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한 신원의 생산_'위험한 사람'을 판별한 권력은 누구에게 주어져 있는가?
피스보트의 배 위로 국경과 안보의 역할이 이관되듯, 안전과 안보의 경계는 끊임없이 신체화되고 지역화되어 안전과 안보가 필요하다고 여겨지는 공간이면 어디든 좋은 국적과 나쁜 국적, 좋은 여행자와 나쁜 여행자를 가려내는 경계의 시스템을 작동시킨다. 그것은 국경을 넘어 지역과 지역, 한 국가가 안전과 보안이 필요하다고 판단되는 곳이면 어디서든 작동하기 시작한다. 이스라엘 팔레스타인 여행을 준비하는 사람들이라면 공항 검색대와 출입국 심사대를 통과한 후에도 ‘위험한’ 지역인 팔레스타인 영역에 들어가는 분리 장벽을 통과하기 위해 다시 한번 검색과 생체 건문을 통과해야 한다. 분리 장벽을 통과하기 위해 여행자가 거쳐야 하는 베들레헴 출입절차는 공항 출입국 심사대보다 더 강화된 것이다. 몸에 있는 모든 금속과 소지품들은 금속 탐지기를 투과해야 하는 것은 물론 전자여권을 제출하고, 열 손가락 모두를 지문 검색대에 날인해 생체계측 여권 정보와 대조를 거쳐야 한다.
팔레스타인-이스라일 국경지대
문제는 일생에 한두 번 그 장벽을 통과해야 하는 여행자들의 불편과 불쾌함이 아니었다. 그 검문소를 통과해야 하는 사람들은 여행자만이 아니라 매일 베들레헴과 예루살렘을 오가야 하는 팔레스타인 노동자들, 장벽 너머 자신의 올리브밭에 농사를 위해 오가야 하는 농부들, 큰 병원에 가려면 장벽을 통과해야 하는 팔레스타인 여성과 노인들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 그 검색대 앞에서“내가 누구인지”를 말할 수 있는 기회는 주어지지 않는다. 이스라엘이 분류한 기준표에 따라 ‘위험한’, 혹은 ‘위험하지 않은’이라는 판독만이 작동할 뿐이다. 만약 최근 테러에 그들의 가까운 지인 중 누구 하나라도 연루되었다면, 그곳에서 구금 체포 감금으로 이어질 수도 있는 통제와 감시의 공간인 것이다.
푸코에 의하면 ‘국가의 경계’는 법률적 차원에서 늘 ‘예외의 공간'이었다. 잘못된 일을 전혀 한 적이 없는 사람이라도 국경을 건널 때문 자동적으로 용의자가 된다. 사람들은 국경을 통과할 때마다 자신의 결백함을 입증해야 하기에 영원한 용의자의 위치에 있음을 깨닫게 된다.(각주14) 9.11테러를 겪은 미국이 전 세계의 수교 국가들에 전자 여권제도 도입을 요청하며 이제 ’내가 누구인지‘에 대한 결백의 증명은 인간의 신체로부터 추출되기에 신체는 새로운 여권, 신분증, 패스워드가 되어 버렸다. 점령자 이스라엘이 지각하는‘위험’은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일상의 공간을 ‘예외의 공간’으로 만들고, 그들의 장소에 장벽을 쌓아 국경을 부과했다. 매일의 일상 속에서 그들은 국경을 넘으며 용의자가 되고, 그들의 신원은 이스라엘에 의해서만 ‘안전’을 획득할 수 있다.
(좌) 예루살렘에서 베들레헴에 들어가기 위해 통과해야 하는 분리 장벽 / (우) 베들레헴의 삼엄한 보안검색 체크포인트
여행할 권리 Vs. 여행을 금지할 권리
더욱이 이 ‘안전’은 이스라엘 정부가 관광진흥을 위해 힘주어 강조해 온 항목이다. 2020년 초 이스라엘은 역사적으로 500만 번째 관광객을 맞이할 준비를 대대적으로 진행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 꿈은 코로나로 인해 지연되었다. 코로나 이후 이스라엘이 다시 안전을 이슈로 뉴스에 오른 것은 전 세계 백신 접종률 1위를 차지하면서였다. 코로나도 통제 가능한 ‘안전한’ 이스라엘, 그것은 이스라엘 관광 붐을 회복하는데 필수적인 요소였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은 가자 지구에 수천 명이 죽어가는 폭격이 진행되고 있는 순간에도 관광객의 입국을 차단하거나 항공기의 도착을 막은 적이 없었다. 이스라엘 대사관에 문의하면 그들의 대답은 한결같았다. “이스라엘은 안전합니다”(각주15) 그만큼 관광은 이스라엘에 중요한 산업이었기 때문이다.
이스라엘 관광청에 따르면 관광은 IT 산업과 다이아몬드 세공 다음으로 국가의 주요한 산업을 차지하고 있었다. 그것은 동시에 이스라엘뿐 아니라 실업률 26%에 달하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도 중요한 산업이자 엄청난 기회였다. 그러나 분리 장벽이 설치되고 자유로운 이동의 권리를 빼앗긴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 관광은 동일한 기회가 되어 주었을까?
