임수술을 받아야만 했다. 석방이나 사회 복지 서비스와 같은 혜택을 받는 대가였다. 당시 우생학(eugenics)이 득세했던 유럽에서는 치료가 불가능한 유전적 질환의 확대를 막기 위해서는 장애인들을 소멸시켜야 한다고 믿었다.
장애인은 또한 지역사회와 격리된 채 보호시설에 갇혔다. 자유, 개성, 그리고 프라이버시가 박탈된 삶을 살고 있는 장애인의 모습과 이들에 가해진 강제 불임수술, 보호시설에서의 학대 및 노동력 착취 범죄 등이 세상에 서서히 알려지자 탈시설 여론이 형성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곧 사회 전체의 문제로 공론화되었다.
스웨덴 정부는 80~90년대 장애인 자립생활을 위한 서비스를 확대하고, 1997년 특수병원 및 요양시설 폐쇄법을 통해 모든 장애인 시설을 폐쇄키로 했다. 장애인 역시 스웨덴의 국민이며, 자유로운 삶을 살아갈 인격체라는 것이 그 이유였다. 대신 활동보조 서비스, 동행 서비스 등 장애인들의 편의를 위한 여러 맞춤 서비스를 제공하고 이들이 세상으로 나와 자립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도왔다. 장애인들은 그렇게 주체적이고 주도적인 삶을 살게 되었다.
특별한 배려는 또 다른 차별이 된다
인권 국가에서는 소수여서 잘 보이지도 않는 이들마저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진다, 그리고 이들이 불편함을 느끼거나 대상화되지 않도록 하는 배려가 있다. 성소수자를 위해 별도의 중성 화장실을 만드는 것이나 장애인에게 수용 시설 입소를 권하는 것과 같이 다수가 소수에게 제공하는 특별한 배려는 이들을 사회에서 고립시킨다. 배려로 포장되어 있지만 사실은 또 다른 차별일 뿐이다.
모든 사람이 함께 화장실을 사용하면 성별이나 성 정체성을 구분해야 할 필요가 없다. 장애인이 자신의 집에서, 지역사회에서 같이 살아가면 장애 여부를 확인해야 할 필요가 없다. 그래서 이분법적 규정에서 벗어나 소수든 다수든 있는 모습 그대로 살아갈 수 있다. 스웨덴 사회가 이처럼 포용성과 다양성을 강조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소수가 소외되면 공동체가 무너지지만, 모두를 아우르고 포용하면 함께 상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시각에서 보면 스웨덴의 화장실은 성소수자를 위한 배려가 아닌, 모두를 포용하는 화장실이 된다. 장애인의 탈시설은 장애인만의 인권을 지켜주는 수단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존엄성을 쟁취할 수 있는 계기가 된다. 소수자를 향한 배려가 마치 공기처럼 자연스러운 사회가 되기까지, 스웨덴은 오랜 진통과 아픔을 겪었지만 역사는 결국 발전하고 진보했다.
글 : 박지우
작가. 스웨덴에서 거주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행복한 나라의 가난한 사람들』을 썼다. 그 외 저서로는 『시사영어 베이직』, 『이메일 영어패턴 500 플러스』, 『나는 300단어로 네이티브처럼 말한다』 등이 있다.
* 해당 원고의 의견은 필자 개인의 의견으로, 민주화운동기념관의 공식 의견과는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작은 문제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 인권 선진국으로 가는 첫 걸음
겉모습은 남자이지만 성 정체성은 여자인 사람이 화장실에 간다면 남성용, 여성용 중 어디를 이용해야 할까. 대부분 사람은 이러한 질문을 받으면 당황한다. 성소수자들이 우리 곁에 있음직한 존재라고 느끼지조차 못하거나, 인지하고 있더라도 이들이 일상생활에서 느낄 당혹감과 좌절감까지는 미처 생각에 이르지 못하기 때문이다.
반면, 지구 반대편에는 성소수자의 인권을 고려해 남과 여로 구분되는 화장실의 기준을 없앤 나라가 있다. 바로 스웨덴이다. 스웨덴의 화장실 문에는 남녀 성별이 함께 그려져 있거나, 혹은 그마저도 없애고 화장실임을 알 수 있는 표지판만 붙어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내부는 변기와 세면대가 함께 있는 독립적인 공간으로 성별이나 성 정체성과 관계없이 누구나 사용할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다. 명칭도 남녀 공동 화장실이 아니라 성 중립 화장실(Gender neutral restroom)이다. 스웨덴 사회에 약자에 대한 배려가 깊이 녹아들었음을 잘 보여주는 단면이다.
그러나 ‘복지천국’을 향한 우리의 통념과는 다르게, 그리고 이미 안정적인 정착단계에 들어선 배려문화와도 역설적으로 사회적 약자들이 스웨덴에서 존중받았던 역사는 그다지 길지 않다. 한때 스웨덴에서도 동성애를 질병으로 분류했던 적이 있었다. 성소수자들과 인권운동가들은 “오늘은 동성애가 느껴지니 일을 못 하겠다”라는 핑계로 단체 병가를 내면서 이들의 인권을 둘러싼 기류를 바꾸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결국 스웨덴 의회는 1979년 질병 분류에서 동성애 항목을 없앤다. 그리고 더 나아가 2009년에는 동성혼을 합법화한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십여 년 전까지만 해도 스웨덴에서는 성전환자들이 성전환 사실을 법적으로 인정받기 위해 불임수술을 받아야 했다. 이 같은 관행에 대해 스웨덴 법원이 기본적 인권에 어긋난다는 판결을 내린 것이 불과 2012년 12월이다. 그간 강제로 불임수술을 받았던 성전환자는 700여 명에 달했고, 정부는 이들에게 22만 5천 크로나(약 2,800만 원)를 보상했다.
