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만성적인 차별, 바꿀 수 있을까?
3.1 사례1_독일 축산업 : 도착국가의 각성과 변화
이주노동자에게 국가의 내외부 개념은 사실상 해체된다. 이주노동 환경의 상당부분은 도착국가의 노동권에 대한 인식, 인종차별 개선 등에 좌우된다. 출신국가가 일자리 중개업소를 단속하고 자국 노동자의 인권을 지키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것 만큼 도착국가가 공정노동환경을 조성해야 할 의무가 큰 것이다.
이주노동자 관련 정책 수립을 위해서는 보이지 않는 차별을 철폐하기 위한 독일정부 정책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독일의 경우, ‘동일 노동 동일 임금’ 원칙으로 이주노동자 차별을 금지해왔다. 그러나 이주노동자 40%가 저임금에 종사하는 상황에서는 저임금은 구조적으로 고착화된다. 60%가 저임금인 스위스나 룩셈부르크도 비슷하다. 이들 대부분은 도로건설이나 운송 등 인력이 부족한 산업에서 일자리를 구한다. 지난 팬데믹 때 사회적 화두가 됐던 수확이나 도축장 일자리도 대표적인 이주노동자의 몫이었다.
2020년 6월, 독일에서는 육류회사 퇴니스의 한 도축장에서 무려 1500명이나 되는 직원들이 집단적으로 코로나에 감염됐다. 이들 직원들은 대부분 루마니아나 불가리아 등 동유럽에서 온 이주노동자였다. 그뒤 다른 도축장에서도 집단 발병의 사례가 잇달았다. 감염경로를 추적하는 과정에서 도축노동자들이 처한 노동조건이 이슈가 됐다.
코로나 이전에도 이미 육류산업 맨 밑바닥에 있는 이주노동자에 대한 처우는 사회적 논쟁거리였다. 2014년 육류 산업에도 다른 업종과 동일한 최저임금이 도입됐다가 다시 폐지됐다. 도축장에서도 독일 다른 사업장처럼 하루 10시간 이상 노동금지가 지켜져야 하지만 많은 도축장에서 하루 16시간, 주7일 일하는 경우가 많은 것으로 드러났다. 이주노동자들은 창고같은 곳에서 잠을 자면서 불법 수수료와 높은 숙식비, 교통비 등을 제하고 임금을 받았다.
이런 일이 가능했던 것은 축산업이 하청을 거듭하는 구조인데다가 축산 기업들과 고기값을 저렴하게 유지하고 싶은 정치의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졌기 때문이다. 이주노동자가 대부분인 도축장 노동조건 개선은 독일의 노동법 사각지대에 존재해 왔다. 외국 노동자들을 고용해 도축장과 연결하는 인력회사들은 주로 동유럽에서 노동자들을 무한 공급할 수 있었다. 독일은 세계적인 축산국가지만 이들 축산 가공공장의 직접 고용률은 10% 남짓했다.
퇴니스 사태와 축산업 확장을 반대하는 녹색당의 목소리가 커지면서 도축장은 구조개선에 들어갔다. 2021년 1월자로 독일에서는 도축분야에서 임시직 고용이 금지됐다.(<REPORT Nr.61, Januar 2021 NEUORDNUNG DER ARBEITSBEZIEHUNGEN IN DER FLEISCHINDUSTRIE>) 또 산업안전보건법을 도입, 안전규정 준수 의무를 확인하는 정책이 시행됐다.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지적도 있다. 임시직 고용이 단기 계약직으로 대체됐을 뿐이라는 것이다.
더불어서 이 기회에 이주노동자를 저임금 노동자로 만드는 채용구조부터 바꿔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이주노동자를 저임금노동자로 만드는 공식은 이주 노동자가 출신국가에서 취득한 학력 및 경력을 인정하지 않는 제도들도 한몫한다. 독일에서는 이주노동자가 산업의 맨 밑바닥에 편입되는 구조를 차단하기 위해서 외국에서 취득한 학력 및 경력의 전문성 인정에 대한 제도도 계속 검토되고 있다.