이스라엘 관광 붐, 그것은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 무엇이었을까?
팔레스타인 자치 정부에 의하면 이스라엘 관광객 500만 명 중 400만 명이 팔레스타인 자치 영토인 서안지구를 방문하고 그중 66%가 베들레헴을 찾았다. 이스라엘을 찾는 성지순례 여행자들이 가고 싶어 하는 대부분의 관광지가 팔레스타인 자치지구인 서안 지역에 분포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2016년 6월 12일,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알자지라 방송(Aljazeera)은 통해 충격적인 소식을 접했다. 알자지라는 “관광 지도에서 팔레스타인 지워버린 이스라엘”이란 제목으로 이스라엘 관광청이 팔레스타인 관광정보를 삭제해왔음을 보도했다.(각주16)
2017년 12월 팔레스타인 자치 정부가 발간한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관광 착취와 국제 공모-점령을 정당화하는 수단으로서의 관광”보고서에 의하면 베들레헴엔 연간 하루 평균 3500여 명의 관광객이 방문하고 있다. 베들레헴의 호텔 객실 수가 3900개나 되지만 크리스마스 성수기를 제외한 연중 평균 숙박객은 전체 수용 능력의 절반에도 못 미치고 있다. 가장 큰 이유는 관광객의 95% 이상이 이스라엘 패키지여행사를 통해 베들레헴을 방문하고, ‘위험한’ 베들레헴 대신 10킬로 남짓한 거리의 ‘안전한’ 예루살렘에서 숙박할 것을 권유받기 때문이다.(각주17) 그 결과 베들레헴의 주요 호텔 객실은 텅 비기 시작하고, 300개가 넘던 식당들 대부분이 문을 닫고 남은 것은 30개 남짓. 이것이 서안지구를 찾은 관광객 66%가 방문했다는 베들레헴 관광의 현실이었다.
팔레스타인의 관광을 고사시켜 가는 이스라엘의 고립정책에 대해 팔레스타인 대안여행그룹의 활동가들은 목소리 높여 비판했다. “이스라엘의 관광붐, 그것이 대체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 무엇이란 말인가? 400만 명이 넘는 관광객들이 팔레스타인에 남기고 가는 것은 무엇인가? 그들이 만나고 가는 팔레스타인은 누구의 팔레스타인인가?”
(좌)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는 허용되지 않는 관광객 픽업과 이동의 자유 / (우) 이스라엘의 관광붐
ATG에 의하면 이스라엘 정부는 이스라엘 측 버스는 서안 지역을 자유롭게 오가도록 하면서 반대로 팔레스타인 여행사들의 버스가 예루살렘이나 이스라엘 지역으로 들어가 관광객들을 픽업하는 것을 원천적으로 금지하고 있다. 위험과 안전, 안보를 이유로 팔레스타인 관광 가이드가 사람들을 만나는 것이 근원적으로 차단되는 상태에서 어떻게 팔레스타인의 여행 산업이 지속될 수 있다는 것인가? 그들은 누군가의 안전한 여행을 위해 누군가의 이동권이 제약되는 불공정한 현실에 대해 근원적 질문을 던지고 있다.(각주18) 그것은 단지 이동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었다. 모든 관광에 관한 허가권을 틀어쥔 이스라엘 정부는 가이드에 대한 허가권을 통제하는 것을 통해서도 팔레스타인에 의한 관광을 옥죄고 있다. 이스라엘에서 최초로 가이드 자격을 취득한 한국인 이강인 박사에 의하면 이스라엘 정부가 허가하는 관광 가이드 자격을 취득하기 위해서는 2년간의 교육, 약 7천 달러의 비용이 필요하다.
정부 자격증 없이 불법으로 가이드로 활동하다 적발되면 엄격한 조치가 취해진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 그것이 과연 획득 가능한 자격이었을까? 이스라엘 가이드와 함께 이스라엘 관광버스를 타고 세계의 사람들이 베들레헴을 관광하는 동안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자신들의 땅과 문화를 보러 온 관광객에게 구경당하는 존재로 삶을 전시해야 했다. 관광객들에게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그 땅의 주인으로 현상되지 않으며, 도리어 위험한 신체로 간주된다. 나고 자란 땅과 문화에 대해 ‘우리’를 주어서 서사할 권리를 빼앗긴 채 도시와 마을이 관광지화 되어 가는 과정에서 타자화되며, 서서히 자신들의 장소를 빼앗기고 있는 것이었다. 위험한 존재로 끊임없이 호명당하며 서서히 뿌리 뽑혀가는 삶을 버텨내야 하는 곳, 그곳이 그들의 오랜 고향, 평화의 도성 베들레헴이었다.
"자기가 누구인지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자기뿐이다."
인류학자 김현경은 사람이 노예가 되는 경로를 두 가지로 압축했다. “하나는 자기가 태어난 사회에서 처음부터 성원권을 얻지 못했거나 어떤 계기로 성원권을 상실하는 것, 다른 하나는 아웃사이더로서 다른 사회에 억류되는 것. 전자의 경우 노예의 신분은 자리 없음과 그에 따른 무권리 상태의 결과로 나타난다.”(각주19) 그 경로를 따라가 보면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어쩌면 자신들의 자리를 끊임없이 빼앗기며 아웃사이더로 자신들의 사회에서 억류되어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자리 없음’과 ‘무권리’를 끊임없이 확인당하며, 자기가 누구인지 말할 수 있는 권리를 빼앗긴 무권리자의 삶을 감당하고 있는 것일지도...
