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젝트 소식

세계의 민주주의이주노동, 야만과 차별의 그늘에서(1) - 이주노동 잔혹사 | 남은주


1. 카타르 월드컵 ‘이주노동 잔혹사’


2022년 카타르 월드컵은 값비싼 대가를 치르고 저임금 이주 노동자들이 처한 현실을 국제적으로 공론화한 계기였다. 영국 신문 <가디언>지 추정에 따르면 월드컵 개최가 결정됐던 2010년부터 2020년 사이 카타르에서 사망한 이주노동자가 6,500명이다.(각주1) 카타르 당국은 이들 대부분 사인이 명확하지 않았으며 산업재해나 열악한 노동조건 탓으로 볼 수 없다며 반박했다. 또 축구 연맹 등에서도 이주 노동자 사망 원인에 대한 명확한 조사도 없이 마치 학대로 인한 사망인 것처럼 이슈화하는 것 자체가 서양인들의 눈으로 다른 나라의 현실을 야만적인 것으로 보려는 오리엔탈리즘에 가깝다는 반박이 있었다. 


그러나 <가디언> 통계엔 2020년 11월 이후부터 월드컵 개최 당시까지 사망한 노동자들의 숫자는 포함되어 있지 않다. 또 이 숫자는  <가디언>이 인도, 방글라데시, 네팔, 스리랑카, 파키스탄 등의 대사관에서 집계한 자국 출신 노동자들의 사망건수를 근거로 했으며 필리핀, 케냐 등 카타르에서 일하는 여러 다른 나라 노동자들의 사망통계는 포함되어 있지 않다. 실제 이주노동자 사망은 그 몇 배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는 주장이 좀 더 힘을 얻는다. 


바이탈 사인스 프로젝트 보고서 표지 사진. 한 이주노동자의 장례식 사진으로 추정된다.
(THE DEATHS OF MIGRANTS IN THE GULF vitalsignsproject.org REPORT 1 / MARCH 2022) 


‘카타르 잔혹사’는 이주노동이 안고 있는 문제의 축약판과도 같다. 바이탈 사인스 프로젝트에서 펴낸 보고서에 따르면 걸프 지역에서  매년 1만 명이 넘는 아시아 출신 노동자들이 사망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이들 사망의 절반 이상이 공식적으로는 ‘원인 불명’ 혹은 ‘자연사’로 처리된다. 


그러나 건강검진을 거쳐 채용된 20~40대 남성이 대부분인 이들 노동자의 주요 사망원인이 회사 쪽 주장처럼 ‘자연사’일지는 의문이다. 바이탈 사인스 프로젝트는 바레인, 쿠웨이트, 오만, 카타르,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 등 6개 걸프 지역 국가에서 일하는 아시아 5개국(방글라데시, 인도, 네팔, 파키스탄, 필리핀) 출신 이주 노동자의 사망과 건강실태를 조사하기 위한 단체이다. 


이곳에서 2022년 3월 펴낸 <걸프 지역에서 이민자들의 죽음(THE DEATHS OF MIGRANTS IN THE GULF)>이라는 보고서에서는 노동자들의 사망에 책임이 있는 요인으로 “산업재해와 더위 노출로 대표되는 열악한 노동조건, 건강 악화를 부추기는 생활 환경, 사회적 고립” 등을 꼽았다. 근본적으로는 노예계약을 가능하게 하는 고용주 종속 체류허가와 국내외 노동자에게 달리 적용되는 노동권 보장이 그들의 죽음에 책임이 있다. 


인종말살과 저임금 이주노동은 21세기 인권의 가장 낮은 지점이다. 그러나 실제론 많은 국가의 경제가 이주노동에 대한 의존성이 높아지고 있기 때문에 어떤 식으로든 결실과 진전을 맺어야 하는 분야이기도 하다. 한국 사회도 본격적 논의를 눈앞에 두고 있다. 이 글에서는 카라트 월드컵으로 드러난 이주 노동에 대한 야만과 반인권 실태를 정리하고 한국 사회에 시사하는 점을 살펴보려고 한다. 