월드컵 개최를 앞두고 카타르에서 막바지 공사중인 노동자들 (출처 : 국제노동기구 홈페이지)
3.2 사례2_걸프, 카팔라는 사라져야 한다
2020년 8월 30일부터 카타르에서 이주 노동자는 고용주 동의서 없이도 노동계약이 끝나기 전 사업장을 옮길 수 있게 되었다. 또 내국인과 같은 최저임금을 받게 됐다. 2022년 카타르 월드컵을 계기로 걸프지역에서 카팔라 제도를 폐지한 첫번째 사례가 나온 것이다. 카타르의 변화는 ‘이주노동자의 무덤’이라고 불리었던 이 지역의 극악한 이주노동 현실을 개선하는 첫발이 되리라는 기대가 높았다.
2021년 3월에는 사우디 아라비아가 카팔라 제도를 대체하는 새로운 이주노동자 관리법을 발표했다. 이 법에 따르면 이주노동자도 일한지 1년이 지나면 고용주 동의가 없어도 후견인을 벗어날 수 있다. 가정집에 고용된 이주노동자는 여전히 고용주 동의를 받아야 하고, 그외에도 고용주가 이주노동자를 통제할 수 있는 독소조항들이 남아 있어 반쪽짜리 폐지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그러나 수 십 년 넘게 견고하던 차별제도에 작은 균열이 보이기 시작한다는 희망 섞인 기대가 높다.
소수가 자연 자원의 대부분을 소유하는 걸프지역 경제 구조에서 카팔라제도는 이주 노동자는 결코 생산수단을 소유할 수 없도록 하는 부의 국내 독점을 가능하게 하는 장치다. 따라서 카팔라 제도 폐지는 기득권들의 강력한 저항에 부딪친다. 인구의 90%가 외국인이며 이주노동자가 경제의 상당부분을 떠받치고 있는 아랍에미리트 경우엔 카팔라 제도를 폐지하는 대신 거주자도 후견인을 맡을 수 있는 자유 경제구역을 확대하는 방법으로 절충을 시도하고 있다.
3.3. 사례3_자발적인 이주 노동 연대들
걸프 지역에서 이러한 변화를 가져온 주체가 누구인지에 대해서 주목할 필요가 있다. 단결권, 단체행동권, 단체 교섭권의 노동3권은 노동자가 자신의 권리를 보장받기 위한 가장 중요한 권리다. 거의 모든 나라에서 자국의 노동자에겐 단결권, 단체행동권, 단체 교섭권의 노동3권을 보장하고 있지만, 많은 나라에서 이주노동자는 철저히 소외된다.
저임금 이주노동자는 개별 사업장이나 사용주에게 종속되어 노동권을 주장하면 신분상 불이익을 받게 되는 불안한 처지에 몰려 있다. 앞서 독일의 도축장 사례에서 도축장에서 임시계약을 금지한 것도 노동자로서 조직을 결성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취지가 크다.
노동조합이 없는 이주노동자들에겐 국제 및 지역 시민단체가 지킴이 역할을 하고 있다. 걸프지역의 경우 노동자의 권리침해 실태를 알리고 노동조건 개선을 위한 싸움에서 휴먼라이츠 워치나 국제 앰네스트같은 국제적 인권단체뿐 아니라 출신국가의 노동자들이나 지역 인권단체들의 역할은 점점 더 커지고 있다.
2007년에 창설된 마이그란츠-라이츠는 걸프지역 국가들에 흩어져 있던 작은 단체들의 목소리를 모아 이주노동자의 인권실태를 세계로 알리는 역할을 해왔다. 또 여러 악법 개정 상황과 이주노동자 상황에 대한 전체 통계를 제공한다.
2023년 1월 현재 마이그란츠-라이츠는 걸프 지역 주요 이주노동자 출신국가와 도착국가에서 활동하는 54개 시민단체의 주소가 나와 있다. 한 단체가 사라지면 또 다른 단체가 생겨난다. 마이그란트 포럼 아시아는 아시아 이주 노동자와 관련된 문제를 이슈화해왔다. 인도에 기반을 둔 국제 인권변호사 협회는 인도 출신 이주노동자 권리 보호를 위한 캠페인을 벌인다.