그러나 팔레스타인 활동가들은 그 장벽 앞에 무력하게 주저앉아 메시야를 기다리지 않았다. 그들은 그 거대한 장벽과 삼엄한 경계에 숨구멍을 내는 수단으로 다시 여행을 선택했다. “우리가 저 장벽을 넘을 수 없다면 장벽을 넘어 우리에게 오는 사람들에게 우리의 시선으로 베들레헴을 이야기하자”고 뜻을 세우고 대안 관광그룹을 조직했다. 베들레헴 들판에서 양 대신 관광객을 이끌며, 돌맹이 대신 지도를 들고 팔레스타인의 오랜 서사를, 지금도 계속되는 수난을, 올리브 숲의 아름다움을 이야기하며 장벽을 넘어오는 세계를 향해 자신들의 이야기를 전하고, 그 땅에 뿌리내리며 살아갈 힘을 얻는 정의로운 관광의 길을 열어가고 있다. 무엇보다 이 관광은 관광지화 과정으로 인한 젠트리피케이션으로 인해 이곳에서의 삶이 뿌리째 뽑혀나가는 경제적 점령에 저항하는 수단이자 지속가능한 삶을 가능하게 하는 대안이었다.
팔레스타인 대안관광그룹(Alternative Tourism, ATG)은 전 세계의 교회와 엔지오, 지속가능한 관광회사들과 끊임없이 연대와 연결을 확장해 가고 있다. 동시에 ATG를 주도해 온 활동가들은 이스라엘 관광붐 속에서 작동하는 ‘위험’의 서사와 그로 인한 배제를 예리하게 분석하고 비판하며, 동시에 자신들이 선 자리에서 대안을 만들어 가고 있다. 한국에서 YMCA가 올리브 추수여행과 올리브 나무심기 캠페인으로, 아이쿱 생협과 두레생협이 민중교역을 통해 올리브 오일과 아몬드를 공정무역상품으로 개발해 팔레스타인의 땅과 숲을, 그들의 저항과 대안을 일구어가는 걸음에 함께 연대해 가고 있다.(각주20)
팔레스타인 대안관광그룹(Alternative Tourism, ATG)의 호소
정의와 평화가 서로 입 맞출 때까지
이스라엘 정부에게 이스라엘/팔레스타인은 ‘안전한 관광지’여야 했다. 그러나 그 이전에 먼저 그 땅의 주인인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 먼저‘안전한’ 삶의 장소여야 한다. 팔레스타인에서 펼쳐지는 관광지화 과정에서 일어나는 관광개발의 이면은 모양과 규모는 다르지만 세계의 곳곳에서 펼쳐지는 관광개발이라는 이름이 만들어 내는 점령의 경관이었다. 2018년 세계 관광의 날, 오버 투어리즘으로 인해 정주권을 위협당하는 베네치아 주민들이 개최한 국제 민중 법정의 피고는 ‘관광’이었다. 관광개발이라는 미명으로 주민들을 삶의 자리에서 뿌리 뽑아내는 관광 자본과 관광 진흥을 위해 이를 적극적으로 지원하거나 결탁한 정부들을 베네치아와 세계 시민사회는 주거권의 이름으로 법정에 세웠다.
다국적 자본과 국부가 손을 잡고 리조트 개발과 관광 인프라 구축을 위해 어촌의 원주민들을 폭력적으로 강제소개하는 스리랑카, 도로와 철길, 관광을 위한 인프라 조성을 위해 주민들을 강제동원하고 땅과 집을 강제 수용하는 버마의 군부, 초원에 묻힌 지하자원 채굴과 경제 활성화를 위한 관광개발을 위해 유목민들의 초지를 빼앗고 유목을 금하는 몽골 정부, 몰려드는 사파리 관광수요를 수용하기 위해 더 많은 보호구역을 설정하고 그곳에서 수천 년간 사냥과 방목으로 살아오던 원주민들을 몰아내는 관광 자본, 사파리 관광을 위해 5000마리가 넘는 물소 떼를 사살하고, 그를 지키려는 마사이족을 살해하는 일도 주저하지 않는 정부... 자본이 관광의 경관을 위해 보여주고 싶은 보여주고 싶은 것들만 남기는 선택과 배재를 통해 사라져가고 절멸해 가는 것들의 권리와 생명이 베네치아 국제 법정에서 이틀간 세계를 향해 증언되고 고발되었다.(각주21)
여행, 보여지지 않는 것을 보는 일
관광이 보여주는 것을 보는 일이라면, 여행은 보이지 않는 것을 발견하는 일이다. 코로나 이후 다시 여행을 시작하는 세계, 우리가 다시 시작하는 여행은 어떤 것이어야 할까.‘안전’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한 이슈가 된 지구 위에서, 혹 내 여행의 권리를 위해 누군가 삶의 권리를 빼앗기고 있는 것은 아니었는지, 나의 ‘안전’을 위해 누군가의 위험한 존재로 내몰리고 있는 것은 아니었을지, 내가 도착할 장소를 위해 누군가 삶의 장소를 빼앗기고 있는 것은 아니었을지…….