2. 알려진 착취, 숨겨진 착취 

2.1 차별의 조건 : 부자 나라의 가난한 이주노동자 


국제노동기구(ILO) 집계를 보면 2019년 전 세계 국제 이주 노동자는 1억 6,900만 명에 달한다. 전 세계 노동력의 4.9%를 차지하는 숫자다. 이주 인구의 69%가 다른 나라에서 일하기 위해 이주한다. 이주 노동자가 일하는 나라의 3분의 2 이상이 고소득 국가였는데 24.2%가 유럽, 22.1%가 북미, 14.3%가 아랍 국가의 순으로 이주노동자를 받고 있었다. 출신 국가로는 남아프리카, 동남/서남아시아, 중남미 노동자의 순으로 저소득 국가에서 고소득 국가로 이동하는 흐름이 뚜렷하다. (각주2) 국제노동기구(ILO)의 또 다른 보고서는 바로 이 저소득 국가에서 고소득 국가로 간 이민자들이 일상적으로 얼마나 많은 차별과 배제를 경험하고 있는지 그 실태를 보여준다. 고소득 국가에서 일하는 이주노동자들은 자국 출신 노동자보다 평균 13%가량 소득이 적다. 키프로스, 이탈리아, 오스트리아와 같은 일부 국가에서는 시간당 임금 격차가 각각 42%, 30%, 25%까지 벌어졌고 핀란드가 11%로 평균보다 낮았다. 


이러한 임금 격차의 가장 큰 원인은 저소득 국가 출신 이주노동자가 고소득 국가에서는 대부분 저임금 노동에 종사하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된다. 앞서 말한 국제노동기구 보고서를 보면 저소득 국가 이주노동자들이 가장 많이 일하는 분야는 판매, 운송 등 서비스직이다. 서비스직이 압도적으로 많은 이유는 여성 이주노동자 80%가 의료, 가사 등 돌봄 노동에 몰려 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그다음으론 산업 분야(26.7%), 농업(7.1%) 순이다. 


미국과 핀란드를 예로 들어보면 이 두 나라에서 합법적으로 채용되어 일하는 이주 노동자들 중  중등 교육을 받은 이주 노동자가 각각 78%와 98% 지만, 고숙련 또는 준숙련 직업에 종사하는 이주 노동자의 비율은 35%와 50%에 불과하다. 고용 과정에서의 차별, 1,2차 산업으로 구조적 편입 등의 결과로 고소득 국가의 이주노동자들은 자신의 교육 및 기술과 일치하지 않는 저숙련 및 저임금 직업에서 일할 가능성이 더 높다는 것이다. 고용 형태 또한 불안해 세계 소득수준 상위 36개국 국가에서 이주 노동자 27%는 임시 계약직, 15%는 파트타임으로 일한다. 이들 국가에서 이주노동자들은 많은 숫자가 농업, 어업, 임업 등 1차 부문과 전기, 가스, 건설 등 2차 부문에서 일한다. 


저소득 및 중간 소득 국가에서는 반대다. 저소득 국가에 일하러 온 이주 노동자는 대개 주재원이나 한시적 프로젝트를 위해 일하는 고숙련 노동자로 비이주 노동자보다 시간당 약 17.3% 더 많은 임금을 받는 것으로 집계됐다.(각주3) 

카타르 월드컵 뒤엔 이주노동자가 있었다. 휴먼라이츠 보고서 표지 일러스트. 

“How Can We Work Without Wages?” Salary Abuses Facing Migrant Workers Ahead of Qatar’s FIFA World Cup 2022



2.2. 저임금: 1달러를 받기 위해 집을 떠난 사람들  


케냐에서 온 26살 헨리는 카타르에서 배관공으로 일하기 위해 브로커에게 1,173달러를 냈다. 이 돈을 내려고 30%의 이자율로 사채도 썼다. 헨리는 카타르에서 매달 329달러를 받는 조건으로 고용계약을 맺었다. 빚도 충분히 갚고 돈을 모을 수 있을 것이기에 카타르행은 희망 그 자체였다. 그러나 카타르에서 일한 첫 두 달 치 월급은 여러 수수료 명목으로 받지 못했다. 3달 만에 받은 돈은 228달러에 불과했다. 헨리는 하루 14시간씩 일했지만 시간외 근무 수당은커녕 최저 임금에도 미치지 못하는 돈을 받았다. 필리핀에서 온 사만다는 2년 동안 도하의 고급 쇼핑몰에서 하루 12시간씩 화장실과 푸드코트를 쓸고 닦는 일을 해서 한 달에 357달러를 벌었다. 회사는 여권을 압수했고 회사 숙소를 떠나는 것을 금지했다.  