2003년에는 필리핀 이주노동자 조직의 동맹이 마이그란테 인터내셔널의 아랍에미리트 지부가 창설됐다. 바레인에는 인권센터와 이주 노동자 보호협회가 있다. 인도와 필리핀은 이미 19세기 무렵부터 걸프 지역과의 교류를 통한 이주노동자 파견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노동자들이 해외에서 당하는 노동권, 인권침해에 대해서는 적극적으로 대처해오지 못했던 것으로 평가된다.
이들 조직은 서로 다른 문화적 배경을 지닌 노동자들의 자발적 조직인 동시에 이주노동자 연대의 시작이 된다. 지난 수십년 동안 이들 단체가 노동 조건, 인권 침해, 인구 통계 및 이동을 조사해 온 결과 국제 노동기구 등에 이주 노동자 보호를 목표로 하는 정책을 모니터링, 조사, 보고 및 건의하여 정책을 생산할 수 있었던 것이다.
걸프지역 이주노동자 학대 지도를 그려온 마이그란트 라이츠 홈페이지. 산업재해, 사망, 성폭력 등의 건수가 표시되어 있다.
4. 맺으며 : 이주노동자 인권의 현재와 미래
4.1. 만국 도축장의 노동자여, 단결하라
팬데믹 기간 동안 많은 나라에서 이주노동자는 임금체불과 강제 출국 등의 위기에 직면했다. 그러나 한편으론 이주노동의 발길이 끊기면서 많은 나라에서 기초 산업에서 심각한 인력부족을 겪기도 했다. 앞으로는 한국을 비롯한 많은 나라에서 이주노동자를 적극적으로 받기 위한 정책이 확대되겠지만 이러한 정책은 항상 우선 자국 노동자의 반대에 부딪친다.
독일 사회서비스노조 연합인 베르디의 한 간부는 인터뷰에서 “더 많은 이주노동자를 데려오기 위한 법개정에 찬성하지 않는다. 독일 노동자들을 잘 교육시켜 좋은 일자리를 제공하고 이주노동자는 인력이 모자라는 부분에 배치하라”고 했다. 이주노동자 보호에 선진적인 것으로 알려진 독일에서도 이주노동자들이 자국 노동자의 일자리를 위협한다는 반대를 넘어서는 것은 큰 어려움이다. 그러나 이주노동자가 다수인 산업을 개혁하지 않는다면 자국의 저임금 노동자들도 그 피해를 지는 것은 마찬가지다.
2022년 7월 미국 일리노이주 한 도축장에서 노동자가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22살의 가르시아는 육가공뒤 버려진 부속품들이 썩어서 나온 메탄가스로 가득찬 작업장에서 비틀거리며 걸어나가다가 감전사를 당했다. 가르시아의 죽음을 통해 이 공장에서는 지난해만도 4명의 노동자가 이미 사고로 죽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미국에서도 도축산업은 대부분 이주노동자들이 일하고 열악한 노동조건과 위법적인 운영에도 단속의 사각지대에 있다. 다수의 이주노동자와 소수 미국인 노동자가 3교대로 쉬지 않고 돌리는 공장에서 누구도 안전하지 못했던 것이다.
지난해 2월 단속에 적발된 네덜란드의 한 도축장의 사례도 생각해볼만하다. 독일에서 산업안전보건법이 시행되자 이제 사업자들은 동유럽 이주노동자들을 모아 독일에서 숙식시키고 바로 근처의 네덜란드의 공장에서 일을 시키는 방식으로 법망을 피해가고 있었다. 보도에 따르면 독일에 있는 이들의 숙소에는 곰팡이와 벌레가 들끓고 있었으며 네덜란드 작업장에서는 초과근무가 여전했다고 한다.