나의 여행과 잇닿은 물음들을 좀 더 멀고 깊은 곳까지 밀어가 본다. 우리에게 현상되지 않지만 엄연히 존재하는 ‘장소에 갇힌 사람들(각주22)‘, ‘자신이 신원을 증명할 수 없는 사람들’. ‘비인간 존재들’과 연결된 생명의 감각을 회복하지 못한다면 우리가 소중히 일구어 온 인권의 가치는 부지 중 누군가의 인권을 유린하는 도구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인류학자 김현경은 저서 “사람, 장소, 환대”에서 ‘절대적 환대에 기초한 사회’를 만들어 갈 수 있는 조건을 ‘신원을 묻지 않는 환대’에서 찾았다. 그의 표현을 빌면 “사회란 본디 절대적 환대를 통해 성립해야 한다. 절대적 환대가 불가능하다면 사회 역시 불가능할 것이다. 신원을 묻지 않는 환대는 현대사회의 기본적인 작동원리이다. 우리는 이것을 세 가지 층위에서 확인한다.
첫째, 모든 인간 생명은 출생과 더불어 사람이 된다. 둘째, 공적 공간에서 모든 사람은 의례적으로 평등하다. 셋째, 자기가 누구인지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자기뿐이다(정체 서사의 최종 편집권은 당사자에게 있다)”고 결론짓는다. 책을 덮으며 그 글의 마지막 문장에 깊은 밑줄을 긋는다. “자기가 누구인지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자기뿐이다”(각주23)라는 한 문장에 가 닿는 것은 얼마나 멀고 아득한 여행인지 가늠해 본다.
나가는 글 : 세상의 경계를 건너는 여행
팔레스타인에서, 태국-미얀마 국경지대에서, 레바논과 이라크의 난민캠프에서 마주했던 수많은 사람들… ‘국가’의 틀을 벗어나 ‘국민’의 자리를 상실한 ‘위험’한 존재들, ‘우리’가 되지 못한 존재들, 국경을 넘어서며 자동적으로 용의자가 되어야 하는 나쁜 국가의 ‘위험한’ 신체들, 내가 누구인지 나의 서사로 나를 입증할 수 없는 ‘무권리’의 존재들… 평화 활동가라는 이름으로 도착했던 수많은 분쟁지역에서, 국경지대에서, 난민캠프에서, 터전을 빼앗기고 삶이 뿌리 뽑히는 사람들의 마을에서 그들이 내게 베풀어 주었던 환대에 이름이 있다면 그것이 ‘신원을 묻지 않는 환대’ 아니었을까.
여행이 관광이 될 때 드리우는 그 깊은 그늘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국경을 넘고 새로운 여행을 꿈꾸는 근원은 그 환대를 주고받으며 함께 만들어 간 ‘우리’의 서사가 기억의 공동체를 일구어 간다고 믿기 때문이다. 코로나가 풀리고 다시 여행이 시작되는 세계, 우리의 여행이 넘을 수 없는 경계를 넘어 환대의 공동체를 연결해 가는 평화의 여정이 되기를 소망해 본다.
[세계 민주인권을 보는 8개의 시선] 세계 곳곳에서 다양한 형태로 벌어지는 '민주주의와 인권 위기'를 목도하며 8명의 필자가 고민과 성찰을 나눕니다.
글 : 임영신 (#이매진피스, <희망을 여행하라> 저자)
* 해당 원고의 의견은 필자 개인의 의견으로, 민주인권기념관의 공식 의견과는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각주14. 미셸 푸코, 이상길 역, 헤테로토피아, 2014, 문학과 지성사
각주15. 임영신, 이혜영 외 희망을 여행하라, 2018 개정판, 소나무 출판사
각주16. 중앙일보 2016.06.13.자 보도: https://www.joongang.co.kr/article/20164096
이스라엘 측은 팔레스타인 지역의 역사적인 주요 관광 정보들을 삭제시키고 이스라엘 회당, 정착촌 등을 일방적인 정보들을 등제한 지도를 제작, 배포해 엄청난 분노를 일으켰다. 이 한 장의 지도(각주16의 기사 중 사진 참조)는 이스라엘이 어떻게 자신들의 국가에서 팔레스타인을 배제시키기를 원하며 그것은 얼마나 체계적으로 이루어져 온 일인지를 상징적으로 드러낸 사건이었다.
각주17. 조일준, 2018.12.23, 한겨레
각주18. Fred Schlock, ‘이스라엘 관광 붐, 그것이 팔레스타인에게 무엇이란 말인가?’
각주19. 김현경, “사람, 장소, 환대”, 2015, 문학과 지성사
각주20. www.toursinenglish.com
각주21. 이매진피스, 2018.10.29, 베네치아 국제법정, 관광에 의해 쫓겨나는 사람들의 증언 청취
각주22. 도린매시, “공간, 장소, 젠더”, 정현주 옮김, p.267
각주23. 김현경, “사람, 장소, 환대”, 2015, 문학과 지성사, p.209
안전한 신원의 생산_'위험한 사람'을 판별한 권력은 누구에게 주어져 있는가?