세계 인권단체 휴먼라이츠가 펴낸 카타르 이주 노동자 월급 착취 실태 보고서(“How Can We Work Without Wages?” Salary Abuses Facing Migrant Workers Ahead of Qatar’s FIFA World Cup 2022)에 나온 사례들이다. 2021년 3월 카타르 정부는 걸프 지역에서는 처음으로 이주노동자에게도 최저임금제도를 도입했지만, 월 275달러라는 돈은 주 60시간을 일하는 대부분의 이주노동자들에게는 시간당 1달러밖에 안되는 형편없는 액수인데다가 그마저도 임금체불과 미지급, 각종 명목으로 가로채는 일이 횡행하여 휴먼라이츠는 보고서에서 "최저임금이라는 이름이 아깝다"라고 비판했다.

고용주 못지않게 취업 중개사들도 많은 이주노동자를 절망에 빠뜨린다. 헨리의 사례처럼 많은 이주 노동자들은 취업 수수료로 큰 빚을 지게 된다. 가혹한 노동조건에 시달려도 이들이 선뜻 귀국하지 못하는 이유다. 해외 송금을 하겠다며 떠나온 많은 노동자들이 병에 걸리면  수수료로 인한 큰 빚만 지고 귀국하는 사례도 허다하지만 이들의 출신 국가든 도착국가든 불법적 취업 알선에 대한 단속은 미비하다. 과다한 수수료, 허위 정보로 인한 위험은 모두 이주노동자의 몫이다.  


우간다는 걸프 지역에 많은 이주노동자를 보내는 나라 중 하나다. 매년 18만 명이 일자리를 찾아 걸프 지역으로 가는데 어린 소녀들까지 가사노동자로 떠난다. 인권감시 기구인 마이그란트-라이츠 조사를 보면 우간다에는 200개가 넘는 중개 업체가 영업 중인데 이들은 노동자에게 걸프 지역에 직업을 소개해 주는 대가로 노동자들에게서 559달러~ 2,237달러까지를 수수료로 챙긴다. 가장 수수료가 높은 경비원으로 일하려면 2,237달러는 내야 하지만 가사노동자는 56달러면 된다. 그 말은 가사노동자는 가장 열악한 노동계약을 맺으며 학대에 시달릴 가능성이 특히 높다는 뜻이다. 


2.3. 폭력과 열악한 생활 조건 


지난해 11월 케냐에서 온 JMM이라는 여성이 카타르 도하의 한 병원에서 수술을 받았다. 이 여성은 가사도우미로 일하던 집의 고용주에게 폭력을 당해 척추와 다리에 심각한 부상을 입고 지난해에도 수술을 받았지만 걷거나 설 수도 없게 됐다. 이주노동자 인권단체 마이그란트-라이츠 홈페이지에서는 피해자의 증언을 녹취한 내용을 들을 수 있다. JMM은 2021년 5월부터 이 집에서 일했는데, 아이들이 무언가를 어지르거나 집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집주인은 JMM을 닥치는 대로 때렸다고 한다. 그는 집주인이 휘두르는 와이어나, 빗자루로 맞았고, 맞다가 쓰러지면 하이힐로 짓밟히고, 묶어두고 라이터로 몸에 불이 붙는 고문에 가까운 폭행을 당했다.(각주4) 이제 보조기 없이는 걸을 수 없게 되어서야 집주인을 고소하고 그 결과를 기다리고 있지만 그마저도 인권단체와 주변 사람의 도움이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집주인이 제시한 보상액은 병원비도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이었고, 처벌은 기대하기 어렵다. 


방글라데시 출신으로 사우디아라비아에서 가사도우미로 일하던 한 35살 여성은 집주인에게 지속적으로 폭행을 당했지만 병원에 보내주지 않아서 방글라데시에서 가져온 약으로 버텨야 했다. 방글라데시로 돌아가서야 병원을 찾을 수 있었던 간손상을 진단받았다. 쿠웨이트 노동자들의 사인과 건강 상태를 조사한 바이탈 사인 프로젝트가 소개한 사례다. 이 보고서를 보면 왜 건강했던 이주노동자들이 걸프 지역에서 매년 1만 명 넘게 사망하는지 그 이유가 드러난다. 