도축장 사례는 이주노동자의 노동권을 지키는 것이 국내 노동자의 노동에도 도움이 되며 동시에 이주노동자의 노동권 보호는 한 국가만으로는 부족하고 세계적으로 시행되어야 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주 노동자 권리 단체들의 주장은 이렇다. “대부분의 정부는 취약계층이나 저임금 노동자를 이주 노동자자의 "불공정한" 경쟁(이주노동자들이 저임금이라는 의미에서)으로부터 보호하려고 한다. 그러나 이주노동자에게 노동법을 보장하지 않는 것은 그 사업 전체 노동자들의 피해로 돌아간다. 자국 노동자를 보호하는 최선의 방법은 그 사업을 구조적으로 개선하고 탈법을 막아 이주노동자를 보호하는 것”이라고 반박한다. (각주5)
고용주들이 이익을 늘리기 위해 원가 절감 경쟁을 벌일 때 그 피해자는 이주노동자뿐 아니라 비정규직이나 국내의 저임금 노동자가 된다. 이주 노동자들이 동등하게 대우받도록 보장함으로써 모든 노동자를 보호할 수 있다는 것이다.
4.2. 한국사회와 이주노동자 인권
한국 사회도 이주노동자 도입에 대한 본격적인 논의를 앞두고 있다. 최근 서울시장의 ‘저임금 외국인 가사도우미’ 안이나 법무부 장관의 ‘외국인청 설립’ 안 등은 내용은 어떻든 인구감소와 산업 종사자 개편을 앞두고 이주노동자 도입이 필수적이라는 추세의 반영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다른 나라에서 이미 많은 문제를 일으켰고 개선을 거친 과거의 이주노동자 정책을 그대로 답습할 수는 없기에 세계의 시행착오를 검증할 필요가 있다.
가장 먼저 검토, 개선되어야 할 제도는 노동계약과 체류허가 문제이다. 카타르 실태가 국내에 보도됐을 때 국내 언론들은 노예계약을 가능하게 하는 카팔라 시스템 등에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지만 우리나라의 고용허가제 또한 카팔라 시스템과 같은 원리로 작동하는 이주노동자에 대한 차별적 제도라는 지적을 받아온 것 역시 사실이다.
고용허가제는 이주 노동자가 사업장을 변경할 경우 사업주 허락을 받아야만 가능하게 함으로써 구직·선택 및 이동의 자유를 제한하고 있다. 카타르에서 열사병과 산업재해로 숨진 노동자들 이야기가 세계적 이슈가 됐지만 한국서도 2020년 경기도 포천에서 한겨울 비닐하우스에서 자다 동사한 것으로 추정되는 캄보디아 출신 여성 이주노동자가 있었다. 그뒤 정부는 이주노동자 주거개선대책을 내놨지만 지방자치단체 외면으로 2021년 1월 기준 농어업 이주노동자 99%가 사업주가 제공한 숙소에 거주하는데 이 가운데 69.6%가 가설 건축물에 거주하는 것으로 집계됐다.(각주6)
또 최저임금 이하의 외국 가사도우미를 데려와 출산율을 높이겠다는 정책 또한 제도적으로 임금을 차별화하려는 것으로 실현되기 어렵겠지만 혹시 된다고 하더라고 국제사회의 비판을 면키 어려워 보인다. 수백년의 역사를 가진 이주노동자 관리 정책에서 각국은 처음에는 해고, 통제가 손쉬운 인력, 저임금 인력이라는 발상으로 제도를 도입하려는 경향이 높았지만 이러한 착취 구조는 지속 가능하지 않다는 것이 드러나고 있다. 이미 걸프 지역에서조차 작은 변화가 있었고 이주노동이 세계화되면 될 수록 결코 과거와 같은 방식으로 유지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세계 민주인권을 보는 8개의 시선] 세계 곳곳에서 다양한 형태로 벌어지는 '민주주의와 인권 위기'를 목도하며 8명의 필자가 고민과 성찰을 나눕니다.
글 : 남은주 (전 한겨레신문사 기자, 현재 베를린에서 사회복지학을 공부하며 기고 및 번역 작업을 하고 있다)
* 해당 원고의 의견은 필자 개인의 의견으로, 민주인권기념관의 공식 의견과는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각주5. https://www.migrationdataportal.org/blog/irregular-migrant-workers-eu-and-us
각주6. 고용노동부 <이주노동자 주거실태 조사>. https://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1022773.html 에서 재인용
3. 만성적인 차별, 바꿀 수 있을까?