피스보트의 배 위로 국경과 안보의 역할이 이관되듯, 안전과 안보의 경계는 끊임없이 신체화되고 지역화되어 안전과 안보가 필요하다고 여겨지는 공간이면 어디든 좋은 국적과 나쁜 국적, 좋은 여행자와 나쁜 여행자를 가려내는 경계의 시스템을 작동시킨다. 그것은 국경을 넘어 지역과 지역, 한 국가가 안전과 보안이 필요하다고 판단되는 곳이면 어디서든 작동하기 시작한다. 이스라엘 팔레스타인 여행을 준비하는 사람들이라면 공항 검색대와 출입국 심사대를 통과한 후에도 ‘위험한’ 지역인 팔레스타인 영역에 들어가는 분리 장벽을 통과하기 위해 다시 한번 검색과 생체 건문을 통과해야 한다. 분리 장벽을 통과하기 위해 여행자가 거쳐야 하는 베들레헴 출입절차는 공항 출입국 심사대보다 더 강화된 것이다. 몸에 있는 모든 금속과 소지품들은 금속 탐지기를 투과해야 하는 것은 물론 전자여권을 제출하고, 열 손가락 모두를 지문 검색대에 날인해 생체계측 여권 정보와 대조를 거쳐야 한다.
팔레스타인-이스라일 국경지대
문제는 일생에 한두 번 그 장벽을 통과해야 하는 여행자들의 불편과 불쾌함이 아니었다. 그 검문소를 통과해야 하는 사람들은 여행자만이 아니라 매일 베들레헴과 예루살렘을 오가야 하는 팔레스타인 노동자들, 장벽 너머 자신의 올리브밭에 농사를 위해 오가야 하는 농부들, 큰 병원에 가려면 장벽을 통과해야 하는 팔레스타인 여성과 노인들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 그 검색대 앞에서“내가 누구인지”를 말할 수 있는 기회는 주어지지 않는다. 이스라엘이 분류한 기준표에 따라 ‘위험한’, 혹은 ‘위험하지 않은’이라는 판독만이 작동할 뿐이다. 만약 최근 테러에 그들의 가까운 지인 중 누구 하나라도 연루되었다면, 그곳에서 구금 체포 감금으로 이어질 수도 있는 통제와 감시의 공간인 것이다.
푸코에 의하면 ‘국가의 경계’는 법률적 차원에서 늘 ‘예외의 공간'이었다. 잘못된 일을 전혀 한 적이 없는 사람이라도 국경을 건널 때문 자동적으로 용의자가 된다. 사람들은 국경을 통과할 때마다 자신의 결백함을 입증해야 하기에 영원한 용의자의 위치에 있음을 깨닫게 된다.(각주14) 9.11테러를 겪은 미국이 전 세계의 수교 국가들에 전자 여권제도 도입을 요청하며 이제 ’내가 누구인지‘에 대한 결백의 증명은 인간의 신체로부터 추출되기에 신체는 새로운 여권, 신분증, 패스워드가 되어 버렸다. 점령자 이스라엘이 지각하는‘위험’은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일상의 공간을 ‘예외의 공간’으로 만들고, 그들의 장소에 장벽을 쌓아 국경을 부과했다. 매일의 일상 속에서 그들은 국경을 넘으며 용의자가 되고, 그들의 신원은 이스라엘에 의해서만 ‘안전’을 획득할 수 있다.
(좌) 예루살렘에서 베들레헴에 들어가기 위해 통과해야 하는 분리 장벽 / (우) 베들레헴의 삼엄한 보안검색 체크포인트
여행할 권리 Vs. 여행을 금지할 권리
더욱이 이 ‘안전’은 이스라엘 정부가 관광진흥을 위해 힘주어 강조해 온 항목이다. 2020년 초 이스라엘은 역사적으로 500만 번째 관광객을 맞이할 준비를 대대적으로 진행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 꿈은 코로나로 인해 지연되었다. 코로나 이후 이스라엘이 다시 안전을 이슈로 뉴스에 오른 것은 전 세계 백신 접종률 1위를 차지하면서였다. 코로나도 통제 가능한 ‘안전한’ 이스라엘, 그것은 이스라엘 관광 붐을 회복하는데 필수적인 요소였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은 가자 지구에 수천 명이 죽어가는 폭격이 진행되고 있는 순간에도 관광객의 입국을 차단하거나 항공기의 도착을 막은 적이 없었다. 이스라엘 대사관에 문의하면 그들의 대답은 한결같았다. “이스라엘은 안전합니다”(각주15) 그만큼 관광은 이스라엘에 중요한 산업이었기 때문이다.
이스라엘 관광청에 따르면 관광은 IT 산업과 다이아몬드 세공 다음으로 국가의 주요한 산업을 차지하고 있었다. 그것은 동시에 이스라엘뿐 아니라 실업률 26%에 달하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도 중요한 산업이자 엄청난 기회였다. 그러나 분리 장벽이 설치되고 자유로운 이동의 권리를 빼앗긴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 관광은 동일한 기회가 되어 주었을까?