이주노동자들은 과중한 노동과 불결하고 비위생적인 숙소, 부실한 영양에 시달리면서도 의료 대상에서 제외된 채 살아가고 있었다. 고용주가 여권과 보험카드를 가지고 있어서 병원을 가고 싶어도 허락을 못 받는 경우가 허다했다. 병원에 갈 수 있다고 하더라도 병원비를 감당할 능력이 없었다. 바이탈 사인 프로젝트가 쿠웨이트 저임금 노동자 1,101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30%가 “의료비를 지불할 수 없다"라고 답했으며, 51%가 “여권이나 기타 신분증이 없어서 병원에 갈 수 있는 기회조차 없다"라고 했다. 걸프 지역에서 이주노동자로 일하기 위해서는 고용주에게 여권을 맡겨야 하는 불공정한 제도 때문이다. 


마이그란츠-라이츠에 실린 JMM의 폭행 사례 보도. 


2.4. 근본 원인: 체류허가의 문제 


걸프 지역에서 이주노동자에 대한 심각한 인권침해가 끊이지 않는 배경에는 알려진 것처럼 카팔라 제도라는 외국인 노동자 관리 제도의 문제가 있다. 후견인이라는 뜻의 카팔라 제도는 원래 아랍문화에서 부모가 없는 아이를 주변의 어른이 성인이 될 때까지 돌보는 등 약자를 후견한다는 취지의 관습에서 유래했다. 그러나 후견인이 피후견인을 좌우할 수 있는 권한을 보장해 주면서 인권침해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카팔라 제도가 도입된 아랍권에서는 모든 외국인 노동자에게 후견인으로서 현지 고용주가 있어야 한다. 


고용주는 이주노동자의 입국 절차와 국가 등록을 관리하기 위해 이주노동자 여권을 압수한다. 고용주에게만 유리한 고용계약서, 성폭력을 비롯한 각종 폭력, 굶주림과 열악한 생활환경에 처해도 이주노동자는 폭력으로부터 도망치는 것조차 하지 못한다. 허가 없이 고용주를 떠나면 체류허가가 취소되거나 구금, 추방되기 때문이다. 카팔라 제도 때문에 고용주가 이주노동자를 자신의 소유인 양 여기게 되고 심지어는 강제노동, 인신매매 같은 범죄를 부추긴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레바논의 한 고용주가 페이스북 중고거래 페이지에 나이지리아에서 온 가사노동자를 매물로 내놓아 공분을 샀던 사례가 대표적이다. 25만 명의 이주노동자가 일하고 있는 레바논은 걸프 지역이 아니면서도 이주노동자 고용에 있어 카팔라 제도를 채택하고 있다. 또 노동법에서 이주노동자는 노동권 보장에서 제외한다는 조항으로 국제사회의 비판을 받아 왔다.

2008년 휴먼라이츠 워치 조사에 따르면 레바논에선 일주일에 한 명꼴로 외국인 가사 노동자가 알 수 없는 원인으로 사망했으며, 사망 원인으로는 자살과 탈출 시도가 가장 많았다. 최근 통계는 없지만 지금도 레바논에서 이주노동자 출신 가사 노동자의 사망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


카팔라 제도로 인한 무수한 인권침해 사례가 일러주는 교훈은 모든 이주노동자를 받는 국가에 해당한다. 이주노동자가 사업장 선택의 자유를 가질 수 있어야 부당 노동을 거부할 수 있다는 것이다. 2003년 도입된 한국의 고용허가제 또한 이주 노동자들이 사업장을 변경할 때는 고용주가 서명하는 고용변동 신고서가 있어야 하며 변동 횟수도 제한을 두고 있다. 넓게 보면 카팔라 제도처럼 노동권 침해와 강제노동의 위험이 다분하다고 비판받는 것도 이 때문이다. 


[세계 민주인권을 보는 8개의 시선] 세계 곳곳에서 다양한 형태로 벌어지는 '민주주의와 인권 위기'를 목도하며 8명의 필자가 고민과 성찰을 나눕니다.
글 : 남은주 (전 한겨레신문사 기자, 현재 베를린에서 사회복지학을 공부하며 기고 및 번역 작업을 하고 있다)
* 해당 원고의 의견은 필자 개인의 의견으로, 민주인권기념관의 공식 의견과는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각주1. “Revealed: 6,500 migrant workers have died in Qatar since World Cup awarded”, <Guardian> 2021. 2. 23
각주2. <Global Estimates on International Migrant Workers>, 2021, ILO
각주3. <The migrant pay gap: Understanding wage differences between migrants and nationals>, 14 December 2020, ILO

각주4. https://www.migrant-rights.org/2022/09/kenyan-domestic-worker-with-debilitating-injuries-awaits-justice-in-qata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