3.1 사례1_독일 축산업 : 도착국가의 각성과 변화
이주노동자에게 국가의 내외부 개념은 사실상 해체된다. 이주노동 환경의 상당부분은 도착국가의 노동권에 대한 인식, 인종차별 개선 등에 좌우된다. 출신국가가 일자리 중개업소를 단속하고 자국 노동자의 인권을 지키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것 만큼 도착국가가 공정노동환경을 조성해야 할 의무가 큰 것이다.
이주노동자 관련 정책 수립을 위해서는 보이지 않는 차별을 철폐하기 위한 독일정부 정책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독일의 경우, ‘동일 노동 동일 임금’ 원칙으로 이주노동자 차별을 금지해왔다. 그러나 이주노동자 40%가 저임금에 종사하는 상황에서는 저임금은 구조적으로 고착화된다. 60%가 저임금인 스위스나 룩셈부르크도 비슷하다. 이들 대부분은 도로건설이나 운송 등 인력이 부족한 산업에서 일자리를 구한다. 지난 팬데믹 때 사회적 화두가 됐던 수확이나 도축장 일자리도 대표적인 이주노동자의 몫이었다.
2020년 6월, 독일에서는 육류회사 퇴니스의 한 도축장에서 무려 1500명이나 되는 직원들이 집단적으로 코로나에 감염됐다. 이들 직원들은 대부분 루마니아나 불가리아 등 동유럽에서 온 이주노동자였다. 그뒤 다른 도축장에서도 집단 발병의 사례가 잇달았다. 감염경로를 추적하는 과정에서 도축노동자들이 처한 노동조건이 이슈가 됐다.
코로나 이전에도 이미 육류산업 맨 밑바닥에 있는 이주노동자에 대한 처우는 사회적 논쟁거리였다. 2014년 육류 산업에도 다른 업종과 동일한 최저임금이 도입됐다가 다시 폐지됐다. 도축장에서도 독일 다른 사업장처럼 하루 10시간 이상 노동금지가 지켜져야 하지만 많은 도축장에서 하루 16시간, 주7일 일하는 경우가 많은 것으로 드러났다. 이주노동자들은 창고같은 곳에서 잠을 자면서 불법 수수료와 높은 숙식비, 교통비 등을 제하고 임금을 받았다.
이런 일이 가능했던 것은 축산업이 하청을 거듭하는 구조인데다가 축산 기업들과 고기값을 저렴하게 유지하고 싶은 정치의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졌기 때문이다. 이주노동자가 대부분인 도축장 노동조건 개선은 독일의 노동법 사각지대에 존재해 왔다. 외국 노동자들을 고용해 도축장과 연결하는 인력회사들은 주로 동유럽에서 노동자들을 무한 공급할 수 있었다. 독일은 세계적인 축산국가지만 이들 축산 가공공장의 직접 고용률은 10% 남짓했다.
퇴니스 사태와 축산업 확장을 반대하는 녹색당의 목소리가 커지면서 도축장은 구조개선에 들어갔다. 2021년 1월자로 독일에서는 도축분야에서 임시직 고용이 금지됐다.(<REPORT Nr.61, Januar 2021 NEUORDNUNG DER ARBEITSBEZIEHUNGEN IN DER FLEISCHINDUSTRIE>) 또 산업안전보건법을 도입, 안전규정 준수 의무를 확인하는 정책이 시행됐다.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지적도 있다. 임시직 고용이 단기 계약직으로 대체됐을 뿐이라는 것이다.
더불어서 이 기회에 이주노동자를 저임금 노동자로 만드는 채용구조부터 바꿔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이주노동자를 저임금노동자로 만드는 공식은 이주 노동자가 출신국가에서 취득한 학력 및 경력을 인정하지 않는 제도들도 한몫한다. 독일에서는 이주노동자가 산업의 맨 밑바닥에 편입되는 구조를 차단하기 위해서 외국에서 취득한 학력 및 경력의 전문성 인정에 대한 제도도 계속 검토되고 있다.