이스라엘 관광 붐, 그것은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 무엇이었을까?
팔레스타인 자치 정부에 의하면 이스라엘 관광객 500만 명 중 400만 명이 팔레스타인 자치 영토인 서안지구를 방문하고 그중 66%가 베들레헴을 찾았다. 이스라엘을 찾는 성지순례 여행자들이 가고 싶어 하는 대부분의 관광지가 팔레스타인 자치지구인 서안 지역에 분포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2016년 6월 12일,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알자지라 방송(Aljazeera)은 통해 충격적인 소식을 접했다. 알자지라는 “관광 지도에서 팔레스타인 지워버린 이스라엘”이란 제목으로 이스라엘 관광청이 팔레스타인 관광정보를 삭제해왔음을 보도했다.(각주16)
2017년 12월 팔레스타인 자치 정부가 발간한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관광 착취와 국제 공모-점령을 정당화하는 수단으로서의 관광”보고서에 의하면 베들레헴엔 연간 하루 평균 3500여 명의 관광객이 방문하고 있다. 베들레헴의 호텔 객실 수가 3900개나 되지만 크리스마스 성수기를 제외한 연중 평균 숙박객은 전체 수용 능력의 절반에도 못 미치고 있다. 가장 큰 이유는 관광객의 95% 이상이 이스라엘 패키지여행사를 통해 베들레헴을 방문하고, ‘위험한’ 베들레헴 대신 10킬로 남짓한 거리의 ‘안전한’ 예루살렘에서 숙박할 것을 권유받기 때문이다.(각주17) 그 결과 베들레헴의 주요 호텔 객실은 텅 비기 시작하고, 300개가 넘던 식당들 대부분이 문을 닫고 남은 것은 30개 남짓. 이것이 서안지구를 찾은 관광객 66%가 방문했다는 베들레헴 관광의 현실이었다.
팔레스타인의 관광을 고사시켜 가는 이스라엘의 고립정책에 대해 팔레스타인 대안여행그룹의 활동가들은 목소리 높여 비판했다. “이스라엘의 관광붐, 그것이 대체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 무엇이란 말인가? 400만 명이 넘는 관광객들이 팔레스타인에 남기고 가는 것은 무엇인가? 그들이 만나고 가는 팔레스타인은 누구의 팔레스타인인가?”
(좌)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는 허용되지 않는 관광객 픽업과 이동의 자유 / (우) 이스라엘의 관광붐
ATG에 의하면 이스라엘 정부는 이스라엘 측 버스는 서안 지역을 자유롭게 오가도록 하면서 반대로 팔레스타인 여행사들의 버스가 예루살렘이나 이스라엘 지역으로 들어가 관광객들을 픽업하는 것을 원천적으로 금지하고 있다. 위험과 안전, 안보를 이유로 팔레스타인 관광 가이드가 사람들을 만나는 것이 근원적으로 차단되는 상태에서 어떻게 팔레스타인의 여행 산업이 지속될 수 있다는 것인가? 그들은 누군가의 안전한 여행을 위해 누군가의 이동권이 제약되는 불공정한 현실에 대해 근원적 질문을 던지고 있다.(각주18) 그것은 단지 이동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었다. 모든 관광에 관한 허가권을 틀어쥔 이스라엘 정부는 가이드에 대한 허가권을 통제하는 것을 통해서도 팔레스타인에 의한 관광을 옥죄고 있다. 이스라엘에서 최초로 가이드 자격을 취득한 한국인 이강인 박사에 의하면 이스라엘 정부가 허가하는 관광 가이드 자격을 취득하기 위해서는 2년간의 교육, 약 7천 달러의 비용이 필요하다.
정부 자격증 없이 불법으로 가이드로 활동하다 적발되면 엄격한 조치가 취해진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 그것이 과연 획득 가능한 자격이었을까? 이스라엘 가이드와 함께 이스라엘 관광버스를 타고 세계의 사람들이 베들레헴을 관광하는 동안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자신들의 땅과 문화를 보러 온 관광객에게 구경당하는 존재로 삶을 전시해야 했다. 관광객들에게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그 땅의 주인으로 현상되지 않으며, 도리어 위험한 신체로 간주된다. 나고 자란 땅과 문화에 대해 ‘우리’를 주어서 서사할 권리를 빼앗긴 채 도시와 마을이 관광지화 되어 가는 과정에서 타자화되며, 서서히 자신들의 장소를 빼앗기고 있는 것이었다. 위험한 존재로 끊임없이 호명당하며 서서히 뿌리 뽑혀가는 삶을 버텨내야 하는 곳, 그곳이 그들의 오랜 고향, 평화의 도성 베들레헴이었다.
"자기가 누구인지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자기뿐이다."
인류학자 김현경은 사람이 노예가 되는 경로를 두 가지로 압축했다. “하나는 자기가 태어난 사회에서 처음부터 성원권을 얻지 못했거나 어떤 계기로 성원권을 상실하는 것, 다른 하나는 아웃사이더로서 다른 사회에 억류되는 것. 전자의 경우 노예의 신분은 자리 없음과 그에 따른 무권리 상태의 결과로 나타난다.”(각주19) 그 경로를 따라가 보면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어쩌면 자신들의 자리를 끊임없이 빼앗기며 아웃사이더로 자신들의 사회에서 억류되어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자리 없음’과 ‘무권리’를 끊임없이 확인당하며, 자기가 누구인지 말할 수 있는 권리를 빼앗긴 무권리자의 삶을 감당하고 있는 것일지도...