인권 선진국 스웨덴에서도 성소수자들을 향한 차별과 편견, 냉대가 존재했던 아픈 역사가 있다. 그러나 이들을 위해 공중화장실의 명칭과 시스템까지 바꾸기까지 십 년도 채 걸리지 않았다는 사실은 정말 놀랍다. 결국 스웨덴을 인권 선진국으로 만드는 것은 작은 문제점에도 민감하게 반응하고, 공론화시켜 사회적 합의로 이끌어나가는 힘일 것이다.
모든 인간은 자유로운 삶을 살아갈 인격체다
스웨덴은 성소수자뿐 아니라 장애인에게도 살기 좋은 나라다. 이들은 비장애인과 구분되지 않고 사회에서 함께 어우러져 살아간다. 밖으로 그 존재감을 드러낼 수 없는 한국의 장애인과는 다른 삶이다. 그러나 스웨덴에서도 이들이 당당한 사회적 인격체로 존중받기까지 극심한 사회적 진통을 겪었던 부끄러운 역사가 있다.
스웨덴 정부는 1935년 정신지체장애인 불임수술을 합법화했다. 이후 유전성 질환을 지닌 이들에게까지 범위가 확대되어 1975년 폐지될 때까지 6만 명이 넘는 장애인들과 미혼모, 성폭행범 등이 강제로 불임수술을 받아야만 했다. 석방이나 사회 복지 서비스와 같은 혜택을 받는 대가였다. 당시 우생학(eugenics)이 득세했던 유럽에서는 치료가 불가능한 유전적 질환의 확대를 막기 위해서는 장애인들을 소멸시켜야 한다고 믿었다.
장애인은 또한 지역사회와 격리된 채 보호시설에 갇혔다. 자유, 개성, 그리고 프라이버시가 박탈된 삶을 살고 있는 장애인의 모습과 이들에 가해진 강제 불임수술, 보호시설에서의 학대 및 노동력 착취 범죄 등이 세상에 서서히 알려지자 탈시설 여론이 형성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곧 사회 전체의 문제로 공론화되었다.
스웨덴 정부는 80~90년대 장애인 자립생활을 위한 서비스를 확대하고, 1997년 특수병원 및 요양시설 폐쇄법을 통해 모든 장애인 시설을 폐쇄키로 했다. 장애인 역시 스웨덴의 국민이며, 자유로운 삶을 살아갈 인격체라는 것이 그 이유였다. 대신 활동보조 서비스, 동행 서비스 등 장애인들의 편의를 위한 여러 맞춤 서비스를 제공하고 이들이 세상으로 나와 자립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도왔다. 장애인들은 그렇게 주체적이고 주도적인 삶을 살게 되었다.
특별한 배려는 또 다른 차별이 된다
인권 국가에서는 소수여서 잘 보이지도 않는 이들마저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진다, 그리고 이들이 불편함을 느끼거나 대상화되지 않도록 하는 배려가 있다. 성소수자를 위해 별도의 중성 화장실을 만드는 것이나 장애인에게 수용 시설 입소를 권하는 것과 같이 다수가 소수에게 제공하는 특별한 배려는 이들을 사회에서 고립시킨다. 배려로 포장되어 있지만 사실은 또 다른 차별일 뿐이다.
모든 사람이 함께 화장실을 사용하면 성별이나 성 정체성을 구분해야 할 필요가 없다. 장애인이 자신의 집에서, 지역사회에서 같이 살아가면 장애 여부를 확인해야 할 필요가 없다. 그래서 이분법적 규정에서 벗어나 소수든 다수든 있는 모습 그대로 살아갈 수 있다. 스웨덴 사회가 이처럼 포용성과 다양성을 강조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소수가 소외되면 공동체가 무너지지만, 모두를 아우르고 포용하면 함께 상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시각에서 보면 스웨덴의 화장실은 성소수자를 위한 배려가 아닌, 모두를 포용하는 화장실이 된다. 장애인의 탈시설은 장애인만의 인권을 지켜주는 수단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존엄성을 쟁취할 수 있는 계기가 된다. 소수자를 향한 배려가 마치 공기처럼 자연스러운 사회가 되기까지, 스웨덴은 오랜 진통과 아픔을 겪었지만 역사는 결국 발전하고 진보했다.
글 : 박지우
작가. 스웨덴에서 거주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행복한 나라의 가난한 사람들』을 썼다. 그 외 저서로는 『시사영어 베이직』, 『이메일 영어패턴 500 플러스』, 『나는 300단어로 네이티브처럼 말한다』 등이 있다.
* 해당 원고의 의견은 필자 개인의 의견으로, 민주화운동기념관의 공식 의견과는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