월드컵 개최를 앞두고 카타르에서 막바지 공사중인 노동자들 (출처 : 국제노동기구 홈페이지)
3.2 사례2_걸프, 카팔라는 사라져야 한다
2020년 8월 30일부터 카타르에서 이주 노동자는 고용주 동의서 없이도 노동계약이 끝나기 전 사업장을 옮길 수 있게 되었다. 또 내국인과 같은 최저임금을 받게 됐다. 2022년 카타르 월드컵을 계기로 걸프지역에서 카팔라 제도를 폐지한 첫번째 사례가 나온 것이다. 카타르의 변화는 ‘이주노동자의 무덤’이라고 불리었던 이 지역의 극악한 이주노동 현실을 개선하는 첫발이 되리라는 기대가 높았다.
2021년 3월에는 사우디 아라비아가 카팔라 제도를 대체하는 새로운 이주노동자 관리법을 발표했다. 이 법에 따르면 이주노동자도 일한지 1년이 지나면 고용주 동의가 없어도 후견인을 벗어날 수 있다. 가정집에 고용된 이주노동자는 여전히 고용주 동의를 받아야 하고, 그외에도 고용주가 이주노동자를 통제할 수 있는 독소조항들이 남아 있어 반쪽짜리 폐지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그러나 수 십 년 넘게 견고하던 차별제도에 작은 균열이 보이기 시작한다는 희망 섞인 기대가 높다.
소수가 자연 자원의 대부분을 소유하는 걸프지역 경제 구조에서 카팔라제도는 이주 노동자는 결코 생산수단을 소유할 수 없도록 하는 부의 국내 독점을 가능하게 하는 장치다. 따라서 카팔라 제도 폐지는 기득권들의 강력한 저항에 부딪친다. 인구의 90%가 외국인이며 이주노동자가 경제의 상당부분을 떠받치고 있는 아랍에미리트 경우엔 카팔라 제도를 폐지하는 대신 거주자도 후견인을 맡을 수 있는 자유 경제구역을 확대하는 방법으로 절충을 시도하고 있다.
3.3. 사례3_자발적인 이주 노동 연대들
걸프 지역에서 이러한 변화를 가져온 주체가 누구인지에 대해서 주목할 필요가 있다. 단결권, 단체행동권, 단체 교섭권의 노동3권은 노동자가 자신의 권리를 보장받기 위한 가장 중요한 권리다. 거의 모든 나라에서 자국의 노동자에겐 단결권, 단체행동권, 단체 교섭권의 노동3권을 보장하고 있지만, 많은 나라에서 이주노동자는 철저히 소외된다.
저임금 이주노동자는 개별 사업장이나 사용주에게 종속되어 노동권을 주장하면 신분상 불이익을 받게 되는 불안한 처지에 몰려 있다. 앞서 독일의 도축장 사례에서 도축장에서 임시계약을 금지한 것도 노동자로서 조직을 결성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취지가 크다.
노동조합이 없는 이주노동자들에겐 국제 및 지역 시민단체가 지킴이 역할을 하고 있다. 걸프지역의 경우 노동자의 권리침해 실태를 알리고 노동조건 개선을 위한 싸움에서 휴먼라이츠 워치나 국제 앰네스트같은 국제적 인권단체뿐 아니라 출신국가의 노동자들이나 지역 인권단체들의 역할은 점점 더 커지고 있다.
2007년에 창설된 마이그란츠-라이츠는 걸프지역 국가들에 흩어져 있던 작은 단체들의 목소리를 모아 이주노동자의 인권실태를 세계로 알리는 역할을 해왔다. 또 여러 악법 개정 상황과 이주노동자 상황에 대한 전체 통계를 제공한다.
2023년 1월 현재 마이그란츠-라이츠는 걸프 지역 주요 이주노동자 출신국가와 도착국가에서 활동하는 54개 시민단체의 주소가 나와 있다. 한 단체가 사라지면 또 다른 단체가 생겨난다. 마이그란트 포럼 아시아는 아시아 이주 노동자와 관련된 문제를 이슈화해왔다. 인도에 기반을 둔 국제 인권변호사 협회는 인도 출신 이주노동자 권리 보호를 위한 캠페인을 벌인다.