그러나 팔레스타인 활동가들은 그 장벽 앞에 무력하게 주저앉아 메시야를 기다리지 않았다. 그들은 그 거대한 장벽과 삼엄한 경계에 숨구멍을 내는 수단으로 다시 여행을 선택했다. “우리가 저 장벽을 넘을 수 없다면 장벽을 넘어 우리에게 오는 사람들에게 우리의 시선으로 베들레헴을 이야기하자”고 뜻을 세우고 대안 관광그룹을 조직했다. 베들레헴 들판에서 양 대신 관광객을 이끌며, 돌맹이 대신 지도를 들고 팔레스타인의 오랜 서사를, 지금도 계속되는 수난을, 올리브 숲의 아름다움을 이야기하며 장벽을 넘어오는 세계를 향해 자신들의 이야기를 전하고, 그 땅에 뿌리내리며 살아갈 힘을 얻는 정의로운 관광의 길을 열어가고 있다. 무엇보다 이 관광은 관광지화 과정으로 인한 젠트리피케이션으로 인해 이곳에서의 삶이 뿌리째 뽑혀나가는 경제적 점령에 저항하는 수단이자 지속가능한 삶을 가능하게 하는 대안이었다.
팔레스타인 대안관광그룹(Alternative Tourism, ATG)은 전 세계의 교회와 엔지오, 지속가능한 관광회사들과 끊임없이 연대와 연결을 확장해 가고 있다. 동시에 ATG를 주도해 온 활동가들은 이스라엘 관광붐 속에서 작동하는 ‘위험’의 서사와 그로 인한 배제를 예리하게 분석하고 비판하며, 동시에 자신들이 선 자리에서 대안을 만들어 가고 있다. 한국에서 YMCA가 올리브 추수여행과 올리브 나무심기 캠페인으로, 아이쿱 생협과 두레생협이 민중교역을 통해 올리브 오일과 아몬드를 공정무역상품으로 개발해 팔레스타인의 땅과 숲을, 그들의 저항과 대안을 일구어가는 걸음에 함께 연대해 가고 있다.(각주20)
팔레스타인 대안관광그룹(Alternative Tourism, ATG)의 호소
정의와 평화가 서로 입 맞출 때까지
이스라엘 정부에게 이스라엘/팔레스타인은 ‘안전한 관광지’여야 했다. 그러나 그 이전에 먼저 그 땅의 주인인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 먼저‘안전한’ 삶의 장소여야 한다. 팔레스타인에서 펼쳐지는 관광지화 과정에서 일어나는 관광개발의 이면은 모양과 규모는 다르지만 세계의 곳곳에서 펼쳐지는 관광개발이라는 이름이 만들어 내는 점령의 경관이었다. 2018년 세계 관광의 날, 오버 투어리즘으로 인해 정주권을 위협당하는 베네치아 주민들이 개최한 국제 민중 법정의 피고는 ‘관광’이었다. 관광개발이라는 미명으로 주민들을 삶의 자리에서 뿌리 뽑아내는 관광 자본과 관광 진흥을 위해 이를 적극적으로 지원하거나 결탁한 정부들을 베네치아와 세계 시민사회는 주거권의 이름으로 법정에 세웠다.
다국적 자본과 국부가 손을 잡고 리조트 개발과 관광 인프라 구축을 위해 어촌의 원주민들을 폭력적으로 강제소개하는 스리랑카, 도로와 철길, 관광을 위한 인프라 조성을 위해 주민들을 강제동원하고 땅과 집을 강제 수용하는 버마의 군부, 초원에 묻힌 지하자원 채굴과 경제 활성화를 위한 관광개발을 위해 유목민들의 초지를 빼앗고 유목을 금하는 몽골 정부, 몰려드는 사파리 관광수요를 수용하기 위해 더 많은 보호구역을 설정하고 그곳에서 수천 년간 사냥과 방목으로 살아오던 원주민들을 몰아내는 관광 자본, 사파리 관광을 위해 5000마리가 넘는 물소 떼를 사살하고, 그를 지키려는 마사이족을 살해하는 일도 주저하지 않는 정부... 자본이 관광의 경관을 위해 보여주고 싶은 보여주고 싶은 것들만 남기는 선택과 배재를 통해 사라져가고 절멸해 가는 것들의 권리와 생명이 베네치아 국제 법정에서 이틀간 세계를 향해 증언되고 고발되었다.(각주21)
여행, 보여지지 않는 것을 보는 일
관광이 보여주는 것을 보는 일이라면, 여행은 보이지 않는 것을 발견하는 일이다. 코로나 이후 다시 여행을 시작하는 세계, 우리가 다시 시작하는 여행은 어떤 것이어야 할까.‘안전’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한 이슈가 된 지구 위에서, 혹 내 여행의 권리를 위해 누군가 삶의 권리를 빼앗기고 있는 것은 아니었는지, 나의 ‘안전’을 위해 누군가의 위험한 존재로 내몰리고 있는 것은 아니었을지, 내가 도착할 장소를 위해 누군가 삶의 장소를 빼앗기고 있는 것은 아니었을지…….