2003년에는 필리핀 이주노동자 조직의 동맹이 마이그란테 인터내셔널의 아랍에미리트 지부가 창설됐다. 바레인에는 인권센터와 이주 노동자 보호협회가 있다. 인도와 필리핀은 이미 19세기 무렵부터 걸프 지역과의 교류를 통한 이주노동자 파견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노동자들이 해외에서 당하는 노동권, 인권침해에 대해서는 적극적으로 대처해오지 못했던 것으로 평가된다.
이들 조직은 서로 다른 문화적 배경을 지닌 노동자들의 자발적 조직인 동시에 이주노동자 연대의 시작이 된다. 지난 수십년 동안 이들 단체가 노동 조건, 인권 침해, 인구 통계 및 이동을 조사해 온 결과 국제 노동기구 등에 이주 노동자 보호를 목표로 하는 정책을 모니터링, 조사, 보고 및 건의하여 정책을 생산할 수 있었던 것이다.
걸프지역 이주노동자 학대 지도를 그려온 마이그란트 라이츠 홈페이지. 산업재해, 사망, 성폭력 등의 건수가 표시되어 있다.
4. 맺으며 : 이주노동자 인권의 현재와 미래
4.1. 만국 도축장의 노동자여, 단결하라
팬데믹 기간 동안 많은 나라에서 이주노동자는 임금체불과 강제 출국 등의 위기에 직면했다. 그러나 한편으론 이주노동의 발길이 끊기면서 많은 나라에서 기초 산업에서 심각한 인력부족을 겪기도 했다. 앞으로는 한국을 비롯한 많은 나라에서 이주노동자를 적극적으로 받기 위한 정책이 확대되겠지만 이러한 정책은 항상 우선 자국 노동자의 반대에 부딪친다.
독일 사회서비스노조 연합인 베르디의 한 간부는 인터뷰에서 “더 많은 이주노동자를 데려오기 위한 법개정에 찬성하지 않는다. 독일 노동자들을 잘 교육시켜 좋은 일자리를 제공하고 이주노동자는 인력이 모자라는 부분에 배치하라”고 했다. 이주노동자 보호에 선진적인 것으로 알려진 독일에서도 이주노동자들이 자국 노동자의 일자리를 위협한다는 반대를 넘어서는 것은 큰 어려움이다. 그러나 이주노동자가 다수인 산업을 개혁하지 않는다면 자국의 저임금 노동자들도 그 피해를 지는 것은 마찬가지다.
2022년 7월 미국 일리노이주 한 도축장에서 노동자가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22살의 가르시아는 육가공뒤 버려진 부속품들이 썩어서 나온 메탄가스로 가득찬 작업장에서 비틀거리며 걸어나가다가 감전사를 당했다. 가르시아의 죽음을 통해 이 공장에서는 지난해만도 4명의 노동자가 이미 사고로 죽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미국에서도 도축산업은 대부분 이주노동자들이 일하고 열악한 노동조건과 위법적인 운영에도 단속의 사각지대에 있다. 다수의 이주노동자와 소수 미국인 노동자가 3교대로 쉬지 않고 돌리는 공장에서 누구도 안전하지 못했던 것이다.
지난해 2월 단속에 적발된 네덜란드의 한 도축장의 사례도 생각해볼만하다. 독일에서 산업안전보건법이 시행되자 이제 사업자들은 동유럽 이주노동자들을 모아 독일에서 숙식시키고 바로 근처의 네덜란드의 공장에서 일을 시키는 방식으로 법망을 피해가고 있었다. 보도에 따르면 독일에 있는 이들의 숙소에는 곰팡이와 벌레가 들끓고 있었으며 네덜란드 작업장에서는 초과근무가 여전했다고 한다.