나의 여행과 잇닿은 물음들을 좀 더 멀고 깊은 곳까지 밀어가 본다. 우리에게 현상되지 않지만 엄연히 존재하는 ‘장소에 갇힌 사람들(각주22)‘, ‘자신이 신원을 증명할 수 없는 사람들’. ‘비인간 존재들’과 연결된 생명의 감각을 회복하지 못한다면 우리가 소중히 일구어 온 인권의 가치는 부지 중 누군가의 인권을 유린하는 도구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인류학자 김현경은 저서 “사람, 장소, 환대”에서 ‘절대적 환대에 기초한 사회’를 만들어 갈 수 있는 조건을 ‘신원을 묻지 않는 환대’에서 찾았다. 그의 표현을 빌면 “사회란 본디 절대적 환대를 통해 성립해야 한다. 절대적 환대가 불가능하다면 사회 역시 불가능할 것이다. 신원을 묻지 않는 환대는 현대사회의 기본적인 작동원리이다. 우리는 이것을 세 가지 층위에서 확인한다.
첫째, 모든 인간 생명은 출생과 더불어 사람이 된다. 둘째, 공적 공간에서 모든 사람은 의례적으로 평등하다. 셋째, 자기가 누구인지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자기뿐이다(정체 서사의 최종 편집권은 당사자에게 있다)”고 결론짓는다. 책을 덮으며 그 글의 마지막 문장에 깊은 밑줄을 긋는다. “자기가 누구인지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자기뿐이다”(각주23)라는 한 문장에 가 닿는 것은 얼마나 멀고 아득한 여행인지 가늠해 본다.
나가는 글 : 세상의 경계를 건너는 여행
팔레스타인에서, 태국-미얀마 국경지대에서, 레바논과 이라크의 난민캠프에서 마주했던 수많은 사람들… ‘국가’의 틀을 벗어나 ‘국민’의 자리를 상실한 ‘위험’한 존재들, ‘우리’가 되지 못한 존재들, 국경을 넘어서며 자동적으로 용의자가 되어야 하는 나쁜 국가의 ‘위험한’ 신체들, 내가 누구인지 나의 서사로 나를 입증할 수 없는 ‘무권리’의 존재들… 평화 활동가라는 이름으로 도착했던 수많은 분쟁지역에서, 국경지대에서, 난민캠프에서, 터전을 빼앗기고 삶이 뿌리 뽑히는 사람들의 마을에서 그들이 내게 베풀어 주었던 환대에 이름이 있다면 그것이 ‘신원을 묻지 않는 환대’ 아니었을까.
여행이 관광이 될 때 드리우는 그 깊은 그늘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국경을 넘고 새로운 여행을 꿈꾸는 근원은 그 환대를 주고받으며 함께 만들어 간 ‘우리’의 서사가 기억의 공동체를 일구어 간다고 믿기 때문이다. 코로나가 풀리고 다시 여행이 시작되는 세계, 우리의 여행이 넘을 수 없는 경계를 넘어 환대의 공동체를 연결해 가는 평화의 여정이 되기를 소망해 본다.
[세계 민주인권을 보는 8개의 시선] 세계 곳곳에서 다양한 형태로 벌어지는 '민주주의와 인권 위기'를 목도하며 8명의 필자가 고민과 성찰을 나눕니다.
글 : 임영신 (#이매진피스, <희망을 여행하라> 저자)
* 해당 원고의 의견은 필자 개인의 의견으로, 민주인권기념관의 공식 의견과는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각주14. 미셸 푸코, 이상길 역, 헤테로토피아, 2014, 문학과 지성사
각주15. 임영신, 이혜영 외 희망을 여행하라, 2018 개정판, 소나무 출판사
각주16. 중앙일보 2016.06.13.자 보도: https://www.joongang.co.kr/article/20164096
이스라엘 측은 팔레스타인 지역의 역사적인 주요 관광 정보들을 삭제시키고 이스라엘 회당, 정착촌 등을 일방적인 정보들을 등제한 지도를 제작, 배포해 엄청난 분노를 일으켰다. 이 한 장의 지도(각주16의 기사 중 사진 참조)는 이스라엘이 어떻게 자신들의 국가에서 팔레스타인을 배제시키기를 원하며 그것은 얼마나 체계적으로 이루어져 온 일인지를 상징적으로 드러낸 사건이었다.
각주17. 조일준, 2018.12.23, 한겨레
각주18. Fred Schlock, ‘이스라엘 관광 붐, 그것이 팔레스타인에게 무엇이란 말인가?’
각주19. 김현경, “사람, 장소, 환대”, 2015, 문학과 지성사
각주20. www.toursinenglish.com
각주21. 이매진피스, 2018.10.29, 베네치아 국제법정, 관광에 의해 쫓겨나는 사람들의 증언 청취
각주22. 도린매시, “공간, 장소, 젠더”, 정현주 옮김, p.267
각주23. 김현경, “사람, 장소, 환대”, 2015, 문학과 지성사, p.209