도축장 사례는 이주노동자의 노동권을 지키는 것이 국내 노동자의 노동에도 도움이 되며 동시에 이주노동자의 노동권 보호는 한 국가만으로는 부족하고 세계적으로 시행되어야 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주 노동자 권리 단체들의 주장은 이렇다. “대부분의 정부는 취약계층이나 저임금 노동자를 이주 노동자자의 "불공정한" 경쟁(이주노동자들이 저임금이라는 의미에서)으로부터 보호하려고 한다. 그러나 이주노동자에게 노동법을 보장하지 않는 것은 그 사업 전체 노동자들의 피해로 돌아간다. 자국 노동자를 보호하는 최선의 방법은 그 사업을 구조적으로 개선하고 탈법을 막아 이주노동자를 보호하는 것”이라고 반박한다. (각주5)
고용주들이 이익을 늘리기 위해 원가 절감 경쟁을 벌일 때 그 피해자는 이주노동자뿐 아니라 비정규직이나 국내의 저임금 노동자가 된다. 이주 노동자들이 동등하게 대우받도록 보장함으로써 모든 노동자를 보호할 수 있다는 것이다.
4.2. 한국사회와 이주노동자 인권
한국 사회도 이주노동자 도입에 대한 본격적인 논의를 앞두고 있다. 최근 서울시장의 ‘저임금 외국인 가사도우미’ 안이나 법무부 장관의 ‘외국인청 설립’ 안 등은 내용은 어떻든 인구감소와 산업 종사자 개편을 앞두고 이주노동자 도입이 필수적이라는 추세의 반영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다른 나라에서 이미 많은 문제를 일으켰고 개선을 거친 과거의 이주노동자 정책을 그대로 답습할 수는 없기에 세계의 시행착오를 검증할 필요가 있다.
가장 먼저 검토, 개선되어야 할 제도는 노동계약과 체류허가 문제이다. 카타르 실태가 국내에 보도됐을 때 국내 언론들은 노예계약을 가능하게 하는 카팔라 시스템 등에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지만 우리나라의 고용허가제 또한 카팔라 시스템과 같은 원리로 작동하는 이주노동자에 대한 차별적 제도라는 지적을 받아온 것 역시 사실이다.
고용허가제는 이주 노동자가 사업장을 변경할 경우 사업주 허락을 받아야만 가능하게 함으로써 구직·선택 및 이동의 자유를 제한하고 있다. 카타르에서 열사병과 산업재해로 숨진 노동자들 이야기가 세계적 이슈가 됐지만 한국서도 2020년 경기도 포천에서 한겨울 비닐하우스에서 자다 동사한 것으로 추정되는 캄보디아 출신 여성 이주노동자가 있었다. 그뒤 정부는 이주노동자 주거개선대책을 내놨지만 지방자치단체 외면으로 2021년 1월 기준 농어업 이주노동자 99%가 사업주가 제공한 숙소에 거주하는데 이 가운데 69.6%가 가설 건축물에 거주하는 것으로 집계됐다.(각주6)
또 최저임금 이하의 외국 가사도우미를 데려와 출산율을 높이겠다는 정책 또한 제도적으로 임금을 차별화하려는 것으로 실현되기 어렵겠지만 혹시 된다고 하더라고 국제사회의 비판을 면키 어려워 보인다. 수백년의 역사를 가진 이주노동자 관리 정책에서 각국은 처음에는 해고, 통제가 손쉬운 인력, 저임금 인력이라는 발상으로 제도를 도입하려는 경향이 높았지만 이러한 착취 구조는 지속 가능하지 않다는 것이 드러나고 있다. 이미 걸프 지역에서조차 작은 변화가 있었고 이주노동이 세계화되면 될 수록 결코 과거와 같은 방식으로 유지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세계 민주인권을 보는 8개의 시선] 세계 곳곳에서 다양한 형태로 벌어지는 '민주주의와 인권 위기'를 목도하며 8명의 필자가 고민과 성찰을 나눕니다.
글 : 남은주 (전 한겨레신문사 기자, 현재 베를린에서 사회복지학을 공부하며 기고 및 번역 작업을 하고 있다)
* 해당 원고의 의견은 필자 개인의 의견으로, 민주인권기념관의 공식 의견과는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각주5. https://www.migrationdataportal.org/blog/irregular-migrant-workers-eu-and-us
각주6. 고용노동부 <이주노동자 주거실태 조사>. https://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1022773.html 에서 재인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